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기 연방준비위원회(연준·Fed) 의장으로 지명된 케빈 워시. 뉴시스.
“4거래일 연속 순매도한 외국인과 기관이 동반 순매수로 돌아섰다. 전날 변동성을 키운 케빈 워시 연준 의장 지명과 원자재 가격 급락은 단기 차익실현 명분으로 작용했을 뿐이다.”(2월 3일 이재원 신한투자증권 연구원)
1월 30일 차기 연준 의장으로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가 지명되자 글로벌 금융시장이 급격히 흔들렸다. 전문가들은 워시 지명자의 성향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단기 충격을 키웠다고 진단했다. 워시 지명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매파(통화 긴축 선호) 성향을 보였던 인물로, 이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기엔 금리 완화를 지지해 ‘정치적 동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통화정책 기조를 둘러싼 혼선 속에서 주식시장뿐 아니라, 금과 은 등 안전자산에도 이른바 ‘워시 쇼크’가 번졌다. 코스피는 하루 만에 5000 선을 내줬고, 금과 은 가격은 각각 11.4%, 31.4% 폭락했다. 이는 1980년 3월 이후 하루 기준 최대 낙폭이다. 하지만 다음 날 코스피는 6% 넘게 반등하며 급락분을 상당 부분 만회했다.
과거 매파적 성향에 연준 독립성 중시
워시 지명 여파는 강력했다. ‘검은 월요일’이던 2월 2일, 5300 선을 바라보던 코스피는 4900 선까지 밀리면서 매도 사이드카(프로그램 매도 호가 효력 일시 정지)가 발동됐다. 이날 하루만 외국인은 2조5000억 원 넘는 주식을 던졌다. 금과 은 가격도 동반 급락했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1월 30일(이하 현지 시간) 은 선물 가격은 온스당 78.531달러(약 11만5000원)를 기록했다.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거래된 금 선물(4월물) 가격은 온스당 4745.1달러(약 694만8000원)였다(그래프 참조).
급락 여파로 시카고상품거래소(CME)는 금과 은 선물의 증거금을 상향 조정했다. 금 증거금은 6%에서 8%로, 고위험 계좌는 6.6%에서 8.8%로 높였다. 은 역시 증거금을 11%에서 15%, 고위험 계좌는 12.1%에서 16.5%로 상향했다. 증거금 인상은 레버리지 투자자의 부담을 키워 마진콜과 현금을 더 넣지 못한 계좌의 강제 청산을 촉발했고, 낙폭을 확대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마진콜은 계좌 잔고가 최소 유지 증거금 아래로 떨어지면 브로커가 추가 증거금을 요구하는 것을 뜻한다.
워시 쇼크에 흔들린 코스피는 하루 만에 종가 최고치를 경신하며 롤러코스터 장세를 보였다. 2월 3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6.84%(338.41포인트) 오른 5288.08에 장을 마감했다. 역대 최대 상승폭에 매수 사이드카(프로그램 매수 호가 효력 일시 정지)가 발동되기도 했다. 금과 은 선물도 동반 상승했다. 국제 금 현물 가격은 2월 3일 전장보다 5.2% 상승해 2008년 1월 이후 최대 일일 상승률을 기록했다.
“AI로 생산성 높이면 금리 낮춰도 돼”
워시 지명자는 35세에 연준 역사상 최연소 이사에 오른 인물로,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에도 연준 의장 지명자로 거론된 바 있다. 이번 지명 이후 그는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 31일 알팔파 클럽 비공개 만찬에서 “워시와 금리를 인하하기로 약속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고 언급했다.과거 행적만 놓고 보면 워시 지명자는 매파 성향이 짙다. 그는 2010년 벤 버냉키 당시 연준 의장의 2차 양적완화 정책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면서 인플레이션 유발 가능성을 경고한 유일한 이사였다. 결국 견해 차이로 2011년 연준 이사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최근 발언은 달라졌다. 지난해 7월 폭스비즈니스와 인터뷰에서 그는 “고금리 원인은 파월의 방만한 돈 풀기”라고 비판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11월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에서는 금리인하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는 밀턴 프리드먼의 이론을 인용해 “연준이 적시에 대응하지 못해 물가상승을 키웠다”면서 인공지능(AI)으로 생산성을 높여 물가를 낮춘다면 인플레이션을 제어할 수 있고, 재정 관리를 병행해 금리인하도 가능하다는 논리를 폈다.
이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워시는 통화 매파가 아니라, 정치적 동물”이라고 꼬집었다. 민주당 집권기엔 긴축을, 공화당 집권기엔 완화를 주장하는 등 정파적 행태를 보였다는 것이다. WSJ도 워시 지명 후 채권 금리 상승과 달러 강세를 근거로, 그가 인플레이션에 강경한 태도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2월 2일 보도했다.
“금리인하 반대했다면 지명 안 했을 것”
워시 지명자가 청문회를 통과하면 5월 취임이 유력하다. 다만 실제 기준금리 인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내 합의가 관건이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FOMC 위원 12명이 매파 4명, 비둘기파 4명, 중립 4명으로 구성돼 균형 상태를 보인다는 평가가 나온다(표 참조). 워시 지명자가 무탈하게 의장이 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빠른 기준금리 인하를 위해선 위원들을 설득하는 것이 관건인 셈이다. 인도은행 총재를 지낸 라구람 라잔 미국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는 1월 31일 AP통신에 “워시 지명자는 정교한 조율을 해야 한다”며 “정부에 너무 순응적으로 비칠 경우 연준 구성원들의 지지를 잃게 되고 합의를 이끌어낼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워시 지명자는 쿠팡Inc 사외이사를 맡은 이력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워시 지명자와 김범석 쿠팡Inc 의장은 하버드대 동문이다. 워시 지명자는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김 의장은 하버드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비즈니스 스쿨을 중퇴했다. 업계에선 워시 지명자가 2021년 쿠팡의 성공적인 기업공개(IPO)를 이끈 핵심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앨런앤드컴퍼니 선밸리 콘퍼런스’에 워시 지명자와 김 의장이 나란히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연준 의장에 취임하면 민간 기업 이사직과 보유 주식을 정리해야 한다.

2023년 7월 13일 미국 아이다호주 선밸리에서 열린 선밸리 콘퍼런스에 참석한 케빈 워시 연준 의장 지명자와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 투자자 스탠리 드러켄밀러(오른쪽부터). GETTYIMAGES

윤채원 기자
ycw@donga.com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윤채원 기자입니다. 눈 크게 뜨고 발로 뛰면서 취재하겠습니다.
주식 혐오했던 김은유 변호사, 53세에 미국 주식에서 2100% 수익률 달성한 사연
[오늘의 급등주] SK하이닉스, 신용등급 ‘AA+’ 상향에 장중 강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