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여야가 11월 10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와 상임위원회(상임위)별로 예산 심의에 돌입하면서 복지재원 마련과 부수법안 범위를 놓고 치열한 기싸움에 돌입했다. 13일 기획재정위원회가 조세법안심사소위원회(조세소위)를 열어 법안 심사에 착수하려 했지만 야당의 요구로 연기되면서 신경전은 고조되고 있다.
최대 쟁점은 담뱃세와 법인세 인상. 여당은 당장 담뱃세 인상을 위해 개별소비세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하지만, 야당은 일찌감치 ‘담뱃세 인상은 서민 증세’라며 ‘법인세 인상’을 주장한다. 두 세제가 예산 전쟁의 최대 쟁점이 되는 이유는 얼마를 거둬들일지(세입)를 결정해야 얼마를 쓸지(세출)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담뱃세와 법인세 논쟁으로 조세소위 세법 심사가 꼬이면 예산안까지 줄줄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먼저 새누리당은 최경환 경제팀의 △기업소득 환류세제 △배당소득 증대세제 △가업상속 공제 완화 등 ‘가계소득 증대세제 3대 패키지’를 비롯한 경제활성화 관련 세법과 담뱃세, 자동차세, 주민세 인상의 근거가 되는 개별소비세법, 지방세법 개정안 등 최소 32개 이상의 법안을 ‘예산 부수법안’으로 처리할 계획이다.
개별소비세법 개정안에는 담뱃세 인상을 목적으로 ‘흡연율을 낮추기 위해 담배 물품가격 100분의 77 세율로 개별소비세를 부과한다’고 명시했다. 담배는 그동안 개별소비세 과세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만큼 법적 근거를 만든 것이다.
심사 초반 담뱃세와 법인세 격돌
최경환 경제부총리(왼쪽)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두 세제가 조세소위 테이블에 모두 올라 있고, 패키지로 다뤄진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여당의 개별소비세나 야당의 법인세 모두 세수 확보 측면에선 통한다. 그러나 여당은 지도부를 중심으로 법인세율 인상 불가를 천명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11월 13일 최고위원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경제가 안 좋은 상태에서 법인세를 올리면 기업들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이라면서 법인세 인상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재확인했다.
야당도 마주 보고 달린다. 법인세율 인상 없이 담뱃세 인상에 응하지 않겠다고 맞서고 있다. 새정치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는 같은 날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세수 부족 문제와 관련해 “재벌 대기업의 법인세 정상화가 해법”이라고 못 박았다. 새누리당 일각에선 야당과의 협상을 위해 ‘법인세율 한시적 인상’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협상 초반인 만큼 묻히는 분위기다.
흥미롭게도,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올해부터는 12월 2일까지 여야가 합의 예산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정부 예산안이 본회의에 자동 상정된다. 이 경우 예산 부수법안도 자동 부의된다. 새누리당은 협상이 부결돼도 정부세법안이 자동 부의된다며 짐짓 느긋한 표정인 반면, 새정치연합은 여당이 국회선진화법의 자동 부의 규정을 이용하려고 법안 끼워 넣기에 나섰다며 반발하고 있다. 올해부터 정부예산안과 예산 부수법안이 자동 부의돼 상임위에서 줄다리기를 벌여도 예산 부수법안으로 지정되면 사실상 직권상정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따라서 새누리당은 담뱃세 인상, 주민세 인상(지방세법), 소상공인진흥기금(국가재정법) 등 야당 반발이 심한 법 개정 사안을 예산 부수법안이라 주장하고, 새정치연합은 “상임위별 토론과 가결 절차를 거쳐 본회의에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야당으로선 본회의에 자동 부의되는 예산 부수법안을 최대한 줄여야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다. 예산 부수법안은 국회의장이 국회 예산정책처의 의견을 들어 지정하게 돼 있어 정의화 국회의장의 스탠스도 주목된다.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왼쪽). 11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회예산정책처 주최로 열린 ‘2014 세법개정안’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정 국회의장은 11월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14년 세법개정안’ 토론회 축사를 통해 국회 각 상임위를 향해 “(예산안이) 직권상정처럼 안이하게 될 것이란 생각은 하지 마라”며 “각 상임위는 열심히 토론하고 의결해 이달 말까지 모든 부수법안을 상임위 차원에서 완성해달라”고 요청했다. 자동 부의에 따른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달라는 뜻이었다.
이와 함께 최근 논란이 된 무상보육 등 ‘무상복지 논쟁’도 여야 예산 전쟁의 격전장이 될 전망이다. 당장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사업인 누리사업(3~5세 무상보육) 예산이 발등의 불이 됐다. 정부제출예산안에 따르면 영·유아 보육료 지원, 가정양육수당 지원 명목으로 4조8646억 원이 필요하다. 전년 대비 5475억 원(16%) 증가한 금액. 재원은 정부 일반회계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서 분담하되 단계적으로 교부금 비율을 높이게 돼 있어 내년 소유 재원 전액을 시도교육청이 부담해야 한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은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대통령은 공약사업으로 생색내고 시도교육청이 부담만 진다며 볼멘소리다. 시도교육감들은 일단 3개월치 예산을 세우겠다며 응급처방에 나섰지만 3개월 뒤 대안은 없는 상태다. 이 과정에서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11월 11일 무상급식비 지원 중단을 선언하면서 누리과정과 무상급식 예산 편성을 둘러싼 갈등이 진영대결로 확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무상급식은 원래 교육청 사업으로 지방자치단체(지자체)의 재정 사정이 허락하면 재량으로 지원할 수 있고, 재정이 어려우면 지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게 홍 지사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무상보육은 대통령 공약사항이면서 18대 국회부터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이룬 법적 의무사항이지만 무상급식은 대통령 공약도 아니고 법적 근거가 없는 사항”이라며 분리 접근 필요성을 제기했고, 새정치연합은 “누리과정 예산을 시도교육청이 부담하도록 한 것은 ‘대선 공약 파기’”라고 규정하면서 “4대강, 자원외교, 방산 비리 등 이른바 ‘4자방’ 국정조사를 들고 나왔다.
교육부 역시 내년 누리과정 지원금을 예산에 반영해놓지 않아 정부와 교육청, 지자체 간 대타협이 이뤄지지 않으면 정부예산안은 12월 1일 본회의에 부의될 공산이 크다. 합의가 이뤄진다 해도 다른 사업 예산을 깎아야 해 부실심사 논란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