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갑에 10개의 경고그림이 그려진 이후 각 편의점에 비상이 걸렸다. 서울시청 근처 한 편의점의 직원 김현보(24·가명) 씨는 “편의점 주인은 경고그림을 가리려 꼼수를 부리고, 손님은 덜 무서운 것으로 찾아달라며 아우성”이라고 말했다.
실제 일부 편의점에서는 판매자가 경고그림이 들어간 담뱃갑 윗부분을 아래쪽으로 뒤집어 진열하는가 하면, 조명을 어둡게 하거나 가격표를 그림 부위에 붙이는 방식으로 손님의 눈을 가린다. 애연가는 경고그림에 포스트잇을 붙여두거나 아예 담배케이스로 담뱃갑을 감추기도 한다.
“경고그림까지 가려가며 피우는 걸 보면 이것이 효과가 있을까 모르겠어요.”
담배 진열을 마친 김씨가 푸념 섞인 말을 내뱉자, 계산대 앞에 서 있던 30대 여성 손님이 “내 생각엔 성공할 거 같던데. 일곱 살 먹은 우리 아들이 저거 보고 무섭다며 아빠한테 담배 피우지 말라고 울고불고해 남편이 금연을 시작했다”고 반박했다. 과연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데이터 분석 결과는 일단 여성 손님의 손을 들어줬다. 보건복지부와 기획재정부 자료에 따르면 2017년 2월 담배 판매량은 2억4000만 갑으로 경고그림 등장 이전인 지난해 11월 3억1000만 갑에서 3개월 연속 감소했다(그래프 참조). 이는 전년 같은 달과 비교해 14.0%, 담뱃값 인상 전인 2014년 같은 달과 비교해도 13.4% 감소한 것이다. 통상 매년 1월에는 담배 판매량이 줄어들다 2월 이후 다시 증가하는 양상이었지만 올해는 다르다. 지난해 12월보다 올해 1월에, 1월보다 2월에 담배 판매량이 15% 가까이 줄었다.
금연 시도자도 늘었다. 금연클리닉 등록자가 지난해 12월 2만6000여 명에서 올 1월 5만1000여 명으로 증가했으며 금연상담전화(1544-9030)도 지난해 12월 주당 평균 330건에서 1월 587건, 2월 1214건으로 크게 늘었다. 특히 2월 통화(1214건)를 통해 설문한 결과, 10명 중 8명이 경고그림을 보고 금연상담전화를 걸었다고 답해 담뱃갑 경고그림의 영향력이 확인됐다.
“담배를 샀는데 담배 때문에 병에 걸린 사람 사진이 담뱃갑에 있는 거예요. 그게 다 실화라는 거 아닙니까. 정신이 번쩍 들어 그 자리에서 담배 무르고 바로 전화 걸었어요.”
2월 금연상담전화를 건 양봉수(59·가명) 씨의 말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는 양씨의 말은 괜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담뱃갑 경고그림은 인지에 영향을 미쳐 흡연 욕구를 낮춘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지정한 36종의 경고그림과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을 활용한 연구에 따르면 담뱃갑 경고그림은 흡연자의 감정과 기억, 회상에 관여하는 뇌 영역에 영향을 미쳐 담배의 위험성을 인지하게 하고, 이후 다시 이를 기억하게 해 흡연 욕구가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흡연자의 자가 보고와 비슷한 결과를 보임으로써 담뱃갑 경고그림의 효과가 명백함을 입증했다.
한편, 담배회사들은 심기가 불편하다. 2월 메릴린치(Merrill Lynch) 보고서는 경고그림 도입 때문에 담배 수요가 감소하고, 화려한 담뱃갑 디자인을 통한 브랜드 일신(一新)이 불가피하게 됐다며 담배회사 투자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담뱃갑 경고그림으로 탄력을 받은 금연 물결이 담배회사의 흥행에 걸림돌이 된 것. 더욱이 경고그림이 클수록 금연효과도 크다는 각종 연구 보고까지 담배회사들을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연구 보고에 따라 경고그림 크기를 키우고 브랜드 광고를 없애는 게 세계적 추세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도 경고그림 도입 효과 평가를 거쳐 크기 확대 등 추가 방안을 2018년 이후 검토할 계획. 담배가 온몸으로 자신이 질병 자체임을 외칠 날이 머지않은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