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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은 ‘자연’이 아니다

설악산 케이블카,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 따져야

설악산은 ‘자연’이 아니다

설악산은 ‘자연’이 아니다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6월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고궁박물관 앞에서 문화재위원회의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 재부결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뉴스1]

1995년 시작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둘러싼 찬반 논란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환경단체 등은 케이블카 사업을 ‘권력과 자본이 결탁한 대표적인 반환경 정책’이라고 비판하고, 반대쪽에서는 ‘케이블카 금지야말로 보존에만 치우친 편향된 정책’이라고 항변한다.

언젠가 이 문제를 놓고 산을 적잖이 사랑하는 지인과 의견을 나눈 적이 있다. 당연히 케이블카 사업을 반대할 줄 알았던 그는 뜻밖에 찬성 의견을 냈다. 케이블카가 없으면 설악산 정상을 한 번도 밟아볼 수 없는 이들, 예를 들어 장애인 등을 염두에 둔다면 반대가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만들어진 국립공원

“케이블카가 자연경관을 훼손한다는 주장에도 동의할 수 없어요. 어떤 자연경관이 아름다운지는 전적으로 주관적인 문제입니다. 케이블카 사업을 반대하는 이들은 손이 안 탄 자연경관을 최선이라고 생각하지만 지금의 설악산, 지리산, 한라산 모습이 옛날과 똑같을 거란 믿음은 환상일 뿐입니다.”

이 같은 지인의 지적을 염두에 두고 찬찬히 따져보자. 휴가철이 되면 많은 사람이 ‘인공’이 아닌 ‘자연’을 감상하고자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곳곳의 국립공원은 훼손되지 않은 자연 속에서 단 며칠이라도 지내려는 이들로 몸살을 앓는다. 그런데 자연보호구역인 국립공원이 과연 자연스러운 공간일까. 진실은 이렇다.

한국의 국립공원 같은 세계의 자연보호구역은 약 3000곳으로 지구 전체 땅의 3%가량이다. 사람들은 이런 자연보호구역이 처음부터 지금 같은 원시 상태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 원시 상태와는 거리가 멀다. 상당수 자연보호구역은 그곳 원주민을 추방하고 나서 만들어졌다. 오늘날 자연보호구역의 원형을 만든 미국 국립공원의 역사가 이를 잘 보여준다.

미국 정부는 1872년 세계 최초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옐로스톤국립공원을 만들면서 그곳에 사는 쇼쇼니 인디언을 강제로 내쫓았다. 미국 군대는 저항하는 원주민 약 300명을 학살했다.

중앙아메리카의 관광국가 벨리즈의 예는 더 극적이다. 세계 최고 자연보호국가로 꼽히는 벨리즈 역시 ‘만들어졌다’. 제1세계 관광객의 생태관광을 위해 원주민은 자연보호구역 곳곳에서 폭력적인 방식으로 추방됐다. 자기 땅에서 쫓겨난 벨리즈 주민 상당수는 관광객에게 토착 문화를 팔면서 생계를 꾸린다.

지리산, 한라산, 설악산 국립공원 역시 애초부터 지금 같은 상태가 아니었다. 국립공원으로 묶인 곳에는 오랫동안 그 안에서 농사를 짓거나 사냥을 하며 생계를 꾸리던 사람들이 있었다. 화전민이 꾸린 밭, 소·돼지 같은 가축, 6·25전쟁이 남긴 상흔도 있었다. 그러나 1967년 12월 29일 지리산을 시작으로 설악산(1970), 한라산(1970) 등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이 모든 역사가 차근차근 지워졌다. 그러니 우리가 ‘자연 그대로’라고 믿는 설악산 원시림을 비롯한 국립공원 역시 미국의 본보기를 따라 ‘만들어진 공간’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국립공원이야말로 ‘주어진 자연’이 아니라 ‘인공의 공간’이다.

기왕 국립공원 이야기가 나왔으니 지리산 반달곰, 소백산 여우 같은 야생동물 복원 사업도 따져보자. 반달곰, 여우, 늑대, 심지어 호랑이가 백두대간 곳곳을 누비는 상상은 참으로 낭만적이다. 2005년 ‘과학 사기’로 몰락한 황우석 박사가 시민의 지지를 얻고자 백두산 호랑이를 복원하겠다고 호언장담한 것도 이런 정서를 포착했기 때문이다.



지리산 반달곰은 ‘야생’동물인가

설악산은 ‘자연’이 아니다

2014년 3월 지리산에서 태어난 반달가슴곰. 당시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지리산국립공원에 서식하는 반달가슴곰의 위치추적장치 배터리를 교체하던 중 어미곰 3마리가 총 5마리의 새끼를 출산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사진 제공·환경부]

하지만 야생동물 복원 사업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2004년 시작된 지리산 반달곰 복원 사업은 겉으로는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반달곰 수십 마리가 지리산 일대 야생에 정착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과연 그 반달곰을 ‘야생’동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현재 지리산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반달곰 47마리 가운데 19마리는 위치추적장치(발신기)를 달고 있다. 위치추적장치 배터리가 닳아 없어진 13마리를 포함한 28마리도 지리산 곳곳에 설치된 헤어트랩(주요 길목을 지나는 곰의 털을 채취하는 장비)이나 무인카메라를 통해 끊임없이 관리된다.

반달곰과 인간의 빈번한 접촉도 문제다. 반달곰이 지리산 민가로 내려와 가축을 물어뜯어 죽이는가 하면, 등산객의 침낭이나 배낭 등을 찢는 일이 부지기수다. 자칫하면 반달곰과 등산객이 마주쳐 심각한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면 비교적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반달곰 복원 사업도 애초 야생 상태의 복원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에 갇혀 있던 반달곰을 좀 더 큰 국립공원에 풀어놓고 관리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테다. 그러니까 반달곰을 야생 상태에서 키워보려는 노력 역시 역설적으로 인공의 과정이다. 장담컨대 여우, 늑대, 호랑이는 곰보다 훨씬 더 어려울 것이다.

국립공원 지정이나 야생동물 복원 사업 같은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 ‘자연’과 ‘인공’을 똑 부러지게 나누는 건 불가능하다. 우리가 자연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국립공원)조차 인간과 비인간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면서 만든 인공물일 뿐이다. 당장 이번 여름에 국립공원으로 피서를 떠나 며칠 지내고 온 일 자체가 바로 그런 상호작용의 한 예일 테고.

다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둘러싼 논란으로 돌아가보자. 설악산의 ‘자연’이나 (인간이 개입해 복원 사업을 하고 있는) ‘산양’을 지키고자 케이블카 건설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은 거칠다. 우리가 해야 할 더 중요한 일은 케이블카 같은 새로운 비인간 행위자의 등장으로 설악산(자연) 모습이 어떻게 변할지, 그 변화가 누구에게 이익이 될지 세심히 따져보는 것이다.




입력 2017-08-21 17:18:35

  • 지식큐레이터 imtyi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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