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민 씨, 죄송해요. 오늘이 마지막으로 뵙는 게 될 것 같아요. 다른 학생들이 좀 불편해하더라고요. 또 새터민(탈북자)은 저희 소모임 기조에도 맞지 않는 것 같고….”
북한을 탈출한 뒤 서울시내 S대학에 입학한 심성민(가명·28) 씨가 얼마 전 큰마음먹고 지원한 학과 내 독서모임에서 들은 말이다. 심씨는 “의아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모임에서 북한 관련 주제로 토론할 기회가 있다고 해 가입했다. 북한에서 온 자신을 환영해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이유도 묻지 못한 채 모임을 나와야 했다.
“탈북자라는 게 왜 퇴출 사유가 되는지 묻고 싶었어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이 스쳤죠. ‘다음번에 다른 탈북 학생이 지원하면 그땐 받아주세요’라고 말하고 나왔습니다. 가끔 남한 학생이 외계인처럼 느껴져요.”
“새터민은 저희 모임에 안 맞고…”
탈북 학생인 이민국(가명·24) 씨도 서울의 또 다른 S대학에 입학한 뒤 비슷한 ‘왕따’를 경험했다. 신입생 시절 그는 같은 학과 내 모임에 참석했다. 동기와 선배들은 북한에서 왔다는 말을 듣고 그를 ‘이방인’ 대하듯 했다. 한 동기는 “간첩 아닌 거 맞아? 주민등록증 좀 보자”며 짓궂게 말을 걸었다. 그는 “장난인 줄 알았지만 기가 질렸다”고 했다.
남북하나재단(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에서 발표한 통계자료를 보면 2014년 2월 말 입국자 기준으로 우리나라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은 2만6368명이다. 연령별로는 20대가 7339명, 10대가 3229명으로 전체의 40%나 된다. 이는 최근 가족 단위 입국이 증가하면서 10대와 20대의 학령기 청소년이 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탈북 대학생 수는 2009년 259명에서 2010년 999명으로 크게 늘어난 후 2013년에는 1397명으로 집계됐다.
이제 웬만한 대학 캠퍼스에선 탈북 대학생과 나란히 앉아 강의를 듣거나 동아리 활동을 함께하는 것이 특별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탈북 대학생 수가 늘수록 중도 탈락률도 높아지는 것이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2013년 한 논문에 따르면 탈북 대학생의 졸업률은 7.8%에 불과하다.
어렵게 한국에 와 대학에 입학했지만 휴학과 편입을 거듭하다 결국 졸업을 포기하는 탈북 대학생이 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탈북 대학생 5명과 심층 인터뷰를 통해 이들이 캠퍼스 생활에서 느낀 좌절과 희망에 대해 들어봤다.
이민국 씨는 교내 탈북 대학생 동아리에 가입했다. 탈북 대학생 상당수는 이씨처럼 한국 학생들과 교우관계를 맺지 못하고 밖으로 돌다 결국 같은 탈북 대학생끼리 어울리게 된다. 그럴수록 한국 대학생들과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진다. 이씨는 “탈북 대학생 외엔 거의 교류가 없다. 학과 동기조차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고 했다.
이씨는 한국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북한식 어투를 들었다. 북한에서는 친구에게 “야, 죽여버린다”는 말을 쉽게 했다. 수업시간에 옆자리 학생에게 친근감의 표시로 이렇게 말했더니 그 학생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라는 것. 이씨는 “북한식 직설화법, 억양, 어휘 때문에 교우관계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털어놨다.
탈북 대학생의 또 다른 고민은 영어다. 영어로 읽고 쓰고 말하고 듣는 데 약할 뿐 아니라 영어에서 온 외래어조차 의사소통에 장애가 된다. 예컨대 누군가가 “그 ‘드라마’의 두 ‘라이벌’은 ‘게스트하우스’의 ‘로비’에서 ‘마케팅’ 관련 ‘노하우’가 담긴 ‘디스켓’을 주고받았다”고 말하면 탈북 대학생 상당수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서울시내 D대학에 다니는 탈북인 이예리(가명·여·23) 씨는 “7년 전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왔지만 아직도 영어가 두렵다”고 말했다. 이씨는 “탈북 대학생은 대부분 한국에 와서 A, B, C부터 배우기 때문에 영어가 서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외래어 들으면 머리가 지끈”
심성민 씨는 인터뷰 도중 나온 ‘컬처 쇼크(culture shock·문화 충격)’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영어는 물론이고 외래어도 내겐 장벽이다. 외래어가 들어간 말을 듣고 있으면 머리가 지끈지끈하다”고 했다. 그는 “강의시간에 교수님이 외래어를 섞어 말하면 들리는 대로 기록해뒀다가 수업이 끝난 뒤 무슨 뜻인지 찾아본다”고 했다. 당연히 영어 강의는 수강할 엄두도 못 낸다. 그는 영어 공부를 위해 1년 정도 휴학할 계획이다.
경영학과에 다니는 이민국 씨도 1학년 기초 교양수업인 영어 Ⅰ, Ⅱ는 물론이고 전공수업 가운데 영어로 진행하는 재무조직 과목의 수강신청을 미룬 상태다.
한국어로 진행하는 전공수업도 따라가기가 만만치 않다. 이씨는 “강의 내용의 절반도 이해하기 힘들다. 같은 과 학생들에게 물어보고 싶어도 친하지 않으니까 쑥스럽고 미안해 못 한다”고 했다. 수학적 지식이 요구되는 전공 필수과목 역시 수강신청을 미뤘다. 또 조별 발표 과제가 있는 수업에선 보통 교수가 임의로 조를 짜주는데 탈북 대학생은 조원들로부터 경원시될까 두려워 이런 수업을 아예 들으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탈북 대학생은 영어나 전공과목을 따라잡기 위해 따로 배우는 경우가 많다. 그러려면 아르바이트를 줄이거나 별도의 학원비를 지불해야 한다. 이는 당연히 재정적 부담으로 이어진다.
2013년 서울시내 K대학에 입학한 김재원(가명·33) 씨는 탈북 대학생이 한국 캠퍼스에 적응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몸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에 오자마자 먼저 학자금을 모으기 위해 1년간 스킨스쿠버 관련 일을 했고, 영어와 학업을 따라가기 위해 2년을 투자했다. 부산의 한 국립대를 2년간 다니다 지금 학교로 옮겼더니 어느새 서른 살이 됐다. 김씨는 “동기들이 띠동갑이다. 몇 년간 고생한 끝에 영어나 외래어를 이해하게 됐고 캠퍼스 생활에도 안정을 찾았다”고 말했다.
‘몇 년을 고생해야 평범한 대학생이 된다’는 말에 탈북 대학생은 대체로 고개를 끄덕이는 편이다. 심성민 씨는 최근 해오던 아르바이트 중 일부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전공과 영어공부에 전념하기 위해서다. 그 대신 주말에 호텔 서빙 아르바이트와 공사판 막일을 한다. 정부는 그에게 매달 기초생활수급비 42만 원을 지급하지만 집세와 학비, 생계비로도 턱없이 부족하다. 이민국 씨는 공장에서 일한다. 한국으로 오는 것을 도와준 브로커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서다.
이예리 씨는 7년간 한국에 살면서 북한 말투를 바꿀 수 있었다. 대학 친구나 고교 동창에게 자신이 탈북자임을 밝히지 않는다. 이씨는 “머뭇거리다 밝힐 시기를 놓쳤다”고 말했다. 일부 탈북 대학생은 탈북자 출신이라는 점이 인간관계를 맺거나,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거나, 진로를 개척하는 데 핸디캡이 된다고 여기는 듯했다. 이로 인해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기도 한다.
K대 정치외교학과에 다니는 정지영(가명·24) 씨는 ‘문화 장벽’에 부딪혀 고생했다. 학과 동기들과 대화할 때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고. 그는 “동기들이 술자리에서 프로야구, 프리미어리그, 군대를 주제로 이야기하며 웃음꽃을 피웠지만 나는 그 말이 왜 재미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후 한국 친구들과 사귀려고 따로 시간을 내 공부했다고 한다. 이어지는 정씨의 말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홍명보와 박지성의 등번호가 20번, 21번이라는 사실을 외웠어요. 한국 사회의 유명 인사에 대해 상세히 공부했죠. 외환위기, 금융위기, 미국산 쇠고기 파동, 한류 같은 시사상식도 꼼꼼히 챙겼습니다. 추억은 공유할 수 없지만 사실관계 정도는 알고 있어야 대화가 가능하다고 봤어요.”
탈북 대학생에게 캠퍼스 생활은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한 것만큼은 아니겠지만, 적잖은 시련이자 도전인 듯했다.
*이 기사는 고려대 미디어학부 ‘탐사기획보도’ 과목 수강생들이 박재영 교수의 지도로 작성한 것입니다.
북한을 탈출한 뒤 서울시내 S대학에 입학한 심성민(가명·28) 씨가 얼마 전 큰마음먹고 지원한 학과 내 독서모임에서 들은 말이다. 심씨는 “의아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모임에서 북한 관련 주제로 토론할 기회가 있다고 해 가입했다. 북한에서 온 자신을 환영해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이유도 묻지 못한 채 모임을 나와야 했다.
“탈북자라는 게 왜 퇴출 사유가 되는지 묻고 싶었어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이 스쳤죠. ‘다음번에 다른 탈북 학생이 지원하면 그땐 받아주세요’라고 말하고 나왔습니다. 가끔 남한 학생이 외계인처럼 느껴져요.”
“새터민은 저희 모임에 안 맞고…”
탈북 학생인 이민국(가명·24) 씨도 서울의 또 다른 S대학에 입학한 뒤 비슷한 ‘왕따’를 경험했다. 신입생 시절 그는 같은 학과 내 모임에 참석했다. 동기와 선배들은 북한에서 왔다는 말을 듣고 그를 ‘이방인’ 대하듯 했다. 한 동기는 “간첩 아닌 거 맞아? 주민등록증 좀 보자”며 짓궂게 말을 걸었다. 그는 “장난인 줄 알았지만 기가 질렸다”고 했다.
남북하나재단(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에서 발표한 통계자료를 보면 2014년 2월 말 입국자 기준으로 우리나라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은 2만6368명이다. 연령별로는 20대가 7339명, 10대가 3229명으로 전체의 40%나 된다. 이는 최근 가족 단위 입국이 증가하면서 10대와 20대의 학령기 청소년이 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탈북 대학생 수는 2009년 259명에서 2010년 999명으로 크게 늘어난 후 2013년에는 1397명으로 집계됐다.
이제 웬만한 대학 캠퍼스에선 탈북 대학생과 나란히 앉아 강의를 듣거나 동아리 활동을 함께하는 것이 특별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탈북 대학생 수가 늘수록 중도 탈락률도 높아지는 것이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2013년 한 논문에 따르면 탈북 대학생의 졸업률은 7.8%에 불과하다.
어렵게 한국에 와 대학에 입학했지만 휴학과 편입을 거듭하다 결국 졸업을 포기하는 탈북 대학생이 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탈북 대학생 5명과 심층 인터뷰를 통해 이들이 캠퍼스 생활에서 느낀 좌절과 희망에 대해 들어봤다.
이민국 씨는 교내 탈북 대학생 동아리에 가입했다. 탈북 대학생 상당수는 이씨처럼 한국 학생들과 교우관계를 맺지 못하고 밖으로 돌다 결국 같은 탈북 대학생끼리 어울리게 된다. 그럴수록 한국 대학생들과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진다. 이씨는 “탈북 대학생 외엔 거의 교류가 없다. 학과 동기조차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고 했다.
이씨는 한국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북한식 어투를 들었다. 북한에서는 친구에게 “야, 죽여버린다”는 말을 쉽게 했다. 수업시간에 옆자리 학생에게 친근감의 표시로 이렇게 말했더니 그 학생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라는 것. 이씨는 “북한식 직설화법, 억양, 어휘 때문에 교우관계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털어놨다.
탈북 대학생의 또 다른 고민은 영어다. 영어로 읽고 쓰고 말하고 듣는 데 약할 뿐 아니라 영어에서 온 외래어조차 의사소통에 장애가 된다. 예컨대 누군가가 “그 ‘드라마’의 두 ‘라이벌’은 ‘게스트하우스’의 ‘로비’에서 ‘마케팅’ 관련 ‘노하우’가 담긴 ‘디스켓’을 주고받았다”고 말하면 탈북 대학생 상당수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서울시내 D대학에 다니는 탈북인 이예리(가명·여·23) 씨는 “7년 전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왔지만 아직도 영어가 두렵다”고 말했다. 이씨는 “탈북 대학생은 대부분 한국에 와서 A, B, C부터 배우기 때문에 영어가 서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외래어 들으면 머리가 지끈”
수업시간에 발표하는 탈북 대학생(위)과 강의를 듣는 탈북 대학생.
경영학과에 다니는 이민국 씨도 1학년 기초 교양수업인 영어 Ⅰ, Ⅱ는 물론이고 전공수업 가운데 영어로 진행하는 재무조직 과목의 수강신청을 미룬 상태다.
한국어로 진행하는 전공수업도 따라가기가 만만치 않다. 이씨는 “강의 내용의 절반도 이해하기 힘들다. 같은 과 학생들에게 물어보고 싶어도 친하지 않으니까 쑥스럽고 미안해 못 한다”고 했다. 수학적 지식이 요구되는 전공 필수과목 역시 수강신청을 미뤘다. 또 조별 발표 과제가 있는 수업에선 보통 교수가 임의로 조를 짜주는데 탈북 대학생은 조원들로부터 경원시될까 두려워 이런 수업을 아예 들으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탈북 대학생은 영어나 전공과목을 따라잡기 위해 따로 배우는 경우가 많다. 그러려면 아르바이트를 줄이거나 별도의 학원비를 지불해야 한다. 이는 당연히 재정적 부담으로 이어진다.
2013년 서울시내 K대학에 입학한 김재원(가명·33) 씨는 탈북 대학생이 한국 캠퍼스에 적응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몸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에 오자마자 먼저 학자금을 모으기 위해 1년간 스킨스쿠버 관련 일을 했고, 영어와 학업을 따라가기 위해 2년을 투자했다. 부산의 한 국립대를 2년간 다니다 지금 학교로 옮겼더니 어느새 서른 살이 됐다. 김씨는 “동기들이 띠동갑이다. 몇 년간 고생한 끝에 영어나 외래어를 이해하게 됐고 캠퍼스 생활에도 안정을 찾았다”고 말했다.
‘몇 년을 고생해야 평범한 대학생이 된다’는 말에 탈북 대학생은 대체로 고개를 끄덕이는 편이다. 심성민 씨는 최근 해오던 아르바이트 중 일부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전공과 영어공부에 전념하기 위해서다. 그 대신 주말에 호텔 서빙 아르바이트와 공사판 막일을 한다. 정부는 그에게 매달 기초생활수급비 42만 원을 지급하지만 집세와 학비, 생계비로도 턱없이 부족하다. 이민국 씨는 공장에서 일한다. 한국으로 오는 것을 도와준 브로커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서다.
이예리 씨는 7년간 한국에 살면서 북한 말투를 바꿀 수 있었다. 대학 친구나 고교 동창에게 자신이 탈북자임을 밝히지 않는다. 이씨는 “머뭇거리다 밝힐 시기를 놓쳤다”고 말했다. 일부 탈북 대학생은 탈북자 출신이라는 점이 인간관계를 맺거나,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거나, 진로를 개척하는 데 핸디캡이 된다고 여기는 듯했다. 이로 인해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기도 한다.
K대 정치외교학과에 다니는 정지영(가명·24) 씨는 ‘문화 장벽’에 부딪혀 고생했다. 학과 동기들과 대화할 때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고. 그는 “동기들이 술자리에서 프로야구, 프리미어리그, 군대를 주제로 이야기하며 웃음꽃을 피웠지만 나는 그 말이 왜 재미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후 한국 친구들과 사귀려고 따로 시간을 내 공부했다고 한다. 이어지는 정씨의 말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홍명보와 박지성의 등번호가 20번, 21번이라는 사실을 외웠어요. 한국 사회의 유명 인사에 대해 상세히 공부했죠. 외환위기, 금융위기, 미국산 쇠고기 파동, 한류 같은 시사상식도 꼼꼼히 챙겼습니다. 추억은 공유할 수 없지만 사실관계 정도는 알고 있어야 대화가 가능하다고 봤어요.”
탈북 대학생에게 캠퍼스 생활은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한 것만큼은 아니겠지만, 적잖은 시련이자 도전인 듯했다.
*이 기사는 고려대 미디어학부 ‘탐사기획보도’ 과목 수강생들이 박재영 교수의 지도로 작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