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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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십 추락엔 날개가 없다

대한항공 조현아 갑질 파문 확산…총수 일가 우월적 행동 만천하에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입력2014-12-22 09: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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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너십 추락엔 날개가 없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12월 17일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서부지방검찰청에 출두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12월 17일 오후 1시 50분쯤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검찰청(서울서부지검) 앞에 고급 세단 한 대가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건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었다.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한 그는 12일 조사를 받기 위해 국토교통부(국토부)에 출석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검정 코트에 목도리 차림이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로 취재진 앞에 선 그는 “승무원을 폭행한 게 사실이냐” “회항을 지시했느냐” “사무장과 승무원에게 허위 진술을 하도록 지시한 적이 있느냐” 등 쏟아지는 질문에 고개를 숙인 채 작은 목소리로 “죄송합니다”라고만 짤막하게 말하고 눈물을 보였다.

    오만한 권력에서 빚어진 사건

    이날 검찰은 조 전 부사장을 상대로 12월 5일(미국 현지시간) 대한항공 KE086 여객기 일등석에서 벌어진 상황과 램프 리턴(Ramp Return·탑승 게이트로 항공기를 회항하는 일) 경위 등을 확인하고, 그가 승무원의 어깨를 밀치거나 책자로 사무장을 폭행했다는 참고인의 진술 내용에 대해서도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이날 12시간 넘게 검찰 조사를 받고 다음 날인 18일 오전 2시 15분쯤 귀가한 조 전 부사장은 일부 혐의는 인정했으나 폭행 혐의는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에서 ‘회항’한 건 항공기만은 아니었다. 오너십이 문제였다. 미국 CNN을 비롯한 해외 언론들은 이번 사건을 오너의 오만과 권력에서 빚어진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땅콩 한 봉지에서 시작된 논란은 익명의 힘을 빌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퍼져나갔고, 굴지의 대기업 이미지에 먹칠할 정도로 크게 번지고 말았다. 과거같이 폐쇄적인 환경이었다면 묻혀버릴 수 있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손으로는 하늘을 가릴 수 없었다.

    대한항공은 12월 8일 진정성 없는 사과문으로 뭇매를 맞더니 사건 발생 직후 조 전 부사장의 지시에 따라 뉴욕 JFK 공항에 내린 박창진 사무장을 회유하고 허위 진술을 요구했다는 주장까지 불거져 사면초가 상태에 놓였다.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자 사측에서 올린 사과문에는 ‘임원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일간지에 게재한 사과 광고의 초점도 ‘오너의 잘못’이 아닌 ‘회사의 잘못’에 맞춰져 있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사건 발생 엿새 만에 사과했지만 사과문에도 ‘서서 90도로 인사’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인사’ 등 각본에 따른 행동임을 짐작게 하는 지문이 적혀 있어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받았다. 사건 당사자인 조현아 전 부사장은 뒤늦게 고개를 숙였지만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참여연대는 12월 10일 조 전 부사장을 항공법과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이번 사태에 대해 “총수 일가의 일원인 힘 있는 고위 임원과 힘없는 승무원이란 관계에서 일어난 일로, 수없이 많은 갑을 문제 중에서도 가장 심각하며, 엄중하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할 갑을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태는 갑의 횡포임과 동시에 세월호 대참사 이후 우리 사회가 한목소리로 ‘안전’과 ‘상식의 회복’을 강조하는 가운데 승객 수백 명이 탑승한 항공기의 안전과 관련한 법과 규정, 시스템과 상식이 총수 일가라는 우월적 지위에 의해 간단히 무력화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사건 발생 이후 박 사무장은 회사에 병가를 내고 휴가 중이다. 휴대전화는 꺼놓은 채 외부와의 접촉을 최소화하고 있다. 앞서 그는 12월 12일 KBS와 인터뷰에서 “조 전 부사장이 욕설과 폭행을 했고, 대한항공 직원이 찾아와 거짓 진술을 하기를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한항공에서 5~6명의 직원이 매일 찾아와 ‘매뉴얼을 제대로 숙지 못해 조 부사장이 화를 냈지만, 욕을 한 적은 없고 스스로 항공기에서 내린 것’으로 진술하라고 강요했다”고 주장하는 한편 “국토부 조사 담당자들은 모두 대한항공 출신이고, 결국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말을 들었다”며 국토부 조사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국토부는 “국토부 조사단 6명 중 2명이 대한항공 출신 항공안전감독관이 맞다”고 시인했다. 그러면서도 “항공안전감독관은 운항, 정비 등 분야별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국제기준에 적합한 고도의 전문성과 다년간의 실무경험을 갖춰야 해 부득이 항공사 출신을 기용한 것”이라며 일부에서 우려하는 ‘항공사 봐주기’는 없음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국토부는 박 사무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대한항공 객실 담당 상무를 상당 시간 동석게 해 의혹을 키웠다. 국토부 측은 “사무장을 조사할 때 처음에 인사하느라 객실 담당 임원이 19분가량 동석했던 것이다. 이후 사무장에 대한 총 조사 시간은 1시간가량이었다”고 해명했다.

    국토부의 부적절한 처신

    오너십 추락엔 날개가 없다

    12월 12일 서울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 본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땅콩회항’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대한항공 직원 내부 시험인 ‘업무 지식 평가’에는 ‘조현아 부사장의 직급 코드’가 무엇인지 묻는 문제가 나온다. 정답은 DDA로 사장·부사장급 대한항공 로열패밀리 앞에 붙이는 코드 DD에 조현아의 ‘아(A)’를 붙인 조합이다. 매번 문제는 다르지만 비슷한 식으로 로열패밀리의 코드를 묻는 문제가 앞에 나온다. 조양호 회장의 직급 코드는 DDY다. 직원들에게 조씨 일가는 단순히 회사의 회장, 사장을 넘어 ‘왕’처럼 군림하는 존재다. 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아닌 왕국에서 일하는 하인의 느낌을 받는다며 고충을 토로하는 전·현직 직원들도 있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왔음에도 윗선에서는 무엇이 문제인지,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07사번 부기장’이라는 필명을 쓴 한 직원은 사내 게시판에서 삭제된 글을 대한항공 조종사 노동조합 게시판에 다시 올려 큰 호응을 얻었다. 이 글을 사내 게시판에 처음 올린 직원은 사측에서 “글을 내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이 글에는 “대한항공 직원들이 피땀 흘려 이룩해놓은 ‘10년 무사고 안전운항’과 ‘세계 일류 항공사로의 발돋움’ ‘대학생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회사 1위’의 이미지는 이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지금까지 쌓아온 명성과 대한민국 최대 명품 항공사로서의 자부심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직원들이 절망하고 있다. 대한항공 직원은 당신(조 전 부사장)의 하인이 아니다”라며 “어쩌면 대한항공의 발전과 우리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하인처럼 일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그 고귀한 희생을 당연시하고, 당신보다 아래인 사람으로 착각해서는 절대 안 된다. 당신이 그렇게 한 사무장도, 객실승무원도, 우리 직원들도 모두 가정에서는 존경받는 아버지, 어머니이며 자랑스러운 아들, 딸들이다”라고 적혀 있다.

    12월 17일에는 지창훈 대한항공 총괄사장이 사내 게시판에 쓴 글이 뭇매를 맞았다. 지 사장은 ‘임직원들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글에서 “여러분의 소중한 일터가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돼버린 작금의 상황에 대해 사장으로서 깊은 책임을 통감한다”며 “한 가지 부탁이 있다면 지금은 남 탓을 하기보다 먼저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오너십 추락엔 날개가 없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박창진 사무장에게 남긴 사과 쪽지.

    이 글을 본 한 대한항공 직원은 “제목부터 잘못된 글이다. 제목에서 ‘직’자를 빼고 읽어야 한다. 임원들은 이번 사건의 원인을 오너 경영과 제왕적인 리더십에서 찾기보다 직원 개개인의 문제, 일탈적 행위로 돌리며 책임 회피와 수습에만 급급하고 있다”고 일침했다. 이어 “회사 웹사이트 내에도 익명 게시판이 있지만 익명이 익명이 아니고, 필요할 경우 추적이 가능한 데다 카카오톡이나 메신저도 검열하기 때문에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추적이 어려운 익명 SNS가 생긴 이후 참았던 말을 쏟아내고 있다. 그마저도 사내에서 모니터링하며 회사에 대한 비판글이 올라왔다 싶으면 ‘밀어내기’식 글을 올려 덮기에 급급하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도 다들 터질 만한 사건이 터졌다는 분위기를 공유하고 있다. 앞으로도 오너와 관련해 불거질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라고 전했다.

    사태 악화에도 직원 탓 급급

    또 다른 직원은 “요즘 연일 기사가 나와 가족과 친구들에게까지 ‘다니기 좋은 회사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고생하며 다니고 있었느냐’는 위로의 말을 듣고 있다”고 했다. 이어 “대기업에 다니면서도 회사가 잘되게 하고자 일하는 게 아닌, 오너가의 배를 불려주기 위한 부속품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책임감을 갖고 일하는 직원들을 위해 직원이 로열티를 갖고 일할 환경을 오너라면 앞장서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조 전 부사장의 검찰 출석 조사 소식이 알려진 가운데 12월 17일 박 사무장은 KBS와 재차 인터뷰를 갖고 대한항공 측이 ‘진정 어린 사과’를 강조했던 사과 쪽지를 공개했다. 종이에는 ‘박창진 사무장님. 직접 만나 사과드리려고 했는데 못 만나고 갑니다. 미안합니다. 조현아 드림’이라고 쓰여 있었다. 박 사무장은 “보여주기식 사과는 받아들일 수 없다. 이게 과연 진정한 사과라고 할 수 있을까. (쪽지를 보고) 더 참담했다. 진정성을 가지고 사과할 것이라 생각했으나 전혀 준비된 사과가 아니었고, 한 줄 한 줄에 나를 배려하는 진정성은 없었다. 그 사람(조 전 부사장)은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재직을 원하느냐”는 물음에는 “많은 고통과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을 거라 예상하지만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자존감을 찾기 위해 스스로 대한항공을 관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작금의 사태가 일부 기업 오너의 불합리한 경영 스타일에 경종을 울릴 수 있을까. 표면적으로는 변화의 물결이 이는 것처럼 보인다. 진정성과는 별개로 말이다. 12월 18일 익명 SNS 블라인드 대한항공 게시판에는 한 직원이 “대한항공 오너 일가 중 한 명이 조현아 사태 이후 대한항공 비행기에 탔는데 승무원에게 존댓말을 했다고 한다. 해당 승무원은 오너 일가가 승무원에게 존댓말을 하는 걸 난생처음 들었다고 전했다”고 적었다. 오너 일가가 직원에게 존대하는 게 ‘핫이슈’인 회사 분위기는 그간 직원들이 얼마나 ‘로열패밀리’의 언행에 쩔쩔맸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12월 18일 검찰에 따르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이근수 부장검사)는 조 전 부사장을 포함해 대한항공 임직원들에 대한 통신자료 압수수색 영장(통신사실확인자료 요청)을 추가로 발부받는 한편, 사건과 관련해 직원들에게 최초 보고 e메일 삭제 지시와 거짓 진술을 강요한 혐의(증거인멸) 등으로 대한항공 객실 담당 여모 상무를 입건했다. 같은 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조 전 부사장이 1등석 항공권을 무상으로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업무상 배임·횡령 등의 혐의로 서울서부지검에 수사를 의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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