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원 고려대 총장은 자신감이 넘친다. 지난해 3월 제21대 총장에 취임하며 ‘강한 고대’를 내세운 그는 재정적으로 강한 대학을 바탕으로 인류 미래 사회에 공헌하는 힘을 갖춘 대학을 목표로 삼고 있다. 고려대는 내년 개교 120주년을 맞는다. 김 총장은 취임 직후 120주년 기념 사업에 착수해 여러 성과를 거뒀다. 2030년 세계 30위권 대학을 자신하는 이유다.
김동원 고려대학교 제21대 총장. [박해윤 기자]
“고려대는 근대적 자주독립 국가라는 염원을 바탕으로 민족 선각자들이 세우고 지켜온 대학이다. 1905년 이용익 선생은 교육구국(敎育救國)이라는 건학 이념으로 고려대 전신인 보성전문학교를 설립했다. 이어서 학교 경영을 맡은 손병희 선생은 3·1운동 민족 대표였다. 그 뒤를 이은 김성수 선생은 현 안암동 캠퍼스를 구축하고 1946년 교명을 고려대학교로 변경해 오늘날 세계 명문대학으로 발전하는 기초를 다졌다. 민족사학·민족대학으로서 고려대는 국가 수립, 산업화, 민주화에 기여한 인재들을 배출했다. 일제가 세운 관학이나 외국 선교사가 세운 학교와는 확연히 다른 교풍 속에서 지도자적 자질과 품성을 갖춘 인재들이 고려대에서 탄생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경제 강국이자 선진 민주국가다. 이제는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사에 한 획을 긋는, 인류에 공헌하는 대학이 되는 것이 고려대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고려대의 미래 120년은 이 사명을 실현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대학 본연의 가치 지키고 사회 공헌 앞장
120년 동안 변하지 않은 고려대만의 DNA(고대 정신)는.
“고려대만의 DNA, 고대 정신의 첫 번째는 개인의 이익보다 공동체에 헌신하는 ‘이타주의 정신’이다. 나보다 민족과 국가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은 김성수 선생의 공선사후(公先私後) 정신과 일치한다. 두 번째는 거침없이 넓고 큰 기개인 호연지기, 세 번째는 친화력과 단결력이다. 고려대의 단결력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계속된 시련과 위기에 맞서 똘똘 뭉쳐 외세, 독재정권과 싸우는 과정에서 생겨난 고려대인만의 정서적 연대감이다. 고대 정신은 일견 현대사회에 맞지 않는 과거 덕목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만, 오히려 개인화가 심화하는 지금이야말로 가장 필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고대 정신과 문화는 고립과 파편화를 이겨내고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힘을 길러준다. 최근 고려대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입학 성적이 향상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대학 본연의 가치를 지키고 사회 공헌에 앞장서는 ‘강한 고대’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는데, ‘강한 고대’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강한 고대’는 크게 두 가지 방향이다. 하나는 재정적으로 강한 고려대다. 현재 국내 모든 대학은 16년째 등록금이 동결돼 재정이 빠듯하다. 고려대는 재정을 탄탄히 하고자 생애 주기별 교육, 비대면 교육, 글로벌 캠퍼스 등을 확대하며 내실을 다지고 있다. 다른 하나는 지식 창출과 사회 공헌이라는 대학 본연의 가치를 지키고 인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지닌 강한 고려대다. 고려대가 그동안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 산업화, 선진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온 대학이라는 것을 누구나 인정한다. 그렇기에 이제는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는 사회적·경제적·문화적 이슈에 대해 선도적인 목소리를 내고 실질적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대학이 되고자 한다.”
그동안 ‘대학 위기’에 관해 자주 말해왔는데.
“위기가 시작된 것은 이미 30~40년 전인데, 지금은 전 세계 거의 모든 대학이 일반 대중의 고등교육에 대한 관심 저하, 진학률 하락 등으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한국은 학령인구가 감소해 20대 학령인구를 대상으로 한 종합대학 모델의 경우 재정적으로 이미 파산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정부 규제는 변함없어 대학이 위기를 타개할 효과적인 방안을 찾지 못하는 실정이다. 대학이 현실을 빠르게 반영하지 못하는 점도 위기에 직면한 원인 중 하나다. 과거에는 대학이 지식을 독점했지만, 요즘은 대학을 대신하는 기업, 기관이 많아졌다. 삼성의 멀티캠퍼스나 구글 커리어 서티피케이트(Google Career Certificate) 등이 대표적 예다. 그럼에도 대학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상아탑 내에서만 맴돌고 고등교육 추락에 관심이 없다는 점이 안타깝다.”
고려대만의 차별화된 인프라
K-클럽, KU-노벨 프로젝트, 기금교수제 등 2025년 개교 120주년을 앞두고 ‘고대 인프라’를 구축 중이다.
“먼저 고려대는 인류 난제 해결에 연구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특히 에너지, 식량, 기후, 환경 등 인류 과제를 해결할 연구 성과는 대학만이 할 수 있는 사회 공헌이다. 자연과학·공학·의학 분야 연구 지원을 강화하는 동시에, 지난해부터 세계적 수준의 연구를 위해 세계 석학들을 하나의 연구 네트워크로 묶는 ‘K-클럽’을 만들고 있다. 벌써 100명 가까운 석학이 모였고 논문도 수백 편 나온 상황이다. 내년 봄에는 그분들을 한자리에 모시고 ‘제1회 K-클럽 콘퍼런스’를 개최하려 한다. 이 콘퍼런스에는 미국과 영국 외에도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등 전 세계 석학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또한 10년 안에 고려대 교우와 교수 가운데 노벨상, 필즈상, 튜링상 수상자 배출을 지원하는 ‘KU-노벨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고려대-예일대가 공동으로 연례 학술 포럼을 개최하고, 넥스트 인텔리전스 포럼(Next Intelligence Forum)에 노벨상 수상자 등을 초청해 강연도 열고 있다. 고려대(KU)와 카이스트(KAIST),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잇는 ‘K3’ 융복합 사이언스 벨트 구축도 진행 중이다. 특히 인공지능(AI), 배터리, 반도체 등 다양한 분야의 인재 양성을 위해 기업 후원금을 받아 교수를 채용하는 기금 교수제를 운영하고 있다. 기금 교수제는 기업이 원하는 분야의 교수를 채용할 수 있도록 학교를 지원하는 제도다. 학교 입장에서는 재정난으로 채용하지 못했던 젊고 유능한 교수를 영입할 수 있고, 기업은 미래산업 분야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윈윈(win-win) 전략이자 신개념 산학 협력이다. 이미 AI, 수소에너지, 양자물리, 뉴미디어, 디자인 조형 등 다양한 분야에서 31명을 선발했다. 기업은 대학이 이론도 중요하지만, 실질적이고 바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지식을 가르치길 원한다. 총장 임기 4년간 기금교수 채용 목표를 당초 120명에서 200명으로 상향 조정했다.”
현실과 유리된 대학을 바꾸기 위한 고려대만의 해법은.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수학하며 ‘대학은 사회 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참여해야 존재 가치가 있다’는 이른바 ‘위스콘신 아이디어’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고려대는 급변하는 경제·사회 환경에 대응할 수 있도록 각 연령대에 맞는 세대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을 단과대, 학부별로 개발·운영하고, 특히 고령화 사회 중장년층의 교육 수요를 충족하고자 한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지금 특수대학원, 전문대학원을 강화하는 한편, 미래교육원에서는 재직자, 평생학습자 대상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특수대학원은 현재 법무, 정책, 교육, 노동 대학원 등 11곳을 운영 중인데, 2~3개 더 신설하려고 한다. 그리고 교양교육을 완전히 개편했다. 고려대 학생은 IT, BT, 빅데이터 교양과목을 필수로 듣는다. 어떤 전공이든 현실과 접합되는 과목을 배우게 된다.”
외국인 학생에게도 문호를 적극 개방하고 있는데.
“고려대는 다양한 인재 포용에 가장 적극적인 대학이다. 한류 영향으로 한국에 관심이 많은 전 세계인에게 학위과정과 비학위과정을 제공하고 있다. 전 세계 어디서든 비대면 수업이 가능한데, 이는 고려대 온라인 강좌 ‘K-Class’를 통해 새로운 차원의 국제화 교육을 실현한 덕분이다. 또한 올해 국제대학에 글로벌자율학부를 신설했고, 내년에는 미디어학부를 미디어대학으로 승격해 글로벌엔터테인먼트학부를 신설한다. 우수한 다국적 학생을 유치하고 외국인 학생 전용 영어 강의도 확대하고 있다. 현재 5000여 명에 이르는 외국인 학생 수를 전체 학생의 3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그동안 입학 전형이나 장학금 등에서 배려하지 못했던 다문화가정 자녀들에게도 여러 혜택을 주려 한다.
아시아에서 규모가 가장 큰 국제하계대학(ISC)과 국제동계대학(IWC) 운영도 글로벌 전략의 일환이다. 9월 10일에는 ‘국제화 캠퍼스 선포식’ 행사가 있었다. 외국인 교원과 학생에게 친화적인 여러 정책을 망라해 캠퍼스 내부의 국제화 방향을 널리 알리는 행사였다. 다양한 정책을 통해 고려대는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려는 해외 인재들이 모여드는 대학이 되고 있다.”
김동원 고려대학교 제21대 총장. [박해윤 기자]
세상을 바꾸는 ‘Game Changer형’ 인재
고려대는 어떤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나.
“세상을 바꾸는 ‘게임체인저(Game Changer)형’ 인재다. 과거에는 공부 잘하는 학생을 뽑았지만, 현재 지식 반감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 따라서 지금은 언제든 새로운 지식을 쌓을 수 있는 학습 능력, 창의성, 문제해결 능력과 함께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소통 능력이 중요하다. 이에 따라 더 중요해진 것이 리더십이다. 고려대는 그동안 기능적 지식인보다 선 굵은 리더를 더 많이 배출해왔다. 입시 단계부터 국어, 영어, 수학을 잘하는 사람보다 잠재력이 있는 사람을 뽑은 결과다. 고려대는 단순 암기 능력이 아닌,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데 열려 있는 마인드를 가지고 꾸준히 성장하면서 배움을 놓치지 않는 사람을 좋아한다. AI로 상징되는 첨단지식에 대한 학습 역량을 갖추고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창의적인 미래 인재를 키워내는 것이 고려대의 역할이다.”
미래 대학은 어떤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하나.
“지금처럼 개별 대학이 명문대학이라고 주장하는 시대는 끝날 것 같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 이를테면 인구 감소나 기후변화 같은 문제는 너무 거대해서 한 대학이 해결하기는 어렵다. 앞으로는 전 세계 여러 대학이 연결된 거대한 지식 네트워크 중심으로 바뀌고 이것이 대학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다. 또 학문 간 장벽이 사라지고 문제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했을 때 의학, 약학, 정치학, 경제학 등 모든 학문이 힘을 합쳐 문제에 대응했던 것처럼 말이다. 마지막으로 대학은 평생교육 기관화가 될 것이다. 20대 인구는 줄고 30~60대 인구가 늘면서 필연적으로 찾아올 수밖에 없는 변화다.”
이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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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이한경 기자입니다. 관심 분야인 거시경제, 부동산, 재테크 등에 관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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