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Zoom In! 기업인 열전

문성필 백산주유소 대표 “가격보다 ‘확실한 감동’으로 성공했습니다”

직원 정규직화, 삶의 가치 자각→‘긍정에너지 넣는 주유소’로 변모

문성필 백산주유소 대표 “가격보다 ‘확실한 감동’으로 성공했습니다”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10월 18일 오후 7시 쉐라톤 서울 팔래스 강남 호텔(반포동) 1층 로열볼룸. 문성필(51) 백산주유소 대표가 연단에 오르자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 100여 명은 박수로 환영했다. 

“주유소는 기름을 파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꿈과 희망을 이루는 데 도움을 주는 도너(donor·기부자) 역할을 해야 합니다.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면 ‘일에 대한 의미’가 새롭게 다가옵니다. 내가 파는 기름은 단순한 기름이 아닙니다. 기름이 자동차 연료탱크에 담기는 순간 기름은 고객의 꿈과 희망을 실현하는 힘찬 에너지가 됩니다. 가치를 파는 거죠.”

이날은 ㈜지식비타민(소장 이경만)이 매월 한 차례 중소기업 CEO 회원을 대상으로 여는 포럼 강연회가 있는 날. CEO들은 1시간 반가량 이어진 ‘주유소 사장님’의 강연을 주의 깊게 경청하면서 메모하거나 질문을 했다. 서울 금천구 시흥1동 백산주유소의 대표가 어떻게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을까. 

때는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 대표가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 회사에 취직해 일하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서울에 사는 아버지가 전화를 했다. 

“성필아. 시흥동 공터에 주유소를 하자는 제안이 들어왔어. 땅을 담보로 제공하면 정유사가 주유소 건물을 지어주고 기름을 대주겠다고 하니 너도 한국으로 들어와 함께 해보자.”


지긋지긋한 주유소 생활

직원들의 ‘경쾌한 인사’는 백산주유소의 자랑이다.[조영철 기자]

직원들의 ‘경쾌한 인사’는 백산주유소의 자랑이다.[조영철 기자]

당시는 각 정유사가 자사 이름을 단 주유소를 많이 세우려고 경쟁하던 시절이다. 마침 아버지 명의의 땅에 한 정유사가 ‘주유소를 세우자’고 제안해온 것. 

“외국 생활하는 게 딱해 보였는지 아버지는 귀국을 종용했어요. 그때만 해도 ‘주유소 사장님’은 다 부자처럼 보였어요.(웃음)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2년만 바짝 고생하면 어느 정도 주변을 살피면서 살아갈 수 있는 여유가 생길 거라는 마음에 아버지와 함께 주유소 간판을 달았죠. 아 그런데, 막상 주유소를 하려고 뛰어들었는데…, 맙소사.”

새벽 5시 기름을 받는 것부터 시작해 20시간가량 일했다. 3만 원 이상 주유하면 자동세차기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했더니 세차하려는 차량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몸은 녹초가 됐고, 아르바이트생을 구하면 며칠 안 가 그만두기 일쑤였다. 문 대표의 표현으론 ‘저녁에 소주 한잔하는 사람이 부러운 나날’이었다. ‘2년만 버티자’는 생각에 눈을 비비면서 기름을 넣었다. 그런데 기름 판매 정책이 바뀌면서 상황이 나빠졌다. 주유소 간 거리 200m 제한 규정이 풀리고, 정부 고시가에서 주유소가 가격을 정하는 연동가로 바뀌자 백산주유소 주변에 10개 넘는 주유소가 생겼다. 3개월 치 매출액을 여신으로 주던 정유사들이 대금결제 방식을 선입금으로 돌리면서 기름을 사려면 당장 목돈을 만들어야 했다. 경쟁은 치열해졌고, 주유소 혜택은 사라졌다. 

꾸역꾸역 주유소를 꾸려갔지만 ‘재미’를 보진 못했다. 2000년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가정도 돌봐야 했지만, 아르바이트생을 챙기고 주유소를 관리하다 보니 자연히 가정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사장이 주유소에 있을 때와 없을 때 매출이 확연히 달랐어요. 그래서 나도 아르바이트생처럼 일했어요. 주유소에서 일했지 주유소를 ‘경영’하진 않았던 거죠. 별다른 목표나 운영전략 없이 주유소에 안주해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는 ‘우물 안 개구리’였던 거예요.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생활은 뒤죽박죽이고…. 그러던 어느 날 한 패밀리레스토랑 업체가 프랜차이즈 식당을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하더군요. 속으로 무척 잘됐다 싶었죠.”

그 업체에게는 일주일 시간을 달라고 했다. ‘지긋지긋한 주유소 생활을 접는다’는 생각에 가만히 있어도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런데 그날 밤 아이 둘이 자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슬그머니 입꼬리가 처졌다. 

“일본 생활을 접고 뛰어든, 딱 10년 동안 내 청춘을 바친 주유소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이들이 커서 왜 그때 직종을 변경했느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답하지.’ 힘들어서 그만뒀다? 아르바이트생을 못 구해서 그만뒀다? 열심히 인생을 산 아빠의 얘기를 들려줘야 하는데…. 식당으로 바꾸면 ‘현실을 도피한 아빠’라고 여길 거 같더라고요. 이건 아닌 거 같다는 생각에 그다음 날 일찍 출근했죠.”

그날 이후 그는 벤치마킹에 나섰다고 한다. 서울 강남과 경기 성남의 ‘잘나가는’ 주유소들을 찾아가 꼼꼼히 확인하고, 성공한 사업가들의 마케팅 관련 서적을 읽으며 고객에게 전달할 가치를 생각했다. 그리고 화장실 청소부터 시작했다. 2004년 초였다. 

“절박감에 뭐든 바꿔보려 했어요. 당장 ‘고객 화장실 변기부터 닦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열심히 청소하니 평소 안 지워질 거라 생각했던 찌든 때가 말끔히 사라지면서 화장실이 깨끗해지더라고요.(웃음) 화장실이 깨끗해지니 그때서야 주유소 사무실이며 세차장 등 청소할 곳들이 눈에 확 들어오더라고요. 대청소를 했죠.”

2004년부터 그는 백산주유소만의 가치를 전달할 ‘표준’을 하나하나 만들어나갔다. 그리고 삶의 의미는 발견하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거라고 믿었다. 직원들과 경기 용인의 한 놀이공원에 가서는 두 손을 돌리며 시선을 끈 뒤 밝게 인사하는 안내 도우미의 인사법을 벤치마킹했다. 직원들 유니폼도 깔끔하게 맞췄고, 고객에게 밝은 표정으로 크게 인사하게 했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하나하나 ‘표준 인사법’을 만들었는데, 지금도 백산주유소에 들어서면 나갈 때까지 총 4번의 경쾌한 인사를 받는다. 

주유소 분위기가 밝아지니 매출도 올랐다. 지금은 종종 볼 수 있는 장면이지만, 처음에는 인사를 받으면 당황하는 고객이 많았다고 한다. 시간이 갈수록 고객들도 차츰 미소를 보이거나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그저 그런 주유소가 작은 변화를 통해 고객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친절 주유소’로 변해갔다.

한창 ‘변화’를 고심할 때 차량 한 대가 주유기를 꽂은 상태로 출발하는 ‘작은 사고’가 있었다. 그때 아르바이트생이 “운전자가 급한 계약을 하러 가나 봐요. 여기서 기름 넣었으니 잘되겠죠”하며 씩 웃었다고 한다. ‘원효대사의 해골 물’이 따로 없었다. 아르바이트생의 지나치는 말에 문 대표는 ‘돈오(頓悟)’를 체험했다. 

“무릎을 쳤죠. 그거였어요. 배가 고프면 음식점을 찾듯, 차량 운행자는 저마다 자신의 꿈과 희망, 행복을 위해 주유소를 찾잖아요. 백산주유소는 단지 기름만 파는 곳이 아니라 운전자가 꿈과 희망을 이루는 데 도움을 주는 ‘도너’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기분 좋은 ‘긍정에너지를 넣어주는 주유소’를 만드는 거죠. 깔끔한 복장의 주유소 직원들이 손님과 대면하면서 직접 에너지를 전달하는 거예요. 그러자 시각이 바뀌더군요. 물론 직원은 ‘회사 가치 전달자’이고요. 소설가 최인호의 ‘상도’에서도 ‘장사는 이익을 남기는 게 아니라 사람을 남기기 위한 것’이라는 대목이 눈에 들어왔어요. 처음에는 망설이기도 했죠. ‘사람에게 투자해? 그럼 내가 생각하는 가치를 직원들이 전달할까. 괜히 돈만 쓰는 게 아닐까’ 하는….”


카드 복제 사건…‘믿음’이 바꾼 변화

문성필 백산주유소 대표(맨 왼쪽)와 직원들.[조영철 기자]

문성필 백산주유소 대표(맨 왼쪽)와 직원들.[조영철 기자]

그의 말처럼, 당시 아르바이트생들은 오늘 기분이 틀어지면 내일 당장 주유소를 떠났고 자신을 무시하는 고객과도 시비가 잦았다. 그즈음 주유소 문을 닫아야 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아르바이트생 가운데 한 명이 고객이 건넨 신용카드를 불법복제해 사용한 것. 문 대표와 아르바이트생들은 경찰 조사를 받았고, 고객들은 ‘배상하라’며 연일 멱살잡이를 해대는 ‘엄혹한 시절’이었다. 

“아르바이트생이 사고를 쳤지만 고객들은 주유소 대표에게 따질 수밖에 없잖아요. 신용카드를 불법복제했다는 사실을 안 직원도 있었지만, 사고를 친 친구의 생활이 어려우니 모른 척했다고 하더군요. 누굴 탓하겠습니까. 직원들도 상실감이 크고…. 여기저기서 돈을 마련해 피해 금액 수천만 원을 다 갚았습니다. 힘들었지만 그때 고객들에게 욕 들으면서도 끝까지 배상하니 신뢰가 생겼어요. 그리고 ‘직원의 신분이 불안하면 또 일이 나겠다’ 싶더군요.”

사건이 터지고 얼마 뒤 그는 11명 아르바이트생을 전원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퇴직금과 4대 보험 혜택은 물론, 평균 급여도 30만 원 이상 올려줬다. 1년 이상 아르바이트생을 쓰면 퇴직금을 줘야 해 10개월가량 일하면 내보내는 것이 관행이던 시절이다. 당연히 백산주유소는 동종업계 관계자들의 비웃음을 샀다. 문 대표는 이에 아랑곳없이 직원들과 금천구 관내 불우이웃을 돕거나 독거노인 집을 방문했고, 배식 봉사활동도 했다. 어려운 이웃을 본 직원들이 자신의 삶의 가치를 느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그랬더니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직원들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일했다. ‘커피와 호두과자를 팔자’ ‘주유소 이름과 같은 ‘백산수’를 팔자’ 등 다양한 아이디어도 냈다. 회사 발전이 곧 자신의 발전이라는 인식이 생긴 것이다. 인건비 상승 등으로 문 대표의 수익은 줄었지만, 대표가 주유소에 있건 없건 매출은 변화가 없었다. 인근 주유소보다 ℓ당 100원가량 비쌌지만 고객들은 백산주유소를 찾았고, 경쟁 주유소 2곳은 문을 닫았다. 주유소시장은 레드오션이었지만 문 대표는 경기 수원 등 2곳에 주유소를 새로 냈다. 주유소 3곳의 정규 직원은 모두 30여 명에 달한다. 백산주유소는 한국서비스품질지수(KS-SQI) ‘인사를 파는 주유소’ 우수사례, 한국능률협회컨설팅(KMAC) 주관 2015 고객중심 경영혁신컨퍼런스 서비스 부문에 선정되기도 했다. 

“신용카드 불법복제 사건 이후 결국 ‘사람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자신의 삶이 가치 없다고 생각하는 이는 다른 사람의 가치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걸 알았죠. 회사가 직원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믿어주니, 직원들이 열정적으로 변했어요. 주유하려는 차가 들어올 때까지 앉아 있던 직원들이 스스로 할 일을 찾아 하고, 인사 순서도 정하면서 진정으로 고객서비스를 실천하더군요. 진화생물학자들의 얘기처럼 갓 입사한 직원도 선배들을 관찰하며 스스로 변화하고 겸손해지면서 동화됐습니다. 예전에 10명이 하던 일을 지금은 5명이 할 정도로 직원들의 역량도 높아졌어요. 사회공헌활동이 별건가요. 수익을 조금 적게 가져가도 직원들에게 안정된 직장을 마련해주는 것 역시 사회공헌활동의 일부라고 생각해요.(웃음)”


대기업, 공공기관 견학 명소

직원이든, 고객이든 신뢰는 회사 발전의 기초라는 게 문 대표의 지론. 최근 그의 지론을 확인한 일이 생겼다. 명절 때마다 추첨을 통해 고객에게 과일 사은품을 주는 행사를 진행했는데, 올해는 행사 도중 과일이 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미 300박스가량이 사은품으로 지급된 상황이었는데도 고객들은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 직원이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사은품을 받은 고객에게 일일이 전화해 ‘과일이 상했는데 왜 연락을 안 했느냐’고 물었어요. 고객들은 ‘백산(주유소)이 일부러 상한 과일을 줬겠어요? 믿으니까 연락 안 했죠’라고 답했습니다.(웃음)” 

백산주유소 직원들은 회사로부터 웬만한 복리후생 혜택을 다 받는다. 계절마다 MT(수련모임)를 가고, 송년회나 신년회 때는 직원 가족들을 초청해 주유소에서 일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함께 보는 등 행사를 연다. 그 결과 직원 가족들도 자부심을 갖게 됐다는 게 문 대표의 설명. 겨울이면 보온이 잘되는 스키복에 고글을 착용한 채 주유를 하는데, 스키복 입고 단체로 스키를 타러 가는 경우도 다반사다. 독감 예방접종 등 건강관리에도 신경 쓴다. 

‘기분 좋은 주유소’ ‘친절주유소’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각종 강연회 요청과 주유소를 견학하겠다는 문의전화가 쇄도했다. 웬만한 대기업과 공공기관에서도 백산주유소를 방문해 노하우를 배워갔다. 

“흥미로운 점은 기업체 대표나 공공기관 사장이 오면 ‘우리 직원들도 백산주유소 직원처럼 바뀌었으면 한다’고 하는데, 일주일 뒤 그 회사 직원들이 오면 ‘우리 사장이 백산주유소 사장처럼 바뀌었으면 한다’고 말한다는 겁니다.(웃음) 그때 저는 반대로 얘기해요. 사장이 오면 ‘사장이 바뀌어야 한다’, 직원이 오면 ‘직원이 바뀌어야 한다’고요.(웃음) 그래야 사장이든, 직원이든 자각해 열정적으로 바뀔 수 있거든요.”




입력 2017-11-14 11:22:17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115

제 1115호

2017.11.29

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