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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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꿔야 산다, Happy New Body!

불안한 시대, 믿을 것은 결국 나… 2009년 ‘몸 트렌드’

  •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입력2008-12-31 18: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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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가꿔야 산다,  Happy New Body!
    ‘몸의 해’ 2009!

    중견기업 마케팅팀에 근무하는 김영훈(33·가명) 씨는 얼마 전 1년치 피트니스 회원권을 끊었다. 회사의 경영 실적이 좋지 않아 입사 후 처음으로 연말 보너스를 받지 못했는데도 거액을 쓰기로 결심한 데는 남모르는 사연이 있었다.

    “회사의 신규 프로젝트팀에 들어가는 바람에 최근 몇 달간 야근을 밥 먹듯이 했어요. ‘때가 어느 때인데 주말에 한가롭게 집에서 쉬냐’는 팀장의 채근에 주말도 반납한 채 무리를 하게 됐죠. 두 달간 과로한 결과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어지더라고요. 면역력이 약해졌는지 감기도 달고 살고요. ‘나만 믿고 따르라’는 팀장을 믿고 열심히 했는데, 글쎄 그가 갑자기 회사를 떠나버렸어요. 알고 보니 다른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오래전부터 은밀하게 이직을 준비했더라고요. 결국 남은 것은 나빠진 제 건강뿐이었죠. 그때 스스로 머리를 쥐어박으며 ‘세상에 믿을 사람은 나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생각을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제 평생 처음으로 피트니스 장기 회원권을 끊었습니다.”

    취업준비생 이정은(25) 씨는 최근 피부관리실에 정기적으로 다니기 시작했다. 유명 여대 출신에 외국어 실력이나 외모도 ‘평균 이상’이라고 자평하지만 벌써 원서를 넣은 회사 다섯 군데에서 줄줄이 낙방했다. 이씨는 토익 점수를 높이고, 입사에 유리한 자격증을 준비하는 것과 동시에 ‘외적인 업그레이드’를 추구하기로 결심했다.

    “원래 외모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스타일이었어요. 그런데 불황이 닥친 이후 취업이 한층 어려워지다 보니 뭐 하나라도 결격 사유가 있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여드름 흉터가 많은 편인데 그것 때문에 첫인상을 망치나 싶어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스스로에게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외국어 6개월 배우는 것보다 가시적으로는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겠다 싶은 생각도 들어 ‘투자 대비 효과’를 따져보고 결정했습니다.”



    외모가 능력의 부분집합이 된 것은 이미 오래다. 강남에스엔유피부과 장승호 원장은 “대기업 인사이동이 본격화하는 연초에 다양한 나이대의 남성 직장인 환자들이 늘어나는데 이는 그만큼 깔끔한 외모와 인상이 인사, 승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경기가 좋지 않은데도 남성 직장인 손님이 오히려 늘어난다는 것은 어려울수록 좋은 이미지로 자신을 부각해야 한다는 마인드가 강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외모는 곧 몸으로 확대해 볼 수 있다. 건국대 의대 하지현 교수(신경정신과)는 “몸 관리가 잘되지 않는 사람은 자기 관리에 약한 사람이라는 통념이 생기면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한 수단으로 몸에 투자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 교수는 “경제 불황으로 사회적 불안이 커지는 요즘 같은 때에는 개인의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몸 관리에 더욱더 매달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김난도 교수(소비자학과) 역시 불확실성이 높을수록 자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고 말한다.

    “믿고 의지할 것을 밖에서 찾지 못할 때 ‘나를 지켜줄 것은 결국 나’라는 절박함이 되살아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신의 건강이나 외모 가꾸기에 더욱 몰두하게 되는 것이지요.”

    김 교수는 최근 발간한 책 ‘트렌드 코리아 2009’(미래의창)에서 인간은 극한의 상황에서 비로소 진정한 자신을 만날 수 있다는 실존주의적 이론이 2008년 말부터 불어닥친 경제, 정치, 사회적 불확실성과 더불어 힘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이를 ‘불황형 실존주의’로 규정하고 발표한 2009년 10대 소비 트렌드 중 첫 번째는 ‘더 나은 나를 추구하라(Better Me)’. 김 교수는 “자신에 대한 투자를 통해 끊임없는 자기 계발을 꾀한다는 이 트렌드에는 여러 가지 수단으로 몸을 ‘업그레이드’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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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태우의 신건강인센터’ 박민수 원장은 몸에 ‘빨간불’이 켜지기 전, 내 몸의 자원을 활용해 위험을 예방하는 ‘리스크 매니지먼트’를 강조한다(왼쪽). 새해에는 ‘이 세상 무엇보다 중요한’ 내 몸 관리에 힘쓰는 사람들이 늘어날 전망이다.

    몸의 중요성에 대해 더욱 적극적인 해석을 내리기도 한다. 최근 ‘육체의 탄생’(민음사)을 펴낸 서울대 기초교육원 이영아 강의교수는 “바야흐로 우리가 몸을 통해 삶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몸에 의한, 몸을 위한 삶을 사는 시대에 다다랐다”고 말한다. 건강하고 아름답고 효율적인 몸을 추구하려는 현대인의 강박이 고도 자본주의사회를 유지하는 중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 역시 “정신이 피폐해지고 마음이 괴로워지는 시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몸에 집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새해에는 몸에 대한 관심이 ‘학문적 대상으로서의 몸’으로 번져나갈 전망이다. 특히 진화론을 발표한 찰스 다윈의 탄생 200주년, 그의 역작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을 기념하는 각종 학술대회가 펼쳐지는 것과 맞물려 인간 몸에 대한 생물학적, 사회적, 인문학적 담론이 좀더 활발해질 예정이다.

    문학 철학 역사학 심리학 사회학 언어학 등을 전공한 학자들을 중심으로 2007년 결성한 ‘몸문화연구소’는 2009년 연구 주제를 ‘일상 속에서의 몸’으로 정했다. 먹고 마시고 쓰고 놀고 섹스하는 몸과 미용산업과 관련되는 현대적 미(美)와 관련된 몸을 다룰 예정.

    김종갑 몸문화연구소장(건국대 교수)은 “이제야 국내에서도 인문학적 관점에서의 몸이 본격적, 체계적으로 연구되고 있으며 상업화된 몸과 철학·현상학적 연구 또한 앞으로 좀더 활발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9월경 열리는 한국서양사학회 학술대회 주제도 ‘서양역사 속의 몸과 생명정치(Body and Biopolitics in Western History)’다. 몸과 권력의 관계를 규명해보려는 시도다.

    고려대 염운옥 연구교수(사학과)는 인간이라는 생물종 자체를 진화시키기 위해 우성 유전자만 선택하게 하는 우생학 관련 담론 역시 올해 더 힘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다. 염 교수는 “근대적 진보주의 맹신의 예로 비판받았던 우생학이 ‘맞춤 아기’, 시험관 아기 시술 등의 현대의학 트렌드와 맞물려 윤리적, 사회적으로 재고찰되는 계기가 마련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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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대에 통하던 미인 ‘몸’의 기준은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 1927년 1월, 잡지 ‘별건곤’에 실린 만문만화. 미모의 젊은 여성에게 환호성을 보내는 남성들을 그렸다.(‘육체의 탄생’에서 발췌).

    리스크 매니지먼트와 맞춤형 몸 만들기

    이영아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건강하고 이상적인 몸 상태에 대한 기준은 사회진화론이 전파된 개화기 때 급격히 변했다”고 말한다.

    그 무렵부터 서구적 미를 지향했기 때문인지 이 교수의 저서 ‘육체의 탄생’에 소개된 이상적인 미인의 기준은 과거,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 1928년 발행된 대중잡지 ‘별건곤’에 실린 글 ‘미인제조 비법 공개’는, 미인에 대한 세계 공통의 표준은 인체미의 근본이 되는 전형이어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키는 머리 부분 전체 길이의 8배, 얼굴 길이의 10배, 코밑에서 아래턱까지가 길고 안면은 손바닥과 길이가 같고, 두 팔을 벌린 길이가 키와 같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이상적인 몸의 기준은 크게 변하지 않았을지언정 이상적인 몸을 만들기 위한 방법론은 매년 버전을 달리해가며 새로운 트렌드를 빚어내고 있다.

    발리토탈피트니스센터 현재길 매니저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무조건 남을 따라 근육을 키우거나 살을 빼는 운동이 유행했다면, 요즘은 몸의 균형과 전체 라인에 맞게 세분화된 운동을 하는 것이 트렌드”라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맞춤 몸 만들기’도 인기몰이 중이다. 웰리스컴퍼니 주형섭 수석트레이너는 “자기 신체의 장점과 취약점을 파악하고 이에 맞춰 몸을 가꾸고 보완하려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이제는 상당수가 체형교정, 컨디션 조절, 골프를 잘 치기 위한 몸 만들기 등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피트니스센터를 찾는다”고 말했다. 이제 몸 만들기에 앞서 개개인의 신체 특성을 면밀히 파악하는 것이 트레이너의 중요한 기능이 됐다.

    한편 몸 가꾸기의 기본, 건강 지키기와 관련된 ‘핫’한 화두는 ‘리스크 매니지먼트’. 질병이 발병하기 전 이를 예측하고, 초기에 발견해 확산되지 않도록 막는다는 뜻이다.

    2008년 말부터 봇물을 이룬 대중의학 서적들 역시 이러한 트렌드를 증명한다. 출판계에서는 경기 침체가 본격화한 이후 사람들의 관심이 쏠려 안정적으로 판매될 수 있는 건강, 피트니스 관련 책들의 발간 비중을 높이고 있다.

    미국의 건강 전문 칼럼니스트가 쓴 ‘보디 사인-내 몸이 신호를 보낸다’(예담)는 몸 상태와 관련된 사소한 조짐을 통해 질병을 미리 막자고 주장한다.

    ‘귓불에 두드러지게 난 주름은 관상동맥 심질환이나 당뇨병 위험이 있다는 신호’ ‘붓거나 지나치게 붉어진 잇몸은 경구피임약, 우울증 치료제, 심장약과 같은 특정 약물에 대한 반응이거나 당뇨병의 신호’ ‘너무 잦은 방귀는 유당분해효소결핍증 또는 음식 알레르기, 과민성대장증후군, 염증성 장질환일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이다.

    최근 ‘내 몸 경영’(전나무숲)을 펴낸 ‘유태우의 신건강인센터’ 박민수 원장 역시 “위기 상황이 발생하기 전, 내 몸이 가진 각종 자원을 활용해 예방하는 것이 새로운 의료 패러다임이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기존의 예방 개념에서 한발 더 나아가 ‘내 몸 능력’을 최대로 끌어올림으로써 발병 가능성을 낮추자는 적극적 전략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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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습관 교정으로 몸과 마음의 병을 예방하기 위한 맞춤식 프로그램들도 인기를 끌고 있다. 힐리언스 서울센터의 요가 수업 모습.

    몸을 지배하는 정신

    ‘예방론’ 트렌드는 정신건강으로까지 이어진다. 정신과 의사인 이시형 박사가 개설한 자연치유센터 ‘힐리언스 선(仙)’ 역시 ‘예방론’을 기본 정신 중 하나로 삼고 있다.

    이 박사는 “병이 나기 전에 이를 예방하기 위해 생활습관 교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몸과 마음을 모두 다스릴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성했다”고 말했다. 요가 명상 상담 음식조절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이 센터에는 심란한 시기에 마음을 다스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이곳에서 1박2일을 보낸 차포테크리닉 심규만 원장은 “유기농 음식이나 좋은 운동도 도움이 됐지만 심리적, 정신적인 면에서 많은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건강한 몸과 정신이 서로 필요충분조건이라는 인식이 높아지면서 정신건강과 관련된 관심 또한 높아지고 있다. 정신건강과 관련해 최근 가장 큰 화두로 꼽히는 주제는 스트레스 매니지먼트다. 30~39세의 직장인 중 21.5%가 평소 직장에서 ‘매우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20~40대 직장인 5명 중 1명(18%)이 ‘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것(2008년 통계청 사회통계조사)으로 나타나면서 스트레스를 주제로 한 책이 봇물을 이루고 스트레스 관리센터 등 관련 산업 역시 활성화하고 있다.

    심리 서비스 컨설팅 회사인 휴노컨설팅의 이승미 연구원은 “스트레스가 개인의 발전과 성장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인 생산성을 방해하는 요소라는 인식이 생기면서부터 회사 차원에서 EAP(Employee Assistance Program·근로자 지원 프로그램) 등을 통해 스트레스를 관리해주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현대하이스코, LG전자 등 일부 기업에서는 사내 상담소를 운영하며 전문 업체에 의뢰해 직원들의 정신건강 서비스를 받게 하고 있다.

    한편 건강, 몸 만들기, 아름다운 몸 가꾸기 등 주로 기능적, 심미적으로 완벽한 몸을 지향하는 트렌드가 붐을 이루는 것과 달리 한쪽에서는 ‘완벽한 몸, 건강한 몸이란 없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는 것 역시 몸과 관련된 또 다른 트렌드로 꼽혀 흥미롭다.

    강신익 교수는 “건강이란 근대적 시대정신이 만들어낸 허구로 건강의 절대적 상태는 없다”고 말한다. 진화 과정에서 우리가 기준으로 삼는 ‘정상’이란 개념은 일시적인 적응상태에 불과하며, 이러한 관념적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관련 산업에 소비하는 것이 무모하다는 것이다. 강 교수가 속한 한국의철학회가 곧 발간할 책의 주제는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다.

    몸에 대한 생각과 접근 방법이 얼마나 큰 온도차를 보이든지 간에 우리 모두의 ‘원초적’ 목표는 행복한 몸을 추구하는 것일 터. 몸이 주인공이 되는 2009년, 좀더 행복한 몸으로 살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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