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5일 서울에서 공연한 록밴드 콜드플레이의 리더 크리스 마틴.[사진 제공 · 현대카드]
얘기는 이렇다. 2017년 4월 15일, 시간은 밤 10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콜드플레이의 공연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번 투어의 모든 공연에서 마지막을 장식하는 ‘Up&Up’이 흘러나올 참이었다. 크리스 마틴이 피아노 앞에 앉았다. 나는 가방에 손을 넣어 작은 상자를 꺼냈다.
4월 8일, 토요일이었다. 오전 결혼식에 갔다 여자친구 집으로 가려고 지하철을 탔다. 나와 보니 날씨가 무척 좋았다. 완연한 봄이었다. 문득 꽃 선물이 하고 싶었다. 무슨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문득, 문득, 문득 그랬을 뿐이다. 원래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그날은 그러고 싶었다. 꽃을 받은 여자친구는 무척 기뻐했다. 꽃 선물을 정말 좋아한다고 했다. 안 그럴 거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무심한 사람이다. 그런 내가 여자친구에게 꽃을 선물하다니. 이런 기분으로 이렇게 선물한 적이 있었던가. 없었다. 사고 싶은 그릇이 있다고 해서 선물하겠다고 했더니 싫다 했던 일이 떠올랐다. 첫 꽃 선물을 한 직후 이렇게 말한 것 같다. “생활용품 선물보다 꽃 선물이 좋아. 내가 여자라는 걸 느끼게 해주는. 작고 반짝거리는 거 같은 거?” 문득 프러포즈를 하고 싶어졌다. 문득 솟아난 압도적인 충동이었다.
내가 콜드플레이의 최근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Up&Up’이다. 한 번도 콜드플레이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는데, 함께 간 음악 술집에서 여자친구가 이 노래를 신청하는 걸 보고 놀랐다. 집에서도 몇 번이나 이 노래를 틀곤 했다. 그러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콜드플레이가 마지막 곡으로 ‘Up&Up’을 부를 때 프러포즈하기로 마음먹었다.
피아노를 두드리며 조용히 노래하던 크리스 마틴의 목소리에 다른 멤버들의 코러스가 얹혔다. 그리고 첫 번째 기타 솔로가 나왔다. 이 부분을 특히 좋아하는 여자친구는 나지막이 “나온다”고 했다. 그때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상자를 건넸다. 연주에 혼이 나갔는지 쳐다도 안 봤다. 손을 쥐고 눈을 바라봤다. 그제야 내가 뭔가를 줬다는 걸 인지한 듯했다. 리본을 풀고, 상자를 열고, 안에 있던 목걸이를 확인할 때까지 내 심장은 쿵쿵거렸다.
마침내 상자 안의 작고 반짝이는 물건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녀의 큰 눈이 촉촉하게 반짝였다. 뭔가 한마디를 해야 하는 순간, 나는 나오는 대로 말했다. “우리 꼭 같이 살자.” 그리고 그녀의 머리를 내 어깨에 기댔다. 조니 버클랜드의 기타는 아름다운 멜로디를 뿜어냈고 그녀는 눈물을 훔쳤다. 크리스 마틴의 치솟는 허밍이 곡이 끝나감을 알릴 때 무대 뒤에선 불꽃이 하늘로 치솟았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공연을 봤던가. 큰 공연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불꽃은 또 얼마나 봤던가. 하지만 처음이었다. 그 불꽃이, 마치 우리를 위한 이벤트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이 노래 가사는 ‘don’t ever give up’으로 끝난다. 크리스 마틴이 나지막이 읊조리는 그 문장이 귓속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노래가 끝났을 때 나는 다짐했다. 만약 청첩장을 찍는 데 성공하면 이 순간을 반드시 담아낼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