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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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오물풍선, 중국·러시아와 발맞춘 ‘그림자 전쟁’

생화학무기 탑재 가능한 신종 도발… 휴전선 상공에서 격추해야

  •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입력2024-06-08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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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29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한 텃밭에서 발견된 북한 오물풍선. [뉴시스]

    5월 29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한 텃밭에서 발견된 북한 오물풍선. [뉴시스]

    세계 최강 전투기인 미 공군 F-22 ‘랩터’가 지난해 2월 4일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직접 명령을 받고 긴급 출격했다. 이 전투기는 19.8㎞ 고도에 떠 있던 대형 풍선에 AIM-9X 사이드와인더 공대공미사일을 발사했다. 중국이 날려 보낸 정찰용 풍선이 표적이었다. 격추에 성공한 직후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이 우리 주권을 위협한다면 우리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행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강 전투기로 中 정찰풍선 격추한 미국

    지난해 2월 미국 고고도 정찰기 U-2가 포착한 중국 정찰풍선. [미 국방부 제공]

    지난해 2월 미국 고고도 정찰기 U-2가 포착한 중국 정찰풍선. [미 국방부 제공]

    당시 중국 정찰풍선은 미군 레이더에 포착됐을 뿐 일반인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높은 고도를 날고 있었고 지상의 미국 국민에게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다만 해당 풍선은 태양전지판과 고성능 정찰장비로 보이는 물체를 탑재한 채 미국 주요 군사시설 상공을 지나갔다. 미국은 이를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판단했고 최첨단 전투기를 띄워 격추한 것이다.

    항공기든, 기구든 미확인·미승인 비행체가 영공에 떠 있는 것은 국가 안보에 분명한 위협이다. 특히 적성국에서 날아온 비행체는 적대 행동을 하거나 안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더 크다. 따라서 군 당국은 그런 비행체의 진입을 막고 영공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최근 전국을 시끄럽게 한 북한 오물풍선 사건에서 한국군이 보여준 대응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북한은 5월 26일 도발을 예고하고 5월 28일과 6월 1일 대량의 오물풍선을 날려 보냈다. 1차 살포 때는 260여 개, 2차 살포 때는 720여 개가 식별됐다. 이 풍선들은 경기와 강원 지역은 물론, 경남과 전북에서도 발견됐다. 오물풍선에는 가축 분뇨와 담배꽁초, 쓰레기 등이 잔뜩 담긴 봉투가 매달려 있었다. 봉투마다 오물량이 상당히 많았던 탓에 전국 각지에서 피해가 속출했다. 정부서울청사와 외교부, 주한 일본대사관 등 주요 시설은 물론, 전국 각지 주택가에 거대한 오물풍선들이 쏟아져 악취를 풍겼다. 서울 양천구와 경기 안산시 단원구에 오물풍선이 떨어져 차량이 파손됐고, 경기 부천시 오정구에선 오물풍선 폭발로 발생한 불에 차가 손상되기도 했다.

    하늘과 바다에서도 난리가 났다. 북한은 오물풍선 살포를 시작한 시점부터 수도권과 서해 일대에 광역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재밍 공격을 감행했다. 방해 전파 강도가 얼마나 세던지 경기만 일대는 물론, 군산 앞바다를 항해하는 선박에서도 재밍 피해 신고가 접수됐다. 연안을 항해하는 선박의 경우 어민이 설치한 유자망(流刺網:어망의 일종)에 걸리면 추진 프로펠러가 파손돼 수리비 폭탄을 맞는다. 국내에선 어망에 선박자동식별시스템(AIS) 같은 장치 설치가 의무화돼 있지 않다. 선박을 운항하는 입장에선 해도를 통해 어망 설치가 예상되는 위치를 잘 살피며 항로를 잡아야 한다. 이 때문에 북한의 GPS 재밍이 시작되자 내항선은 물론, 인천·경기 평택을 오가는 외항선은 마치 가시밭길을 걷듯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서해 연안을 항해했다.



    6월 2일 경기 파주시 탄현면에서 바라본 군사분계선(MDL) 북측의 한 초소 일대에서 북한군 수십 명이 진지 공사를 하고 있다. [동아DB]

    6월 2일 경기 파주시 탄현면에서 바라본 군사분계선(MDL) 북측의 한 초소 일대에서 북한군 수십 명이 진지 공사를 하고 있다. [동아DB]

    애매한 도발로 피로 극대화하는 수법

    오물풍선을 날리고 광역 GPS 재밍 공격을 가하는 것은 최근 러시아와 중국이 강화하는 ‘그림자 전쟁’의 전형적 수법이다. 상대방이 보복 조치를 취하기에는 애매한 수위의 도발을 반복함으로써 상대방의 피로도를 극대화하는 게 목표다. 이 같은 그림자 전쟁의 결말은 보통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우선 누적된 피로도와 감정이 폭발해 전면전으로 번지는 경우다. 돈바스 지역 분쟁을 계기로 본격화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대표 사례다. 전쟁으로 비화하지 않아도 공격받는 측의 피로도와 치러야 할 비용은 크게 늘어난다. 이에 따른 사회적 혼란과 분열을 이용해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는 경우도 있다. 니카라과에서 전면전 없이 정부를 전복하고 집권한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이 그렇다.

    최근 러시아는 유럽을 상대로 방화·선전전·여론조작·사이버전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폴란드 총리나 노르웨이 정보기관이 밝힌 것처럼 유럽 각지에서 발생하는 대형 화재와 시설물 파괴 사건 상당수가 러시아 정보기관과 연계된 사보타주로 보인다. 지난해부터 독일과 폴란드, 핀란드, 발트 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은 러시아 칼리닌그라드발(發) 광역 GPS 재밍 공격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고 있다. 러시아가 이 같은 형태의 도발을 늘린 것은 유럽 각국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속도를 늦추고, 각국 국민의 피로도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결과적으로 “러시아와 싸우면 안 된다”는 인식을 유럽 전역에 확산하려는 포석이 깔려 있다.

    중국도 대만과 한국 등 주변국을 상대로 그림자 전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 미국기업연구소(AEI)와 미국전쟁연구소(ISW)가 합동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중국은 4단계에 걸친 공작으로 대만을 전쟁 없이 복속하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대만해협에서 지속적으로 무력시위를 벌여 “반중(反中) 노선은 위험하다”는 여론을 형성하는 것이 첫 단계다. 이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 댓글 공작으로 심리전을 벌여 대만에선 반미(反美)·친중 여론을, 미국에선 고립주의 여론을 강화하는 게 2단계다. 이 국면에서 대만과 미국의 연대가 끊길 공산이 크다. 3단계에선 대만에 대한 위협 강도를 끌어올리는 동시에 북한으로 하여금 군사 도발에 나서게 한다. 한국과 일본 등 미국 우방이 대만 문제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것이다. 그 결과로 고립된 대만에서 친중 정치인들을 앞세워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일국양제(一國兩制: 1국가 2체제) 단계를 거쳐 실효 지배에 들어가면 최종 단계가 마무리된다. AEI와 ISW는 대만의 불안을 극대화하고 반중 여론을 가라앉히는 1단계 공작이 내년 말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은 신(新)냉전체제에서 러시아·중국과 연대해 공동전선을 펴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이미 그림자 전쟁을 시작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북한이 왜 오물풍선이나 광역 GPS 재밍 공격과 같이 그간 볼 수 없던 유형의 도발을 벌였는지 알 수 있다. 지금 북한의 도발은 ‘한반도 문제’라기보다 글로벌 진영 대결 속에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일어나는 ‘국제 문제’다. 이 때문에 유럽과 미국은 최근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 주도로 회의를 갖고 중국과 러시아의 도발에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대만과 일본, 필리핀 등 인도·태평양 지역 국가 역시 미국을 중심으로 공조하고 있다.

    오물폭탄 수거 임무에 방독면 대신 방탄복?

    북한은 유사시 한국 국민을 상대로 대량의 생화학무기 공격을 감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한국군의 전시 감염병
테러 대비 훈련 모습. [동아DB]

    북한은 유사시 한국 국민을 상대로 대량의 생화학무기 공격을 감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한국군의 전시 감염병 테러 대비 훈련 모습. [동아DB]

    문제는 대한민국이다. 신냉전 최전선에 서 있는 한국 외교안보 라인은 지금 일어나는 상황에 제대로 대응하기는커녕, 그 심각성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정부가 이번 북한 도발 사태에 보여준 대응은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북한은 오물풍선에 인분과 가축분뇨 등을 섞어 날려 보냈다. 물리적으로 한국과 단절된 북한 지역에서 날아온 인분, 가축분뇨 같은 유기물에 어떤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포함돼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정부는 오물풍선 수거 임무에 단독군장을 한 병력을 투입하기도 했다. 일부 지역에선 방탄헬멧과 방탄복, 소총까지 휴대한 병력이 오물풍선 수거 임무에 투입된 것으로 보인다. 생물학적 리스크가 있는 임무에 방독면 대신 방탄복을 착용한 병력을 보낸 지휘부의 판단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이 오물풍선을 살포한 첫 번째 목적은 한국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고 내부 갈등을 유발하는 것이다. 다행히 이번에 살포된 오물풍선에선 생화학무기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오물풍선 살포가 일상이 되면 군과 국민의 경각심은 무뎌질 것이다. 그렇게 경계심이 풀어졌을 때를 노려 북한이 오물풍선에 세균·화학무기를 실어 보낼 수도 있다. 앞서 AEI와 ISW가 언급한 중국의 대만 장악 공작 중 3단계에서 핵심 장기 말이 북한이다. 이때 북한이 풍선을 이용해 생화학 공격을 감행할 수도 있다.

    북한의 풍선 도발에 맞서 한국군이 할 일은 간단하다. 북한 오물풍선이 휴전선을 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한국군은 군사분계선(MDL) 이북 20~50㎞ 구간에 전술조치선(TAL)을 설정해 감시하고 있다. 북한이 날린 오물풍선 양은 많지만, 크기가 크고 속도도 느리다. 레이더로 쉽게 포착할 수 있기에 요격도 쉽다. 북한이 오물풍선을 살포한 날 기상도를 보면 중국 상하이 일대에 고기압, 동해상에 저기압이 자리한 서고동저 형태의 기압계가 형성돼 있었다. 북반구에선 고기압 가장자리를 타고 시계방향으로 바람이 부는데, 저기압의 경우 중심부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바람이 불어 나간다. 북한이 날려 보낸 풍선들은 북풍이 가장 강한 고도 5㎞ 이내에서 날아왔다. 풍선이 가장 많이 관측된 고도는 1~3㎞로 한국군의 저고도 방공무기들의 요격 가능 범위다.

    사실 이 정도 고도에서 날아오는 풍선은 굉장히 느리게 움직이기 때문에 KA-1 경공격기나 일반 헬기에 탑재된 기관총으로도 손쉽게 요격할 수 있다. 광학조준장비로 조준해 사격할 경우 3~4㎞까지 맞힐 수 있는 K6 중기관총이나 1㎞ 안팎 거리 표적을 맞히는 K16 기관총 사격으로도 얼마든지 요격 가능하다. 이런 소구경탄은 사거리가 짧고, 낙탄해도 지상 피해가 거의 없다. 혹시나 MDL을 넘어가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만에 하나 한국군이 쏜 총탄 일부가 북한 시설에 맞는다고 치자. 도발로부터 영공·영토를 지키려는 자위권 차원의 사격이기에 국제법상 문제될 것이 없다.

    오물풍선 1000개 격추 10억 원이면 가능

    12.7㎜ 총탄 가격은 1발에 1000원, 7.62㎜ 총탄은 500~600원 정도다. 오물풍선 하나에 100발씩 쏴도 이번에 날아온 오물풍선 1000여 개를 모두 떨어뜨리는 데 10억 원 정도면 충분하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한국군은 오물풍선을 단 1개도 요격하지 않았다. 북한은 오물풍선을 계속 날려 보내겠다고 한다. 앞으로 오물풍선이 날아오면 이를 요격하겠다는 군 당국의 계획도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북한의 이런 도발에 어떤 의도가 담겼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듯하다. 그래서인지 이 같은 문제에 미국 등 동맹과 협의해 공동 대응하려는 움직임도 없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이 국민을 위협하는지 분명히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위협에 단독 대응하기 어렵다면 외교력을 발휘해 국민을 더 잘 보호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현재 한국 정부는 그 같은 능력과 의지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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