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17일 경북 포항시 포항비행장에서 시험비행 중 추락한 해병대 ‘마린온’ 헬기의 날개 부분(위)과 추락 당시 폐쇄회로(CC)TV 영상. [사진 제공 · ·해병대, 민관군합동조사위원회]
고(故) 박재우 병장(순직 당시 해병대 상병)의 작은아버지 박영진 변호사의 목소리가 울분을 삭이지 못한 듯 떨렸다. 박 병장은 2018년 7월 17일 경북 포항시 포항비행장에서 시험비행에 나선 해병대 상륙기동헬기 ‘마린온’에 기관총 사수로 탑승했다. 이날 오후 4시 46분쯤 이륙한 헬기는 몇 초 후 추락했다. 박 병장 등 해병대 장병 5명이 순직하고 1명이 크게 다쳤다. 사고 이틀 후인 7월 19일 유가족들은 헬기 제조사 대표이던 김조원 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 등을 살인 및 과실치사 혐의로 고소했다.
“참사 3주기 한 달 남았는데…”
그로부터 3년이 지났지만 책임지고 처벌받은 이는 없다.6월 1일 대구지방검찰청 포항지청은 김 전 대표 등에 대해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불기소 처분했다. 6월 8일 ‘주간동아’와 전화통화에서 박 변호사는 “불기소 처분이 현충일(6월 6일)을 고작 며칠, 참사 3주기(7월 17일)를 불과 한 달여 앞둔 때 있었다. 현충원에 묻힌 가족에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고 얘기해야 하는 심정을 아느냐”며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 참사 땐 사고 원인을 밝혀 책임자를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처벌했다. 검찰에 항고해 끝까지 진실을 규명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피해자는 있으나 가해자는 없는 상황. 이유는 뭘까. 2018년 12월 21일 민관군합동조사위원회(합조위)는 마린온 추락 원인을 “로터마스트(rotor mast) 파단(破斷: 재료가 파괴돼 둘 이상으로 떨어져나감)으로 인한 메인로터(main rotor: 주날개 부분) 탈락”이라고 밝혔다. 로터마스트는 헬기 동체와 회전 날개를 연결하는 핵심 부품이다. 헬기 몸통과의 이음새 파손으로 날개가 떨어진 탓에 추락했다는 것이다.
로터마스트에 쓰인 소재는 프랑스 금속가공업체 오베르듀발(Aubert&Duval)이 제작했다. 이를 납품받아 부품을 생산한 것은 프랑스 헬기 제작사 에어버스 헬리콥터스(Airbus Helicopters·AH)였다. 제조사는 수입한 부품을 최종 조립해 마린온을 만들었다. 합조위가 밝힌 로터마스트 균열 원인은 오베르듀발의 소재 열처리 과정 오류였다. AH는 이 과정에서 생긴 균열을 탐지하지 못했으며, 제조사는 AH의 품질보증서를 믿고 로터마스트를 납품받았다.
“부품 검사 권한 없었다”
지난해 7월 17일 해병대 ‘마린온’ 헬기 추락 사고 2주기를 맞아 유가족들이 순직자 위령비에 헌화하고 있다. [사진 제공 · ·해병대]
검찰의 판단은 어떨까. 포항지청은 불기소 결정서에서 “(제조사가 육안 검사 · 품질보증서 확인으로 제품을 검수한 것은) AH 측과 계약상 제약과 검사 방법의 한계에 따른 것으로, 고도의 전문기술이 집약된 헬기의 군사상 확비 필요성, 기술 보유 회사의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한 계약 조건의 필요성 등이 고려된 불가피한 것”이라는 취지로 피의자 측 주장을 수용했다. 일부 유가족은 2019년 7월 AH 국내법인 대표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고소했으나 검찰은 마찬가지로 무혐의 처분했다.
문제는 사고 후에도 마린온 부품을 여전히 AH로부터 납품받고 있다는 것. 재발 가능성이 없는지 묻자 제조사 관계자는 “생산 및 납품 업체인 AH뿐 아니라 프랑스 정부가 품질을 보증하고 정부와 우리도 (품질을) 체크하는 것으로 안정성을 강화했다. 이중삼중 안전장치로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가족들은 여전히 억울함을 호소했다. 박 변호사는 “주변에선 ‘그렇게 애써도 죽은 조카가 돌아오지 않는다’며 포기하라고 하지만 진실 규명을 포기할 수 없다”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3년 전 희생자들의 49재도 끝나지 않았을 때 국방부로부터 연락이 왔다. 국군의날 행사에 초청하겠다는 것이었다. 상중인 유족을 잔치에 부르는 것이 말이 되나. 이번 정권에서 사건 진상이 밝혀지리라는 기대를 접었다. 다음 정권에서라도 책임 소재가 드러났으면 한다. 사고를 막지 못했음에도 민정수석까지 지낸 김조원 전 대표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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