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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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피살 공무원 형 이래진 “尹, 도와달라 문자 20분 만에 답”

“해경 일탈 바로잡겠다며 분개… 靑은 두 달째 ‘읽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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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입력2021-07-1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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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9월 22일 서해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북한군에 살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형 이래진 씨. [지호영 기자]

    지난해 9월 22일 서해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북한군에 살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형 이래진 씨. [지호영 기자]

    7월 12일 경기 안산시 한 사무실에서 만난 이래진(55) 씨의 얼굴이 핼쑥하다. 스트레스로 신장이 망가져 한 달 전엔 거동도 어려웠다고 한다. 1시간 남짓한 인터뷰 동안 담배 7개비를 연거푸 폈다. 이씨는 지난해 9월 22일 서해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북한군이 살해한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형이다. 당시 △정부가 고인이 해상에서 북한 측과 접촉한 후 살해되기까지 6시간 동안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고 △월북을 시도했다고 단정하며, △청와대 측이 피살을 인지하고 10시간 동안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아 논란이 됐다. “동생 사건은 공무원이 근무 중 숨진 해양 사고다. 정부가 월북 프레임으로 고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씨는 7월 10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만나 억울함을 토로했다.

    “사건 이해도 높아 깜짝 놀라”

    이래진 씨가 7월 7일과 5월 11일 각각 윤석열 전 검찰총장(왼쪽)과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에게 보낸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내용. [지호영 기자, 김우정 기자]

    이래진 씨가 7월 7일과 5월 11일 각각 윤석열 전 검찰총장(왼쪽)과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에게 보낸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내용. [지호영 기자, 김우정 기자]

    윤 전 총장을 만난 이유가 뭔가.

    “이번 정부에선 사건이 제대로 처리되지 못할 것이라고 느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타임’ 인터뷰를 보고 깜짝 놀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해 ‘솔직하고 열정적’이라고 호평하지 않았나. 동생은 북한군 손에 살해당했는데 국민을 지켜야 할 대통령이 그렇게 말했다니 ‘멘붕’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7월 7일 윤 전 총장에게 동생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직접 만나 듣고 싶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20분 만에 답변이 왔다. 곧 면담 일정을 잡았다.”

    사건에 대해 뭐라던가.

    “상당히 분개하는 듯했다. 특히 인상적이던 말은 세 가지 정도다. 첫째 ‘국가 시스템이 망가졌다’는 것, 둘째 ‘세금으로 사들인 대북 도감청 장비를 국민을 위해 쓰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셋째 ‘차기 정부가 들어서면 이 사건을 바로잡겠다’고도 했다. 해경의 일탈과 잘못된 수사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얘기도 하더라. 윤 전 총장은 자신이 처음부터 이 사건을 관심 있게 지켜봤다고도 했다.”

    으레 하는 말 아닐까.

    “정치인이나 고위 공무원은 보통 주변 사람들이 건네는 메모를 보면서 얘기를 하는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윤 전 총장이 사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깜짝 놀랐다. 해경의 수사 과정과 정부의 대응에 잘못이 있음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현직에 있을 때부터 관심을 가졌다는 말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직접 만나 보니 해박한 지식과 합리적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다른 대권주자도 만날 의향이 있나.

    “그렇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나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최재형 전 감사원장도 직접 만나 동생 사건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다.”



    이 대목에서 이씨는 다시금 현 정부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했다. “5월 11일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에게 문 대통령을 면담하고 싶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냈으나 ‘읽씹’(읽고 답하지 않았다는 뜻)하고 여태껏 답이 없다. 지금 정부는 나를 만나는 것조차 꺼리는 듯하다”며 “해경이 고인과 유족의 명예를 실추했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결정까지 나왔다. 문 대통령은 조카에게 ‘진실을 밝혀낼 수 있도록 내가 직접 챙기겠다’고 약속했는데(지난해 10월 고인의 아들에게 쓴 편지) 유감이라도 표명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7월 7일 인권위는 “해양경찰청(해경)이 중간 수사 발표 과정에서 고인과 유족의 인격권과 사생활 비밀 및 자유를 침해했다”며 해경 측에 관계자 경고 조치 및 재발 방지책 수립을 권고했다. 고인의 아들이 지난해 11월 낸 진정에 대한 결정이었다. “(고인의) 실종 동기 정황으로 사생활에 관한 내용을 상세하게 공개하고 ‘정신적 공황 상태’라고 표현한 것은 헌법 제10조와 제17조에 위배된다”는 것이 뼈대다.

    “오죽 답답하면…”

    인권위 결정을 어떻게 보나.

    “100% 만족스럽진 않다. 인권위가 해경 수뇌부에 경고 조치를 권고한 것은 부족한 처분이다. 그럼에도 국가 기관이 해경의 수사 및 사건 발표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확인한 점에서는 의미가 크다.”

    해경 발표의 어떤 점이 문제였나.

    “해경은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지난해 9월 29일, 10월 22일) 고인이 빚을 졌고 도박에 손댔다고 언론에 공개했다. 해경이 발표한 채무 액수가 실제보다 크게 부풀려졌다. 심지어 채무 전부가 도박으로 인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월북자’ ‘나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일방적 발표였다. 동생을 두고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졌다고 표현한 것도 어처구니없다. 공황은 의학적 표현 아닌가. 환자를 의사가 실제로 진찰해야 병명을 진단할 수 있다. 고인을 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함부로 공황 운운하나. 인권위 결정문을 보니 해경이 그렇게 표현한 근거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인권위가 입수한 해경 측 자료인 ‘인터넷 도박 중독에 따른 월북 가능성 자문결과’에 따르면 동생을 두고 ‘정신적 공황 상태’라는 표현을 쓴 전문가는 7명 중 1명에 불과했다.”

    인권위 발표 이튿날 이씨는 몽골과 홍콩 주재 북한 공관 e메일 계정으로 김정은 위원장에게 쓴 편지를 보냈다.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에 따라 통일부에 사후 신고해 승인도 받았다고 한다. 고인이 숨진 해역을 방문하고 북측 당국자의 설명을 듣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김 위원장에게 편지를 쓴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눈시울이 불거진 이씨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내가 오죽 답답하면 그랬겠나…. 동생이 숨진 바다에 소주라도 한 잔 부어주고 싶다. 북측과 연락해 동생이 죽은 원인을 밝히는 것은 원래 정부가 해야 할 일 아닌가. 또 다른 우리 국민이 동생처럼 황망한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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