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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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싸움’에 사람 등 터질라

5월 울산서 세계포경위원회 개최 … 고래사냥 재개 여부 장생포 지역 팽팽한 긴장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5-01-26 14: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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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래 싸움’에 사람 등 터질라

    2005년 고래는 가장 뜨거운 환경 이슈다. ‘고래잡이 전진기지’였던 장생포 사람들과 환경단체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고래들을 지켜보고 있다.

    고래사냥이 다시 시작되었으면 좋겠어요. 고래도 살아야 하지만 장생포 사람들도 살아야 하니까요.”(박경란, 울산여상 3년)

    “지난 20년 동안 포경이 금지됐지만, 몇몇 군데에서만 늘었을 뿐입니다. 아직은 더 지켜봐야 합니다.”(마용운, 환경운동연합 국제연대국 활동가)

    1월17일, 1970~80년대 ‘고래잡이의 전진기지’였던 울산광역시 장생포. 명색이 항구지만 어업 인구가 거의 없어 평상시에도 한산한데 46년 만의 폭설까지 쏟아져 쓸쓸하기만 했다. 그러나 조용한 모습과 달리 다가올 ‘고래’ 싸움에 대한 기대 때문에 팽팽한 긴장감마저 감돌고 있었다.

    2005년 5월27일부터 한 달 동안 전 세계 포경업에 중대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세계포경위원회(IWC)가 울산에서 열리고, 같은 시기에 장생포에 우리나라 최초의 고래박물관이 개관한다. 3월엔 그 옆에 고래연구소가 착공된다. 언뜻 생각하면, 고래를 테마로 한 국내외 이벤트가 겹쳐 장생포 사람들 모두 ‘고래 관광 특수’에 들떠 있을 것 같지만 그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다.

    “고래가 없는데 무슨 소용 …”



    86년 IWC가 ‘상업적인 목적의 고래사냥을 전면 금지’하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이후, 아니 산업혁명기 서구 열강들이 고래를 마구 포획한 이후 ‘고래를 잡지 말아야 할 것인가, 잡아야 할 것인가’는 가장 큰 환경 이슈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울주 반구대 암각화에 남겨진 선명한 고래 그림에서 알 수 있듯, 선사시대부터 고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역사를 가진 장생포 사람들은 서구와 일본 등 강대국들에 의해 고래 정책이 좌지우지되는 것을 분노와 무기력 속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다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젊은 시절 고래잡이 배를 탔다는 한 장생포 주민은 “IWC야 시내 호텔에서 열리니 우리 같은 사람들과 상관 있겠소?”라고 반문하면서도 “장생포에 고래가 없는데 회의고 축제고 해봐야 소용없다”고 쏘아붙였다.

    환경운동가들도 IWC에 대비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IWC가 지난해 이탈리아 소렌토에서 부결된 의장 동의안을 올해 통과시킬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다. 의장 동의안은 ‘상업포경을 재개하되 첫 5년 동안 각국 배타적 경제수역(EEZ, 200해리) 내로 한정한다’는 것으로 20여년 만에 사실상 고래사냥의 재개를 선언하는 중요한 결정이다. 장생포 사람들과 환경단체들이 정반대의 시각으로 촉각을 세우고 있는 것도 당연하다.

    이에 따라 환경운동연합은 1월18일 고래보호특별위원회를 발족하고 국회에서 ‘고래보호 심포지엄’을 열었다. 또한 그린피스(Greenpeace· 국제적인 환경보호 단체)의 고래보호담당자인 존 프리젤씨 등이 한국에 머물며 울산시를 방문하여 ‘고래박물관’이 사실상 ‘포경박물관’이 아닌지 우려를 전달하기도 했다. 덕분에(?) 올해 고래축제에서는 고래고기 시식회가 사라지게 됐다.

    ‘고래 싸움’에 사람 등 터질라

    장생포에 건설 중인 고래박물관.

    IWC에 경고를 보내기 위해 3월에는 그린피스 선박이 우리 해역에서 시위를 벌인다. 그린피스의 선박이 우리나라에서 시위를 벌이는 것은 94년 반핵 시위 이후 처음이다. 이는 고래가 올해 환경 문제에서 얼마나 뜨거운 이슈인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보통 사람들에게 고래는 구약성서와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 그리고 피노키오와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에 등장하는 거대한 동물이다. 또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한두 번 젊은 시절 송창식의 노래 ‘고래사냥’을 불러봤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고래는 동물이라기보다 자연과 모성, 꿈에 대한 은유이며, 따라서 고래사냥은 인간의 의지와 정복을 상징한다.

    이는 고래가 한때 육지에서 걸어다닌 포유동물이며 지구상에 살아 있는 가장 큰 동물이라는 점과 관계가 있는 듯하다. 또한 그물이나 낚시로 잡는 것과 달리, 19세기에도 배를 대고 사람이 고래와 싸워 직접 작살을 꽂는 사냥의 형태도 신화적 상상력을 발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오늘날 서구 환경단체의 포경 반대 이유 중 하나도 이 같은 관점에서 ‘고래는 인간과 가장 친한 동물’이라는 것이다.

    ‘죽은 고래’로 명맥 잇는 식당

    서양에서 고래와 관련된 이야기나 그림, 자료가 풍부한 데 비하면, 한반도에서는 신석기 시대에까지 거슬러가는 고래에 대한 자료는 전무한 편이다. 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고래 뱃속에 들어갔던 어부가 고래 위장에 데어 대머리가 되었다 한다’고 썼고, 하멜도 ‘(조선) 동북해에서 작살에 꽂힌 고래가 몇 마리씩 발견된다’고 했으나 조선의 어부들이 직접 고래를 잡았다는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

    ‘고래 싸움’에 사람 등 터질라

    고래박물관에 전시될 고래뼈 .

    이에 대해 우리나라 고래 박사인 박구병 교수(부경대)는 “어민들이 고래를 잡아서 힘들게 해체해도 그 기름과 고기를 모두 관에서 가져갔기 때문에 잡지 않았거나, 잡아도 이를 숨겼을 수 있다”면서 조선시대에 고래를 잡았는지는 앞으로 규명되어야 할 문제라고 주장한다.

    19세기 북극 어장에서 ‘고래 러시’가 일어날 무렵 동해에 몰려온 것은 미국과 러시아 등 서구 열강들의 포경선들이었고, 20세기 초 포경회사를 설치하고 마구잡이로 고래를 잡아 큰 수익을 가져간 것은 일본이었다. 따라서 우리나라 포경의 역사는 46년 4월16일 목조 중고 포경선이 범고래를 잡은 날부터 85년 12월31일 모라토리엄이 발표될 때까지 40년에 불과하다.

    이후 우리나라에서 고래의 공식 역사는 공백이 되었지만, 장생포엔 여전히 고래로 먹고사는 이들이 많다. 펄펄 뛰는 고래를 잡아 ‘개들도 1000원짜리를 물고 다니던’ 70년대에 비하면, 지금은 그물에 걸리거나 다른 데서 죽어 떠밀려온 ‘죽은 고래’로 먹고산다(이런 고래가 2004년에 공식적으로 285두에 이른다. 실제 유통된 고래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장생포에만 이 같은 ‘고래고기 전문점’ 10곳이 문을 열고 있다.

    ‘고래 싸움’에 사람 등 터질라

    경에 반대하는 그린피스 회원들이 탄 보트가 고래와 함께 조사 목적으로 포경선 위로 끌려 올라가고 있다.

    장생포 사람들은 “울산엔 ‘현대’ 이전에 고래가 있었다. 단지 그 역사가 묻히거나 흩어져 있을 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고래 없이 울산과 장생포를 이야기할 수 없고, 고래 없이 한국의 역사를 완성할 수 없다는 말이다.

    장생포 사람들이 고래와 고래사냥에 대한 자료나 증언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은 최근 고래박물관의 전시물을 모으면서부터다. 고래에 ‘미쳐’ 고래박물관 설립에도 관여하게 됐다는 장생포 토박이 디자이너 최동익씨는 “우리를 알기 위해 사라진 고래의 역사를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관이든 환경단체든 갑자기 고래, 고래 하는데 고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포경은 고래고기 차원이 아니라, 인간의 노동과 사회 발전을 연구하는 데 놓쳐서는 안 되는 문제입니다. 85년 말 모라토리엄이 있을 때 국가가 거시적 안목을 갖고 있었다면, 선주들에게 3억~5억원씩 주고 고래의 역사를 그렇게 포기해서는 안 됐습니다.”

    영화감독이 꿈인 여고생 박경란양이 처음 찍은 영화(울산청년회의소 영상제 장려상 수상)도 장생포의 고래잡이의 흔적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제가 장생포에서 태어났으니까 첫 영화는 당연히 고래잡이를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죠. 바다에 버려진 포경선과 폐허가 된 고래해체장, 포경선을 타셨던 분, 고래 해체하시는 분 등을 담았어요. 다큐멘터리를 찍으며 장생포에서 조금씩이라도 포경업이 재개됐으면 하는 바람도 더 강해졌지요.”

    박양이 장생포 바다에 떠 있던 포경선 두 척을 찍은 뒤에 울산남구청은 이 포경선들을 기증받았다. 20년 동안 폐가처럼 바다에 떠 있던 5진양호와 6진양호였다. 고래박물관에 전시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2004년 말 이 배들을 해체하던 중 5진양호 선실 바닥에서 귀중한 자료들이 발견됐다. 79~80년의 고래잡이 항해일지와 75~83년까지 배를 탄 사람들의 이름, 월급, 직급 등을 기록한 ‘해원명부’였다. 5진양호 선장 김수식씨가 작성한 이 일지는 색이 바래고 삭기는 했지만 출항, 항로, 시간, 고래 발견 지점, 추적과정, 작살을 쏴 명중시킨 시간과 끌고 온 시간, 도착지 등이 분 단위로 적혀 있다.

    ‘고래 싸움’에 사람 등 터질라

    장생포항에 버려졌던 폐포경선과 그안에서 발견된 향해일지와 해원명부 등이 적힌 자료(오른쪽).



    ‘고래 싸움’에 사람 등 터질라

    북방긴수염고래가 인양된 1974년 장생포 항구와 2004년 장생포 고래축제, ‘고래잡이 없이’ 장생포에 문을 열고 있는 고래고깃집(왼쪽부터).

    수천 년 동안 고래와 관계를 맺어왔음에도 우리나라 고래의 생태나 종류, 포경업에 대해 제대로 된 기록 하나 없었던 장생포로서는 소중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또한 고래가 계절에 따라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보여준다. 포경업이 전면 금지된 현재 상황이 계속된다면 ‘전무후무’한 기록일 수도 있는 것이다.

    환경단체와 첨예한 대립 예상

    이에 따르면 80년 2월28일 5진양호는 장생포를 떠나 29일 오전 전북 어청도 앞바다에까지 진출했다. 오후 1시 밍크고래 한 마리를 발견해 따라가다 높은 파도 때문에 놓쳐버리고 2시42분 50m 앞에 고래가 다시 나타나자 2시50분에 포수가 작살 한 발을 쏴 명중시킨다. 피를 흘리면서 도망가던 고래는 4시30분에 포획됐고 5시40분 어청도 간이 기지에 도착했다고 돼 있다. 이때 잡은 고래의 몸길이는 24척(7.27m)이었다.

    당시의 고래잡이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6진양호의 포수였던 손남수씨(70)다. 17세에 고래잡이 배에 오른 손씨는 27세에 선장, 31세엔 고래잡이 배에서 가장 높은 포수 자리에 올랐다. 그는 기록상 가장 큰 고래인 72척(21.8m)을 잡은 한국판 ‘모비딕’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85년 말까지 고래를 잡았던 손씨는 이후 고래고기 식당 등을 운영하다 지금은 장생포항에서 쇠고기 구잇집을 한다.

    “항해일지는 해상 사고에 대한 증거 목적과 고래가 어디에 자주 나타나는지 알아두었다가 다음해 쓰기 위해 기록했죠. 우리도 썼는데 버렸지, 그게 자료라고 생각 못했어요. 목선일 땐 1년에 5~6마리 잡았는데 70년 무렵 철선으로 바뀌어 50마리에서 100마리까지 잡았어요. 목선 땐 참고래, 브라이드고래, 범고래도 많이 잡았는데 81년부턴 IWC 결의로 밍크고래만 잡았죠. 대개 2월에 고사를 지내고 고래사냥을 나가 11월까지 했지요. 한 배에 12명 정도 타는데 모두 시력이 좋아 갑판에서 고래가 숨을 쉬러 올라오는 걸 찾아냅니다. 그러면 포수가 70mm포에 작살을 꽂아 쏘지요. 잡은 고래는 배에 공기를 넣어 물에 띄워 끌고 옵니다. 그때 잡은 큰 놈은 여덟 번을 쐈는데 끌고 오는 데만 40시간이 걸렸어요. 사람도 다 지치고, 고기는 상해서 버리고 기름만 썼지요.”

    당시 포경 선원은 다른 그물 어부들과 달리 말쑥한 차림에 키도 크고 월급도 많은 편이라 여성들에게 인기를 끄는 ‘멋쟁이’였다고 한다.

    그는 고래를 잡았을 때 기분을 묻자 웃으며 “돈 벌어 돌아가는구나, 그런 느낌이었다”고 말한다. 그때보다 고래가 더 희귀해진 요즘은 그물에 끌려오거나 밀려들어 온 고래는 작은 것은 수천만원, 보통 1억원을 호가해 장생포에선 ‘바다의 로또’라고 불린다.

    손씨를 비롯해 장생포 사람들의 바람은 대개 ‘천연자원으로서 고래의 종과 수를 보호하는 한에서 장생포의 고래사냥이 재개되는 것’이다. 특히 이들은 포경에 반대하는 호주와 미국 등 강대국들이 주요 쇠고기 수출국이며 근해에서 고래를 감상하는 ‘관경(觀鯨) 산업’으로 높은 수익을 올리는 국가라는 점 때문에 이들 국가 환경단체의 처지를 순수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듯했다. 특히 ‘지능이 높은 동물이니 불쌍하다’는 낭만적 주장에는 노골적으로 반발한다.

    ‘고래 싸움’에 사람 등 터질라

    17세부터 50세까지 젊은 시절을 고래사냥으로 보냈던 손남수씨(오른쪽). 오른쪽 사진이 그가 잡은 고래다. 버려진 고래해체장 모습.

    79년 IWC에 가입한 우리나라의 공식적 태도는 일본, 노르웨이 등과 함께 포경을 지지하는 쪽이다. 해양수산부 국제협력관실 방기혁 국장의 말이다.

    “우리나라는 국제협약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포경 재개를 희망하지만, 수십 년간 포경을 완전히 중단했기 때문에 우리 바다에 어떤 고래가 몇 마리나 사는지, 이를 어떻게 조사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다. 해양자원 관리를 위해 계속 조사해온 서구 선진국이나 ‘조사포경’을 해온 일본에 비하면 낙후했다. 고래박물관이나 고래연구소가 우리 고래를 알기 위한 첫걸음인 셈이다. 그러나 고래는 세계 환경단체 차원에서 워낙 첨예한 이슈다. 국내에서도 처음으로 큰 주목을 받을 것이다. 올해 IWC는 이래저래 전쟁터가 될 것 같다.”

    고래가 인간과 가까운 지능 높은 동물이라거나, 고래고기를 먹을 것인가 아닌가에 대해 논쟁하는 것은 세계 수산업을 둘러싼 강국들의 헤게모니 쟁탈전과 경제적 역학관계를 간과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동시에 해양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고래를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에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환경단체든 장생포 사람들이든, 우리가 우리의 고래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은 바로 장생포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할 때도 맞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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