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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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분노가 재앙으로

삼단봉 사건·땅콩회항·서울시향 대표 욕설 파문…분노조절장애 극복법

  • 손석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psysohn@chol.com

    입력2015-01-05 10: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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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찰나의 분노가 재앙으로

    2014년 12월 17일 운전자 이모 씨가 터널 안에서 길을 양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른 차량의 유리창을 삼단봉으로 내리치는 블랙박스 영상 모습.

    최근 사회 일각에서 자신의 화를 참지 못해 막무가내로 폭력적인 언행을 하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평소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해 불만이 가득 차 있거나 자포자기 심정으로 막가는 사람이 아니라 고급 승용차 운전자, 공공기관 대표, 심지어 재벌 3세까지 마구잡이로 분노를 표출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평소 생활을 추정해보면 대한민국의 평범한 사람과 다름없거나, 오히려 더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분노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을 것 같다. 그러나 이들은 짧은 한순간, 화가 치밀어 오르는 찰나의 잘못된 언행으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일각에서는 실수의 대가가 너무 가혹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은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일부의 지극히 사소하고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별로 잘못이 없는 사람까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고 모욕을 당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분노의 속성을 들여다봤다. 분노는 본래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다. 자신이 뜻한 바대로 일이 풀리지 않거나 싫은 일을 강제로 해야 하는 경우, 혹은 억압적이거나 전투적인 상황에서 자연스레 발생한다. 그런데 이 분노로 인한 결과는 때로 매우 참혹하다.

    뇌 시스템 문제

    조물주는 인간에게 감정조절 능력을 선사했다. 분노는 순간적으로 엄청나게 느껴지지만 마치 산봉우리에서 금세 미끄러져 내려오는 흙처럼 몇 초 내지 몇 분 정도면 급격히 반감된다. 그다음 이성을 관장하는 뇌의 시스템(주로 이마 바로 뒤에 있는 뇌 앞쪽 부분으로 전두엽을 말함)이 가동되면 분노의 원인과 결과를 면밀히 분석한 후 가장 적절한 언행을 하도록 명령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 분노 폭발 또는 파괴적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분노조절장애라 한다. 분노조절장애는 일종의 충동조절장애에 해당한다. 충동조절장애의 범주에는 병적 도박, 병적 도벽(절도광), 병적 방화(방화광), 발모광, 간헐성 폭발장애 등이 있는데, 이 가운데 간헐성 폭발장애가 바로 분노조절장애다.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사람은 매우 사소한 자극에 발작적이고 폭발적인 행동을 보인다. 예컨대 식당 종업원의 친절하지 않은 말투에 격분하거나, 버스기사와 사소한 실랑이를 벌이다 갑자기 상대방에게 무차별적인 공격을 퍼붓는다. 발작 직전에는 몸을 바르르 떨거나 주먹을 꽉 쥐고 입술을 깨무는 등의 전조 행동을 보이고, 심장박동이 급격하게 빨라지거나 호흡이 가빠지는 등 자율신경계의 변화도 나타난다. 그러다 갑자기 폭발해 수 분 내지 수 시간 동안 난동을 피운다. 나중에 흥분이 가라앉으면 자신의 언행 일부분을 기억하지 못하기도 한다. 감각기능이 일시적으로 마비돼 한참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자신의 몸 일부가 다쳤음을 알아차린다.

    이들의 특징은 분노 발작이 없는 시기엔 전혀 공격 성향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 평소 얌전한 모습만 보던 주변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것도 당연하다. 발작이 일어나는 도중에 당사자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을 보통 인지한다. 그러나 설명하기 어려운 강렬한 충동에 의해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행동해버리며, 심지어 묘한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는 분노의 폭풍이 지나간 뒤 깊은 후회와 자책을 느낀다는 점에서 반사회성 인격 혹은 사이코패스와 구별된다. 하지만 후회만 할 뿐 병적인 행동을 개선하지 못하고 반복한다면 전문의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

    분노조절장애는 왜 생길까. 한마디로 단정해 말하긴 어렵다. 뇌 손상이나 알코올 독성에 의한 뇌장애, 특히 변연계(감정을 조절하는 뇌 부위) 장애 때문에 생길 수 있고, 원인이 무엇이든 뇌 안에서 세로토닌(행복, 즐거움, 안정감 등의 긍정적 정서를 느끼게 만드는 신경전달물질)이 감소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찰나의 분노가 재앙으로

    승무원의 서비스가 잘못됐다며 분노를 참지 못하고 이륙하려는 비행기를 회항시켜 물의를 빚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후천적 혹은 환경적 요인도 간과할 수 없다. 아동기 때 학대 또는 생명의 위협을 경험했거나 심한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을 겪은 사람에게도 생길 수 있다. 반복적인 노출에 의해 학습되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대중매체를 통해 화가 난 악당이 상대를 무자비하게 두들겨 팬 다음 쾌감을 느끼는 모습을 접하고, 게임 속 대리 폭력으로 후련함을 느끼면 현실에서도 쉽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잘못된 메시지가 아이들에게 깊이 각인되면 수많은 분노조절장애 환자의 탄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이들은 자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었고, 병적 행동을 고치지 않으면 더 큰 수렁에 빠질 수 있음을 스스로 인식하는 자기 통찰과 반성이 매우 필요하다. 법적 처벌을 받는다면 변화의 계기로 삼아 처벌을 달게 받은 후 새 출발해야 한다.

    숨 크게 쉬고 상황 벗어나야

    분노를 조절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분노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그 자리를 떠나라는 뜻이다.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분노가 폭발하면 얼른 다음 정류장에서 내린다. 자녀의 방에서 분노가 생기면 다른 방으로 가거나 집 밖으로 나간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분노의 정점이 꺾여 화가 누그러지고 다시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짧은 몇 초, 몇 분이라도 분노에게 길을 내주지 않으면 된다. 만일 ‘땅콩회항’ 사건 때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사무장을 내리게 하지 않고, 자신이 잠시 화장실이나 다른 장소로 옮겼다면 지금 같은 시끌벅적한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숨을 크게, 천천히 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분노가 갑자기 치밀어오를 때 동반하는 현상은 교감신경계의 활성화다. 그 결과 호흡이 빨라지고 거칠어지며 심장박동이 증가하고 온몸 근육에 힘이 들어간다. 눈도 크게 떠지고 입안이 바짝 타들어가며 땀이 나고 털이 곤두선다. 그때 천천히 심호흡을 하면 활성화된 교감신경계를 진정시킬 수 있다. 그 결과 몸이 이완되고, 화가 난 뇌가 가라앉는다. 이는 즐거워서 웃는 것도 좋지만, 일부러 웃음으로써 즐겁게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마지막으로 가족의 말을 떠올리자. 아내나 남편, 혹은 부모나 자녀에게 부탁해 “○○, 사랑해! 화가 날 때 그 순간만 잘 참고 넘기기만 하면 돼”라고 말해달라고 한다. 그다음 머릿속에 입력하고 마치 주문처럼 평소 반복적으로 되새긴 뒤 암송하고 혼잣말을 하라. 또다시 분노가 쳐들어오는 순간 그 말을 꺼내서 되뇌다 보면 별거 아닌 듯한 말 한마디가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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