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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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은퇴를 꿈꾸는 일중독자’라고 말해요”

잡지 같은 모바일 쇼핑몰 ‘ 29cm’의 이창우 대표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7-10-23 15: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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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핑몰과 백화점은 물건을 사는 공간인 동시에 노는 공간이다. 소비자는 필요한 물건을 산 뒤에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구경한다. 각 매장이 물건을 진열해놓은 모습, 매장 간 조화 등 건물 안 모든 것이 구경거리가 된다. 반면 온라인 쇼핑에서는 이런 구경의 재미가 없다. 필요한 물건을 골라 산 뒤 그냥 나온다. 

    이 같은 온라인 쇼핑의 단점을 극복한 온라인 쇼핑몰이 있다. 패션, 라이프스타일 전문 온라인 편집숍 ‘29cm’는 물건을 사지 않아도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그 나름의 기준으로 진열할 상품을 선택하고 기존 쇼핑몰과는 다른 문법으로 상품을 보여준다. 온라인에도 놀러갈 만한 가게가 생기자 사람이 몰리면서 29cm에 입점한 브랜드들의 매출도 크게 올랐다. 지금도 많은 패션 브랜드가 이곳에 입점하려고 문을 두드린다. 독특한 콘셉트의 온라인 쇼핑몰 ‘텐바이텐(10×10)’의 성공에 이어 온라인 편집숍 29cm를 일군 이창우(45·사진) 대표를 만났다.



    편집숍을 넘어 큐레이션 플랫폼으로

    29cm라는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된 것인가.
    “사실 아무 의미 없다. 여러 단어나 내용을 살펴가며 이름을 찾았는데, 이 중 입에 가장 붙는 것이 29cm였다. 일단 이름을 짓고 나면 나중에 자연스레 이야기가 생길 것으로 봤다. 회사 안에서도 29cm를 두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거리’ ‘설렘이 시작되는 거리’ 등 해석이 분분하다.”

    29cm 애플리케이션(앱)을 열면 온라인 쇼핑몰이라기보다 스마트폰으로 보는 패션잡지에 가깝다. 스마트폰 화면에 꽉 차게 29cm가 소비자에게 소개하는 상품 하나가 보인다. 카드뉴스나 기사를 보는 것처럼 아래로 끌어내리면 다음 상품이 나타난다. 상품을 설명하는 방법도 독특하다. 감각적인 상품 사진 아래 잡지사 에디터가 쓴 것 같은 소개 글귀가 달려 있다. 에세이나 여행정보 등을 담은 매거진 공간까지 마련돼 있다.



    처음 사용하는 사람은 이 앱이 패션잡지인지, 쇼핑몰인지 헷갈릴 것 같다. 29cm의 정체가 무엇인가.
    “29cm는 잡지인 동시에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쇼핑몰이다. 패션 및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전문 쇼핑몰로 시작한 만큼 상품을 파는 것이 기본 수입원이지만, 에세이 등 다양한 콘텐츠를 배치해 사람을 끌어 모으고 있다. 이들을 상대로 광고하려는 광고주도 많아 현재 광고 매출이 전체 매출의 30%가량 된다. 추후에는 판매와 광고 수입을 50 대 50으로 맞추려 하고 있다.”

    29cm는 브랜드가 가진 이야기를 사진과 글로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토리텔링 방식의 마케팅에 힘쓰게 된 계기가 있나.
    “29cm의 모토는 ‘guide to better choice’, 즉 더 나은 선택을 위한 제안이다. 그래서 다양한 제품을 구비하기보다 재밌고 이상하면서도 멋진 제품을 선보이길 원했다. 기존 쇼핑몰이 주력하는 최저가 경쟁과는 다른 방식을 도입했다. 마침 인터넷 소비가 모바일 위주로 바뀌면서 스마트폰으로 가볍게 보는 콘텐츠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와 유사한 콘텐츠를 쇼핑몰에 접목하고자 했다. 기존 쇼핑몰이 보여주는 건 이미지나 제품 설명 정도인데, 이를 콘텐츠로 재가공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는 스튜디오에 투자했고, 읽을 만한 제품 설명도 썼다.”

    사실 스토리텔링과 상품을 팔기 위한 설득은 한 끗 차이다.
    “가장 어려웠던 차별화 지점이 바로 그것이다. 단순한 설득이 아니라 스토리텔링이 되려면 텍스트 외에도 이미지, 사이트 디자인 등이 제구실을 하면서 29cm만의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업계에서는 ‘톤앤드매너’라고 한다. 디자인과 이미지를 열심히 만들어도 문장 하나가 어울리지 않으면 어렵게 쌓은 톤앤드매너가 무너질 수 있다. 이를 직원들에게 교육시키고 매뉴얼화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직 29cm는 갈 길이 멀다

    최근에는 패션 외에도 여행, 전자기기 등 판매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다양한 상품을 구비하는 것도 좋지만 다루는 영역이 너무 넓어지면 ‘편집숍’이라는 29cm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 아닌가.
    “우리는 카테고리에 한계를 두지 않는다. 처음 시작할 때 의류, 패션용품 등을 취급한 것은 패션이 가장 확장성이 큰 카테고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편집숍만으로는 매출 확대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라이프스타일의 전방위를 다루는 큐레이션 서비스를 강화할 예정이다. 이용자의 독특한 취향에 맞춰야 하는 큐레이션의 특성상 마니아층만 찾아올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최근 AI(인공지능)와 IT(정보기술)의 발달로 더 많은 사람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자동 큐레이션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다고 본다. 확장성은 무한하다.”

    2015년부터 29cm는 성공한 스타트업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29cm를 운영해오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분명히 보람을 느낀 순간이 있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29cm의 현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다 보니 딱히 기억에 남는 순간은 없다. 투자금 유치에 성공했을 때도 기쁘기보다 안도했고, 덤덤히 다시 업무로 돌아갔다.”

    보람을 느낄 만한 만족의 기준이 따로 있나.
    “손익분기점을 확실히 넘어 직원들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날이 와야 보람을 느낄 것 같다. 아직까지는 계속 돈을 까먹는 중이다. 일반적으로 손익이 나기 시작하면 사업모델은 그대로 유지한 채 운영을 효율화하면 된다. 하지만 내 지론이 ‘이쯤이면 됐어’라고 안주하는 순간 사업은 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번 새로운 목표를 찾고 손익이 조금이라도 나면 재투자를 계속한다. 투자받은 금액을 회수할 정도로 이익이 나면 또 재투자하는 식이다. 지금은 이러한 상황의 반복이다.”

    주변에서 답답해하지는 않나.
    “직원들이야 월급만 제때 들어오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회사 목표가 더 커질수록 좋아한다. 가장 답답한 이들은 투자자일 것이다. 하지만 시장에서 매년 회사 가치가 올라가고 있으니 크게 걱정하는 사람은 없다.”



    뱃사람은 항해가 끝나도 다시 바다로

    이 대표는 쇼핑몰 텐바이텐을 창업해 성공적으로 키운 이력이 있다. 텐바이텐 역시 29cm와 마찬가지로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한 차별화된 상품 소개로 눈길을 끌었다. 사업이 궤도에 오르자 그는 GS에 텐바이텐의 지분 80%를 매각했다. 이후 다시 사업을 구상해 GS홈쇼핑으로부터 투자받아 29cm를 창업하게 된 것.

    텐바이텐도 스토리텔링 콘셉트로 크게 성공했다. 손익을 내기까지 얼마나 걸렸나.
    “2002년 텐바이텐을 창업했는데 당시 한일월드컵이 있었다. 전 국민의 관심사가 온통 축구이던 시절이니 당연히 매출이 곤두박질쳤다. 당시에는 진지하게 사업을 그만둘까도 고민했다. 하지만 포기하더라도 1년간은 버텨보자는 오기가 생겼다. 그 오기가 매번 이어져 7년 차에 비로소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29cm는 시장의 긍정적 반응이 빨리 온 편이다.
    “텐바이텐은 백지 상태에서 시작한 창업이었다. 창고를 사무실처럼 쓰며 18개월간은 월급도 가져가지 못했다. 첫 월급이 30만 원가량이었다. 29cm는 초기 자금이 비교적 두둑했고, 텐바이텐을 운영하며 쌓은 경험 덕에 빠른 성과를 낼 수 있었다.”

    텐바이텐 성공 이후 다시 창업에 뛰어든 이유가 있을까.
    “그냥 사업이 재밌다. 힘들고 어렵긴 한데, 10년간 해오다 보니 이제 회사에 소속돼 일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바다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잘 아는 뱃사람이 항해가 끝난 뒤 자연스레 다시 바다에 나가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50세 넘는 사람이 29cm 사장을 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4~5년 안에 그만둔다고 직원들에게 얘기했다. 직원들이 그만두면 뭘 할 거냐고 되묻는데, 다시 내 사업을 꾸릴 것이라고 답했다.”  

    실패한 적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닌가.
    “사업하면서 폐업한 적이 없다뿐이지, 실패 근처에는 수도 없이 갔다. 29cm도 자금이 없어 월급을 못 줄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다. 해결하지 못하면 내가 이 손해를 다 떠안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오죽하면 내 별명이 ‘은퇴를 꿈꾸는 일중독자’다. 지금도 거의 매일 자정 넘어서까지 일을 손에서 놓지 않으면서도 은퇴하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다녀 주위에서 붙여준 별명이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사업에 성공했을 때 성취감이 위험에 처했을 때 공포보다 커서 계속 사업을 하는 것 같다.”
     


    건축 꿈나무가 창업에 눈뜨기까지

    그렇다면 어릴 때부터 자신만의 사업을 꿈꿨나.
    “전혀 그렇지 않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고 건축설계에 푹 빠져 있었다. 잠을 쪼개가며 공모전에 도전했고 꽤 많은 수상 실적도 올렸다. 학과 창설 이래 최다 공모전 수상 기록을 세웠을 정도다. 졸업 뒤에는 자연스레 건축사무소에 입사했다.”

    건축을 그만둔 계기가 있다면.
    “일단 건축사무소 일로는 생활이 안됐다. 처음 입사한 곳이 꽤 큰 건축사무소였는데도 월급이 80만 원에 불과했다. 한국에서는 건축으로 먹고살기가 힘들 것 같아 해외 건축사무소에 포트폴리오를 보내봤다. 일부 업체가 면접을 보자고 연락해왔는데 갑자기 아버지 건강이 악화돼 외국행을 포기하고 건축사무소를 계속 다녔다. 하지만 미래가 불투명한 것은 여전했다. 결국 대기업으로 이직해 온라인 마케팅 업무를 맡았다.”

    온라인 마케팅 업무를 하면서 텐바이텐을 구상한 것인가.
    “그렇다. 막상 큰 기업으로 옮기니 건축사무소에 비해 업무 강도가 너무 낮았다. 건축사무소에서 했던 일의 5분의 1만 해도 주변에서 일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갑자기 여유가 생기니 다른 생각이 들었다. 당시 범람하던 온라인 쇼핑몰과는 차별화된 쇼핑몰을 만들고 싶었다. 당시 온라인 쇼핑몰은 모두 같은 크기의 제품 사진을 사용했고, 제품을 설명하는 문구의 분량도 일정했다. 말 그대로 천편일률적이었다. 사진 크기나 각도, 문투만 바꿔도 확 달라 보일 것 같았다. 몇 개월간 이를 현실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며 사업 기획을 짰다.”

    사업 기획이 확실히 정해진 뒤 퇴직하고 창업에 뛰어들게 됐나.
    “아니다. 처음에는 회사에 이 같은 형태의 쇼핑몰을 운영해보자는 기획안을 올렸지만 반려됐다. 그럼 내가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퇴직하고 창업했다. 처음에는 투자를 받으려고 30개 넘는 회사를 돌았지만 매번 퇴짜만 맞았다. 이러다 시작도 못 하겠다는 생각에 친구들과 돈을 모아 텐바이텐을 창업하게 됐다.”

    대학생 때도 각종 건축공모전을 휩쓸고, 회사를 다닐 때도 금방 인정을 받았다. 굳이 사업을 하지 않아도 좋은 경력을 쌓을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사업을 시작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나.
    “단 한 번도 없다. 사업을 하든, 조직에 소속돼 일하든 스트레스의 총량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똑같이 힘들 거라면 내가 직접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창업이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은 한 번도 성공하기 어렵다는 창업을 두 번이나 성공했다. 최근 스타트업 등 창업 열풍이 불어 조언을 구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스타트업 업계에서 보면 나는 구세대다. 조언을 받으러 오는 경우는 많지 않다.(웃음) 사업계획서를 들고 와 가능성을 타진하는 사람은 몇 명 있다. 하지만 내가 해줄 얘기가 별로 없다. 창업을 고민하는 것은 쉽지만 그 고민을 실행하기는 어렵다. 일단 그 고민을 넘어서야 나도 해줄 말이 생긴다. 이미 업체를 창업해 운영하고 있다면 성심성의껏 조언하려 노력한다.”

    창업을 한 사람이 꼭 지켜야 할 한 가지 수칙이 있다면.
    “스타트업은 대부분 자금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이 고민은 투자를 많이 받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자금이 소진될 상황에 늘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수익이 나더라도 언제든 사업이 흔들릴 수 있으니 대비를 확실히 해둬야 한다. 일단 버텨야 다음 기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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