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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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 마음 바꾸기 관건은 ‘기동’

치고 빠지는 설득의 기술

  • 남보람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elyzcamp@naver.com

    입력2015-04-20 10: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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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자자 마음 바꾸기 관건은 ‘기동’

    미 육군 특수부대 기준교범 ‘특수부대 작전(SPECIAL FORCES OPERATIONS)’.

    군사전략에서 기동(maneuver)은 이동(movement)과 다르다. 기동은 목적을 갖고 사전계획에 따라 적을 향해 부대를 움직이는 것이다. 이동은 자신의 위치를 바꿔 특정 물리적 지점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적을 향한 기동’은 적을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함으로써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물리적 혹은 심리적 여건을 조성하는 일이다. 기동 자체가 작전이나 전술의 목표일 수는 없으며, 항상 더 상위의 군사적 목표를 전제로 한다.

    미 육군 야전교범 ‘특수부대 작전(SPECIAL FORCES OPERATIONS)’은 세계 최강으로 손꼽히는 육군 특수부대 기준교범이다. 서두에서 특수부대원의 핵심적인 특징을 ‘교전 전문가 및 무기 사용의 대가’로 내세우는 이 책은 특수부대 구성원이 개인으로서는 격투, 팀으로서는 전술적 기동에서 최고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기동의 원칙’은 군사작전의 일반적 원칙이기 때문에 500종이 넘는 야전교범에서 큰 변형 없이 제시되곤 한다. ‘적이 대응할 수 없는 속도로 기동해 적으로 하여금 새로운 문제와 위험에 직면하도록 강요하고 적의 균형을 와해시킨다’는 게 그 골자다. 그러나 ‘특수부대 작전’은 이를 응용, 심화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특수작전 장병은 결코 정공법으로 기동하지 않는다. 특수작전에서 기동이란 치고 빠짐으로써 일정 지역에서 적의 활동을 방해하고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것이다.’

    결코 정공법을 택하지 말라

    이는 미군 특수작전 부대의 정예였던 델타포스의 뼈저린 실패로 남은 1993년 ‘모가디슈 전투’ 이후 더욱 강조됐다. 영화 ‘블랙 호크 다운’으로 유명해진 당시 전투의 핵심 패인은 ‘수가 빤히 보이는 계획’이었다. 델타포스는 주간에 헬기를 운용했고, 공중강습이 시작되기 전에 차량탑승 부대를 보내 소말리아 민병대에게 그 의도가 노출됐다. 예상치 못한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음에도 기존 계획을 바꾸지 않은 채 계속 화력으로만 상대를 몰아붙이려 했다. 치고 빠지기는커녕 스스로 코너에 처박힌 것이다.



    이 때문에 ‘특수부대 작전은 적의 취약점, 예상하지 못한 지점, 준비되지 않은 부분을 공격해야 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물론 모든 작전을 그렇게 수행할 수는 없다. 그러나 특수작전은 그렇게 해야 한다. 기동의 원칙은 적에게 약점이 없으면 새로 만들어서라도 집요하게 노리라고 강조한다. 끝없이 파고들면 언젠가는 약점이 노출된다.

    약점을 발견하면 다음 단계는? 기동의 원칙은 ‘먼저 적의 약점을 공격하고 이에 적이 자신의 주력(강점)으로 대응할 때, 또다시 생각지 못한 수단과 방법으로 적의 측·후방을 공격하라’고 제시한다. 정글의 포식자인 사자라 해도 앞만 보며 달릴 때 옆구리를 들이받히면 쓰러질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성과를 위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특수부대 작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결정적 성과를 내고 싶다면 특수부대 지휘관은 계산된 높은 위험들을 감수해야 한다.’ 여기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은 ‘지휘관’이다. 작전의 실패가 개인의 생명은 물론, 국가 이익과도 직결된 전투 현장에서 위험을 감수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다름 아닌 지휘관의 몫이다. 사소한 실수가 큰 파장을 낳고 감정에 치우친 용기가 참사로 이어지는 현대 군사작전의 특성 때문에 최근 미 합동참모본부는 전쟁의 원칙에 ‘자제(restraint)의 원칙’을 새로 포함한 바 있다. 결국 조직 차원의 위험 감수는 책임자의 권한이라는 뜻이다.

    자, 이제 당신은 기동의 원칙을 활용해 투자자를 설득하는 작업에 나서기로 마음먹는다. 서두에서 기동의 원칙은 물리적 측면과 인식 측면에 모두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효과적인 기동은 그 시도만으로도 적을 심리적으로 압박하고 균형을 와해시킬 수 있다. 이 부분이야말로 기동의 원칙을 비즈니스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이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저 대화의 틀을 개인화해야 한다. 이익이 예상되는 협업 제안에서 기업이나 기관의 이름을 업은 설득은 신뢰도 상승에 기여하곤 한다. 그러나 이익을 쉽게 장담하기 어려운 협업에서는 배경도 별 소용이 없다. 도리어 손해가 나더라도 빠져나갈 구멍이 있을 것이라는 의구심만 살 수 있다.

    그러므로 공식적 협업을 제안하는 자리라 해도 이름 석 자를 걸고 한 인간으로서 나설 필요가 있다. 자신이 속한 기업의 건실함과 준비한 객관적 수치가 통하지 않는다면, 상대의 마음으로 기동해 균형을 흔들어보라는 것이다. 예컨대 미리 파악한 상대의 인터뷰 기사를 언급하거나, 상대와 교감을 이룰 만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라. 지갑 속 가족사진을 보여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분명히 당신이 생각한 것보다 큰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투자자 마음 바꾸기 관건은 ‘기동’

    1993년 소말리아 내전에 개입한 미군 특수부대 작전의 실패를 다룬 리들리 스콧 감독의 2002년작 ‘블랙 호크 다운’의 한 장면.

    기업 목표와 개인 욕망의 균형점

    다음으로 상대의 욕망을 파악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흔히 사람들은 인간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잣대로 결정에 임한다고 생각하지만,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은 인간 의사결정의 근본적 성향이 주관적 혹은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부분적으로나마 증명한 바 있다. 투자자도 인간이다. 회사의 결과적 이득보다 협상 과정에서의 인정을 바라기도 한다. 10원 단위 손익을 따지는 구두쇠가 사회공헌이라는 가치 앞에서 주판을 내려놓을 때도 있다. 그 인정과 가치의 포인트를 찾는 작업이 쉽지 않을 뿐이다.

    상대 기업의 목표와 투자자 개인의 욕망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으려면, 상당한 수준의 고급 정보가 필요하다. 유명인사가 아니라면 개인적인 정보를 알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협상과 설득은 한두 차례로 끝나는 게임이 아니고, 당신은 회의와 식사를 반복하는 동안 상대의 성향과 바람을 읽을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실제로 적잖은 벤처나 스타트업의 성장 비하인드 스토리는 식사, 술자리, 공연 관람, 골프 등을 통한 공감대를 강조한다. 이를 통해 느껴지는 상대에 대한 호감과 매력이 투자 결정의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첫인상과 관상을 믿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보라.

    다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협상 테이블도 아닌 간단한 미팅에서 자신이 내릴 만한 결정이 아닌데도 호언장담을 일삼다 망신을 당하는 사람들을 본 일이 있을 것이다. 거꾸로 생각하면 상대는 이들의 권위의식이나 자존심을 역이용해 협상에서 유리한 발판을 다졌던 것이다.

    허브 코헨이 말한 바와 같이, 협상과 설득의 링 위에서는 종종 강자와 약자의 위치가 뒤바뀐다. 일단 목과 어깨에 힘을 빼고 자신의 현재 위치가 어디이며 최초 목표가 무엇이었는지를 명확히 인식하자. 이때야말로 오히려 유연성과 융통성이 보장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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