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팬 여러분,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이건 정말 며느리도, 대수학자 피타고라스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8월 2일자 ‘주간동아’ 1099호에서 팀별 득점과 실점을 기반으로 미래 승률을 예측하는 ‘피타고라스 승률’을 소개할 때만 해도 롯데는 ‘아웃 오브 안중(眼中)’이었습니다. 그 뒤 롯데가 바짝 성적을 올리기 시작할 때 주변에서 “‘베이스볼 비키니’에 롯데 이야기를 써보라”는 말을 들었지만 “다음 주에도 잘한다는 보장이 없어 주간지에 쓰기 어렵다”며 피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제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후반기 아니, 6월 24일 이후 두 달 넘게 프로야구 최강 팀은 ‘롯데’입니다. 저는 조만간 롯데 구단 관계자를 만나 팀 이름을 ‘솟아오르는 롯데’라는 뜻에서 ‘솟데’라고 바꿀 것을 적극 제안할 예정입니다.
물론 바로 위 얘기는 농담이지만, 롯데가 이 기간 최강 팀인 것은 사실입니다. 롯데는 6월 24일 이후 9월 4일 현재까지 57경기에서 38승2무17패(승률 0.691)를 기록했습니다. 같은 기간 승률 2위이자 현재 2위인 두산 베어스(승률 0.648)보다 앞선 1위 기록입니다. 전체 팀 순위도 7위에서 4위로 끌어올렸습니다. 3위 NC 다이노스와는 이제 두 경기 차. 남은 17경기에서 순위가 뒤집힌다 해도 놀랄 일은 아닙니다.
자꾸 6월 24일을 기준으로 삼는 건 그 전날이 롯데가 올 시즌 성적이 가장 나빴던 날이기 때문입니다. 6월 23일 롯데는 31승39패로 ‘승패 마진’ -8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이날부터 +21을 기록해 현재 전체 기록은 +13이 됐습니다(그래프 참조).
투수가 막는다
6월 24일 롯데는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두산과 맞대결을 벌였습니다. 롯데에서 선발로 내세운 건 외국인 투수 브룩스 레일리(29). 이 경기 전까지 3승7패, 평균자책점 5.63으로 짐을 싸야 할지도 모르는 레일리였습니다. 레일리는 이 경기에서도 2회까지 4실점을 하면서 흔들렸습니다. 이후 5이닝을 더 던졌는데 실점은 그대로 4점이었습니다. 7이닝 4실점으로 버텨낸 겁니다. 문제는 타선에서 딱 한 점밖에 뽑지 못했다는 점.
레일리가 그대로 패전투수가 되나 싶던 순간 롯데 타선은 8회 초 ‘소총 부대’를 가동하며 안타 8개를 몰아쳐 7점을 뽑아냈습니다. 결국 롯데는 장시환(30)과 손승락(35)에게 1이닝씩 맡기면서 8-4로 승리했습니다. 이날 이후 레일리는 13경기에 나서 완투승을 포함해 7승 무패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기간 평균자책점은 2.52. 롯데는 갑자기 에이스를 한 명 얻었습니다.
손승락도 이 경기를 기점으로 다른 투수가 됐습니다. 전날까지 11세이브에 평균자책점 3.05인 손승락이었는데 이날 이후 20세이브에 평균자책점 1.89를 기록 중입니다. 평범한 마무리에서 롯데가 그리도 애타게 찾던 ‘특급 마무리’가 된 겁니다. 시즌 초반 롯데 마운드에서 ‘소년 가장’을 맡고 있던 박세웅(22)도 꾸준히 자기 몫을 다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이 분위기가 마운드 전체로 퍼질 차례. 롯데 마운드가 이날 이후 제일 달라진 건 ‘위기관리 능력’입니다.
이날 전까지 롯데 투수들은 실점 위기상황, 그러니까 상대팀 득점권 상황에서 상대팀 타자에게 OPS(출루율+장타율) 0.875를 허용했습니다. 이날 이후 이 기록은 0.690으로 떨어졌습니다(표1 참조). 이렇게 상대팀 타자를 꽁꽁 묶으면 실점이 내려가는 게 당연한 일. 6월 23일까지 롯데는 경기당 평균 5.57점을 내주던 팀인데 최근 57경기에서는 4.39점으로 21.3% 줄었습니다.
말 그대로 호타준족
8월 3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 경기에서 롯데는 1회 초 수비 때 먼저 2점을 내주고 경기를 시작했습니다. 곧바로 1점을 따라가는 데 성공한 1회 말 무사 1, 2루. 타석에는 이대호(35)가 들어서 있었습니다. 풀카운트가 되자 조원우 롯데 감독은 두 주자에게 달리라는 사인을 보냈습니다. 이대호는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지만 각 주자는 한 베이스씩 진루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다음 타자 최준석(34)이 2타점 적시타를 치면서 롯데는 3-2로 역전에 성공했습니다. 1회 기회를 직접 살리지 못했지만 징검다리를 놓았던 이대호는 8회 2점 쐐기 홈런을 날리며 만원 관중을 열광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롯데는 7-2로 승리하면서 5연승을 이어갔습니다. 결승 득점을 올린 건 1회 말 최준석 타석 때 2루 주자였던 손아섭(29)이었습니다.
이 경기를 꼽은 건 6월 24일 이후 롯데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잘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6월 23일 이전 경기당 평균 5.00점을 뽑던 롯데 타선은 다음 날부터 5.49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표2 참조). 득점이 9.8% 늘어난 건 칭찬할 만한 일이지만 실점을 워낙 크게 줄여 티가 덜 납니다. 득점권 OPS가 0.789에서 0.816으로 오르긴 했지만 수비 쪽 변화만큼 극적이지는 않습니다.
그 대신 득점권을 만드는 과정은 주목할 만합니다. 시즌 첫 70경기에서 롯데는 경기당 도루 0.59개를 기록했는데 6월 24일 이후에는 0.75개로 28.8% 늘었습니다. 출루율은 0.358로 변함이 없고, 장타력은 0.431에서 0.438로 7리 오르는 데 그쳤는데도 롯데가 득점을 끌어올릴 수 있던 원동력은 도루였습니다. 제일 열심히 뛴 건 손아섭. 그는 6월 24일 이후 도루 14개(실패 4개)를 기록했는데 이 중 10개가 8월에 나왔습니다. 손아섭은 8월에 홈런도 9개를 몰아치면서 27일 20홈런-20도루 클럽에 가입했고, 월간 최우수선수(MVP)도 차지했습니다. 6월 24일 이후 홈런은 총 13개. 같은 기간 이대호도 리그에서 제일 많은 홈런 19개를 때려낸 건 물론, 8월 9일에는 2136일 만에 도루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최준석은 도루는 없지만 타격 슬럼프로 퓨처스리그(2군)로 내려갔다 8월 2일 다시 1군 무대에 합류한 뒤 득점권 타율 0.485(OPS 1.051)를 기록 중입니다.
이러면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뒤집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타자 사이에 퍼지는 게 당연한 일. 그렇게 ‘역전의 명수’가 된 롯데는 ‘(메이저리그 한 시즌 역대 최다승을 노리는) LA 다저스 나와’라고 외칠 수 있는 팀이 돼가고 있습니다. 요즘 롯데 경기를 보면서 제리 로이스터 전 감독이 강조했던 ‘노 피어(No Fear)’ 정신이 오버랩되는 건 저 혼자만이 아닐 겁니다.
사실 롯데는 가을보다 봄에 강한 팀. 그래서 ‘봄데’라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이 기억하는 것처럼 ‘가을야구’라는 표현은 부산이 원조입니다. 올해 부산에서 5년 만에 가을야구가 열린다는 건 거의 틀림없는 사실. 과연 올해는 1992년 그해처럼 가을 롯데, 그러니까 ‘갈데’까지 갈 수 있을까요.
네? 뭐라고요? 그만 떠들고 어서 와서 롯데 야구나 보라고요? 롯데, 야 임마야 동원이 행님 어무이가 새벽에 아들내미 동상 만지는 거 몬 봤나. 가을 끝까지 단디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