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고로 남편을 잃은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가 페이스북에 올린 추도 글의 일부다. 학창 시절 친구로 만나 11년간 부부로 함께 살았던 샌드버그와 남편 데이브 골드버그 전 ‘서베이몽키’ 최고경영자(CEO)는 이상적인 부부의 표상으로 통했다. 샌드버그는 2013년 저서 ‘린인(Lean In)’을 펴내며 첫 장에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도와준 남편에게 이 책을 바친다’는 헌사를 썼다. 그런 남편을 떠나보낸 뒤 샌드버그가 공개한 추도 글의 끝 부분엔 ‘만약 우리가 결혼하던 날, 누군가 다가와 꼭 11년 후 데이브가 내 곁을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해도 나는 변함없이 그와 결혼했을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남편이 떠났지만 영원히 그를 사랑할 것이라는 이 고백은 많은 이에게 깊은 인상을 줬다.
이해와 지지와 사랑. 샌드버그가 밝힌 이 세 가지 정서적 경험은 원만한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수요소로 꼽힌다. 결혼정보업체 듀오의 황희주 팀장은 “남녀 회원 대부분이 이상적인 배우자의 첫째 요건으로 배려심을 꼽는다”며 “과거에는 여성의 경우 배우자의 성격적 특성으로 추진력이나 리더십 등을 중시하는 면이 있었지만 요새는 자기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하는 쪽이 훨씬 많다”고 밝혔다.
부부관계 기본은 배려심과 안정감
2월 7일 GS건설이 주최한 단체 미팅 ‘밸런타인 데이 in 로맨틱 그랑서울’. 미혼남녀 300명이 참가했다.
김혜선 한국방송통신대 가정학과 교수가 발표한 논문 ‘30대 중후반 기혼남녀의 배우자 선택과 결혼생활의 의미’에서 응답자들이 결혼을 선택한 동기로 가장 많이 언급한 것도 ‘안정’이었다. 다만 남자는 배우자가 아침밥을 차려주고 자신을 잘 챙겨주는 것 같은 심리적 안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반면, 여자는 경제적인 안정 쪽에 좀 더 무게를 두는 경향을 보였다.
결혼정보업체 엔노블의 한기열 부대표는 이에 대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성과 여성이 말하는 안정의 의미에 다소 차이가 있었다. 남성들은 배우자가 가정을 ‘안정적으로’ 지켜주기를 바라고, 여성들은 남성이 경제적 책임을 다하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최근엔 부부가 함께 경제 활동을 하기를 원하는 쪽이 더 많다. 그러다 보니 남녀 모두 배우자에게 경제적인 안정과 심리적 안정 양쪽 모두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팀이 듀오와 함께 지난해 12월 전국 25세 이상 39세 이하 미혼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4 결혼리서치’에서도 안정 추구 경향이 뚜렷이 나타난다. 남녀 응답자 모두 희망하는 미래 배우자 직업 1위로 공무원·공사(남 13.3%, 여 11.3%)를 꼽은 것. 뒤이어 남성은 일반사무직(12.3%), 교사(11.9%), 금융직(7.0%), 약사(6.4%) 상대를 선호했고 여성은 일반사무직(10.3%), 금융직(7.9%), 교사(6.5%), 연구원(6.3%) 순이었다. 황희주 팀장은 “한때 사업가나 고액 연봉을 받는 금융계 종사자가 배우자감으로 각광받은 때가 있었지만, 요새는 소득은 다소 적어도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사람이 더 인기 있다”며 “여성들도 공기업 직원처럼 근무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아 가사를 더 잘 분담할 수 있는 배우자를 좋아한다”고 밝혔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바람을 충족하는 배우자가 없을 경우 굳이 결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5월 통계청이 남녀 3만6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회인식조사 결과를 최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인지통계정보시스템(GSIS)이 재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응답 여성 10명 중 4명(43.0%)이 결혼을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고 여겼다. ‘하는 것이 좋다’는 응답은 39.0%,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응답은 13.7%로 각각 집계됐다. 남성의 경우도 ‘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45.2%로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으나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 역시 34.4%에 달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국내 혼인 건수는 30만5500건으로 2004년 이후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고,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를 뜻하는 ‘조혼인율’도 6건으로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70년 이후 가장 낮았다. 20~24세 유배우율(배우자가 있는 비율)은 1992년 18.3%에서 2013년 2.8%로 낮아졌다. 같은 기간 25~29세 유배우율도 75.2%에서 25.2%가 됐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결혼과 출산 적령기로 여겼던 20대 후반 여성 가운데 4분의 1만 배우자가 있는 셈이다. 평균 초혼연령 역시 남성은 2013년 32.2세, 여성 2013년 29.6세로 1990년 남성 27.8세, 여성 24.8세에 비해 약 5세가량 늦어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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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같이하려면 경제력보다 성격
종합병원 간호사로 일하는 ‘골드미스’ 김은정(38) 씨는 “주위를 봐도 서른이 되기 전에 일찌감치 결혼한 친구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좋은 남자 있으면 결혼하고, 없으면 말지’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며 “우리끼리 얘기하는 좋은 남자의 조건은 이해심”이라고 밝혔다. 결혼정보업체 가연의 유수정 대리는 이에 대해 “요즘 가입자들이 상대방의 성격적 요소를 중요하게 여기는 건 분명하다”며 “지난해 27~39세 미혼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남성 응답자의 43.4%가 결혼 상대자의 성격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여성 응답자의 경우에도 38.6%가 성격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았고, 경제력·직업이라는 응답은 19.9%, 가정환경을 중시한다는 응답도 9.3%에 그쳤다고 한다. ‘2014 결혼리서치’ 응답자들이 배우자 선택 시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사항 역시 성격, 외모, 경제력, 가치관, 가정환경 순이었다.
그러나 이해심, 배려심 등의 성격을 한눈에 파악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한기열 엔노블 부대표는 “평생 함께할 사람을 고른다는 점에서 미래 배우자의 성격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며 “하지만 성격은 눈에 보이는 게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남녀가 만나는 상황에서는 특정 성격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이는 지표, 즉 상대방의 외모나 경제력, 직업 등이 훨씬 중요하게 여겨진다”고 밝혔다.
“얼굴은 마음의 창이라고 하니까, 호감 가는 외모를 가진 사람은 좋은 성격을 가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죠. 경제적으로 안정돼 있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배려심이 많을 것으로 여겨지고요. 윤택한 가정에서 좋은 부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한 사람이 아무래도 비뚤어질 확률이 적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성격’을 확인하는 지표로 다양한 ‘조건’이 등장하는 겁니다.”
한 부대표의 설명이다. 이때 남성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조건은 외모, 여성은 경제력이라고 한다.
‘2014 결혼리서치’ 조사에서도 ‘성격’ 응답을 제외할 경우 남성은 여성의 외모(17.2%), 가치관(8.5%), 직업(6.9%), 가정환경(6.3%)을, 여성은 남성의 경제력(14.0%), 외모(9.3%), 가정환경(8.9%), 가치관(8.1%)을 우선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이상적인 신랑감은 △공무원·공사 △연소득 4927만 원 △자산 2억6588만 원 △4년제 대졸 △신장 175.4cm이며, 이상적인 신붓감은 △공무원·공사 △연소득 3843만 원 △자산 1억7192만 원 △학력 무관 △신장 164.6cm였다.
나이 한 살은 연봉 450만 원에 맞먹어
데이비드 버스 미국 텍사스주립대 심리학과 교수에 따르면 남자가 여자의 신체적 매력을 우선시하고, 여자는 남자의 경제력에 큰 관심을 두는 현상은 세계 곳곳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버스 교수는 1984년부터 5년여 동안 세계 6개 대륙과 5개 섬의 37개 문화권에 사는 1만47명을 대상으로 배우자 선택에 대해 조사한 뒤 이런 공통점을 발견하고, 이는 ‘진화의 결과’라는 결론을 내렸다(27쪽 상자기사 참조).
서선영 이화여대 소비자학과 강사가 2008년 실시한 ‘대학생들의 가상 공개구혼장에 나타난 배우자 조건 분석’에서는 우리나라 미혼남녀가 배우자에게 원하는 또 하나의 조건이 눈에 띈다. 응답자 150명 가운데 남성 76.5%, 여성 67.3%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연령이라고 답한 것이다.
이 조사에서는 구체적인 연령 차가 제시되지 않았지만, 커플매니저들은 일반적으로 여성은 동갑부터 3~4세 연상, 남성은 동갑부터 3~4세 연하를 바란다고 말한다. 단 여성의 경우 만 35세가 넘으면 배우자로서 호감도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황희주 듀오 팀장은 “40대 중반이 넘는 남성 회원도 배우자로 30대 중반 이하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밝히는 이유는 출산에 대한 고려 때문”이라며 “비슷한 연배의 전문직 여성들은 능력과 사회적 지위가 뛰어나도 상대적으로 차별받는 면이 있다”고 밝혔다. 한 커플매니저는 “안정된 경제력을 갖추고 독신생활을 즐기는 남성 중에는 이를 바탕으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젊은 여성과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도 많다. 30대 중반부터 40세 전후에 이르는 이런 남성을 이쪽 업계에서는 ‘골드미스터’ 나아가 ‘다이아미스터’라고 부른다”고 밝혔다.
결혼정보업체 선우 관계자는 배우자를 선택할 때 나이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배우자를 만날 때 나이 한 살은 연봉 450만 원 정도로 환산할 수 있다. 만약 남성이 7세 차이가 나는 여성을 원할 경우 여성보다 연봉을 3150만 원 더 벌어야 한다는 뜻”이라고도 했다.
“잠시 분석을 멈춰라”
그러나 골드미스가 결혼시장에서 반드시 경쟁력이 없는 것만은 아니다. 한기열 엔노블 부대표는 “막상 골드미스를 만나고 나면 사회적 경험을 공유할 수 있고 대화가 통해 좋다고 말하는 이가 많다. 특히 나이에 관계 없이 외모를 잘 관리한 여성은 남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고 밝혔다. 남성 역시 마찬가지다. 선우 관계자는 “회원 가운데 키가 165cm 미만인데도 비교적 수월하게 결혼한 남성 84명의 공통점을 찾아보니 환한 인상, 밝고 원만한 성격, 유머 감각이었다. 객관적인 조건이 사회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개인적인 매력을 통해 얼마든 좋은 짝을 만나는 게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세상에는 수많은 기준이 있고, 자신의 짝은 따로 있을 수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요즘 젊은이들이 조건을 우선시하느라 이런 단계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면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 커플매니저는 “만날수록 좋아지는 사람이 있으니 최소한 3번은 만나보라고 해도 거절하는 분들이 있다. 선입견으로 사람을 판단해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게 종종 안타깝다”고 밝혔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요즘 젊은이들은 합리적이라기보다 계산적인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가 제안하는 ‘좋은 사랑’을 하는 방법은 ‘분석 욕심’을 잠시 내려놓는 것이다. 그는 “남자친구가 있는 여성을 두 집단으로 나눠 한쪽은 상대를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 A4 종이 4장으로, 한쪽은 두세 줄로 써보라고 한 적이 있다.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두세 줄로 쓴 집단이 더 만족도가 높더라”며 “지나치게 분석하고 따지는 것이 행복한 사랑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라고 조언했다. 3포(연애·결혼·출산 포기)세대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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