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2

..

황태자 이재현 날개 없이 추락하나

삼성가 故 이병철 회장의 장손… CJ그룹 최악의 해 ‘이를 어쩌나’

  • 김지은 객원기자 @donga.com

    입력2013-06-14 17:3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황태자 이재현 날개 없이 추락하나

    비자금 조성과 세금 탈루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서울 장충동 자택. 검찰은 5월 29일 이 회장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윤대진 부장검사)는 6월 8일 CJ그룹의 탈세 및 비자금 조성에 깊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는 신모 CJ글로벌홀딩스 부사장을 구속했다. 검찰 등에 따르면 신씨는 2005년부터 2010년까지 CJ그룹이 여러 계열사를 통해 주식을 차명거래하고 경영상 이익에 따른 소득세 등 수백억 원의 세금을 탈루하도록 지시 및 관여한 혐의(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조세포탈 등)를 받는다.

    CJ그룹 수사와 관련해 전·현직 임직원이 구속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은 신씨를 상대로 비자금 조성 및 운용 경위를 집중 추궁하는 한편, 다른 핵심 관계자들을 차례로 조사한 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소환 일정을 검토할 방침이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의 사법처리가 불가피하리라 예상한다.

    이 회장도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6월 3일 그룹 임직원들에게 보낸 e메일에서 “최근 저와 우리 그룹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련의 사태에 대해 안타깝고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그룹의 안정적 경영을 위해 취했던 각종 조치 가운데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다면 책임지겠다”고 밝혔다.

    막장으로 치달은 삼성·CJ 대립

    무엇보다 이 e메일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임직원들에게 e메일을 보낸 시간이다. 6월 3일 새벽 1시 8분. 밤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그가 e메일을 작성했다는 얘기다. 그룹 관계자는 “이 회장이 직접 e메일을 써내려갔다”고 귀띔했다. 검찰이 수사망을 좁혀오면서 그가 불면의 밤을 지새운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세간에 알려진 대로, 이 회장은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전 회장의 장손이다. 족보로만 따지면 현재 삼성그룹 회장 자리는 이 회장의 것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삼성그룹 후계자 자리를 이어받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과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 사이가 그다지 원만치 않았던 탓에 이맹희 회장은 결국 아우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의 대권경쟁에서 패배했다. 그 때문에 이 회장은 일찌감치 그룹 후계구도에서 밀려났다.

    겉으로 보기엔 누구보다 화려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았을 듯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의 성장 과정은 ‘황태자’의 삶과는 사뭇 거리가 멀다. 삼성가 3세 중 유일하게 해외유학을 다녀오지 않은 그는 고려대 재학 시절에도 내내 버스로 통학했고, 점심은 학교식당에서 해결할 정도로 소박한 일상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지인들조차 그가 재벌가 자제라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간 불화, 그로 인한 아버지의 방황을 지켜보며 자란 이 회장에게 삼성가와의 악연은 벗어던지려 하면 할수록 더 옥죄는 굴레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이 회장이 택한 첫 직장은 삼성이 아닌 미국계 시티은행이었다.

    그런 그가 할아버지인 고 이병철 회장이 설립한 제일제당에 입사한 시기는 시티은행에 입행하고 2년 뒤인 1985년이다. 이에 대해서는 손자를 끔찍하게 아꼈던 고 이병철 회장의 뜻을 꺾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장손에게 왜 남의집살이를 시키느냐”는 불호령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제일제당은 고 이병철 회장이 1953년 설립한, CJ그룹의 전신인 식품회사다. 이 회장은 지분정리를 통해 삼성그룹으로부터 제일제당을 넘겨받았고, 96년 5월 계열 분리를 선언하면서 제일제당그룹으로 공식출범했다. 이병철 회장 사후 이 회장의 어머니인 손복남 여사는 당시 안국화재 지분 15.6%를 보유했는데, 이를 이건희 회장의 제일제당 지분과 맞교환함으로써 제일제당 경영권을 넘겨받았다.

    당시 이 회장이 가진 CJ그룹 지분은 20% 내외에 그쳤다. 재계에서는 “이런 상황이 그가 최근 드러난 조세피난처 사건의 주인공이 된 배경일 수도 있다”고 본다. 당시 그가 가진 지분만으론 그룹경영권을 유지하기에도 위태로운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삼성그룹과 표면적으로 갈등의 골이 깊어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1995년 전후로 삼성그룹 측이 이 회장을 미행하고 감시카메라를 설치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갈등은 극에 달했다. 그리고 지난해 2월 이 회장을 미행하던 차량이 이 회장 자택 앞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에 찍히면서 삼성그룹이 이 회장을 또다시 미행한 정황이 포착됐다. 물론 미행 배경에는 이맹희 전 회장이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낸 상속 소송이 있었다.

    사면초가에 탈출 쉽지 않을 듯

    황태자 이재현 날개 없이 추락하나

    5월 29일 이재현 회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한 검찰 수사관들이 검찰청사로 향하고 있다.

    이 회장의 ‘경영 승부사’로서의 면모가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은 2002년 사명을 제일제당에서 CJ로 바꾸면서부터다. 제일제당 독립 초기 외삼촌인 손경식 회장과 공동경영체제를 이어가던 이 회장이 본격적으로 전면에 나선 것이다.

    이미 독립 초기부터 기존 식품 분야 외에도 CJ미디어와 물류, 홈쇼핑사업 등 다각화한 포트폴리오에 눈을 돌리며 사업을 확장해온 이 회장은 2000년까지 CJ 개발, CJ 시스템즈, CJ E·M, CJ CGV, 드림라인, CJ투자증권, CJ대한통운, CJ프레시웨이, CJ오쇼핑 등을 쉴 새 없이 설립하거나 인수하며 사세를 확장해나갔다. 또한 2000년부터는 경남방송과 마산방송을 시작으로 양천유선방송, ㈜ 금양, CJ헬로비전 중부산방송, CJ헬로비전 해운대기장방송 등 미디어 분야로까지 본격적으로 손을 뻗으며 케이블TV 업계를 접수했다. CJ그룹이 식품 분야뿐 아니라 바이오 및 신소재,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신유통 등 4대 축을 세울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이러한 승부사 기질이 크게 일조했다는 분석이다.

    그의 이러한 경영 스타일은 고 이병철 회장과도 많이 닮았다. 트렌드를 읽는 안목이나 중·장기적인 투자 스타일, 그리고 임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한 인수합병(M·A)의 성공적인 안착 등은 그에게 붙은 ‘리틀 이병철’이라는 별명이 무색지 않을 정도다.

    그런 CJ그룹이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이 회장은 물론 이 회장 일가 전체가 해외 비자금 조성과 탈세 혐의로 검찰수사를 받음으로써 그룹 이미지뿐 아니라 경영 자체에도 큰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CJ그룹이 고수해오던 경영 스타일도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CJ그룹은 주력계열사인 CJ 제일제당과 CJ대한통운의 지난 1분기 영업실적 감소폭이 20%에 달하는 등 상당한 실적 악화를 겪고 있다. 5월 18일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했지만 현 상황으로 봐서는 회복이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2010년 5월 CJ그룹은 ‘2013년 Global CJ, 2020년 Great CJ’라는 기치를 내걸고 제2의 도약을 선언했다. 이 회장 역시 경영 초점을 창립 60주년인 2013년에 맞춰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2013년은 여러모로 CJ그룹에겐 최악의 해로 기록될 것 같다. CJ그룹이 현재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새롭게 태어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