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43

..

중남미 ‘죽음의 정글’ 거쳐 미국 밀입국하는 중국인 급증

시진핑 정권에 좌절한 30, 40대 中 중산층이 불법 이민 감행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4-06-12 09: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지난해 10월 24일(현지 시간) 중국인들이 망명을 위해 멕시코 국경을 넘은 후 미국 캘리포니아주 자쿰바 인근에서 벽을 따라 걷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10월 24일(현지 시간) 중국인들이 망명을 위해 멕시코 국경을 넘은 후 미국 캘리포니아주 자쿰바 인근에서 벽을 따라 걷고 있다. [뉴시스]

    다리엔 갭은 콜롬비아와 파나마 국경지대에 위치한 거대한 협곡이다. 길이 160㎞, 폭 50㎞인 이곳은 열대우림으로 덮여 있고, 늪지대와 가파른 산악도 있다. 독충과 독사 등 각종 위험한 야생동물까지 출몰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오지라는 악명과 함께 ‘죽음의 정글’이라는 별명마저 생겼다. 게다가 과거에는 콜롬비아 공산 게릴라 반군이 이곳을 근거지 삼아 활동했으며, 지금은 마약 밀매업자와 무장 강도 등 범죄자들이 들끓고 있다. 이 지역은 미국 알래스카에서 아르헨티나 남단까지 미주 대륙을 종단하는 4만8000㎞ ‘팬아메리칸 하이웨이’가 유일하게 끊기는 구간이기도 하다.

    5000㎞ 이동해 미국으로

    중국인 다수가 에콰도르에 입국한 뒤 다리엔 갭을 거쳐 미국으로 밀입국하고 있다. [GettyImages]

    중국인 다수가 에콰도르에 입국한 뒤 다리엔 갭을 거쳐 미국으로 밀입국하고 있다. [GettyImages]

    국제 인권단체들은 이 지역에서 성폭행, 강도, 살인 등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경고해왔다. 영국 ‘가디언’은 이곳에서 지난해 12월 한 달간 214건의 성폭행 피해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210분마다 한 번꼴로 발생한 셈이다. 지역 갱단이 돈을 주지 않으면 가족 앞에서 피해자를 강간하는 일이 벌어졌고, 한 번에 최대 100명의 피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남미에서 북중미로 가는 유일한 육로라서 미국으로 불법 밀입국하려는 난민은 대부분 이곳을 지날 수밖에 없다.
    미국으로 밀입국하려는 불법 이민자는 도보로 에콰도르에서 시작해 콜롬비아, 파나마, 코스타리카, 니카라과, 온두라스, 과테말라, 멕시코 등 7개국을 거쳐야 한다. 파나마 정부 공식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다리엔 갭을 지나 남미에서 중미로 올라간 이민자는 52만85명이다. 국적별로 보면 베네수엘라가 32만8667명으로 가장 많았고 에콰도르(5만7222명), 아이티공화국(4만6558명), 중국(2만5344명) 순이었다.

    주목할 점은 미국으로 가려는 불법 이민자 가운데 상당 규모의 중국인이 있다는 것이다. 극심한 경제난과 정치·치안 불안 등을 겪는 남미 주민들이 잘사는 이웃 국가 미국으로 가려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되지만, 머나먼 중국을 떠나온 사람 다수가 죽음을 무릅쓰고 미국으로 불법 이민을 감행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파나마 정부는 최근 중국인 불법 이민자가 급증하고 있다면서 그동안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아이티 난민들이 이용하던 경로에 중국인들이 가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10~2021년 이곳을 통과한 중국인은 376명에 불과했으나 최근 들어 수십 배 증가했다.

    중국인들은 관광 목적을 내세워 출국이 편한 태국과 튀르키예 등으로 간 후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에콰도르로 들어간다. 이후 현지 브로커에게 수천 달러를 내고 콜롬비아와 파나마 국경인 다리엔 갭을 거쳐 멕시코 북쪽 미국 남부 국경지대까지 간다. 5000㎞를 이동해야 하는 이 여정은 길면 두 달쯤 걸린다. 이들이 밀입국하는 데 드는 비용은 평균 30만~40만 위안(약 5600만~7500만 원)인 것으로 추정된다.

    에콰도르 찾는 중국인들

    미국 국경 경비대원들이 체포된 중국인 불법 이민자들을 조사하고 있다. [미국세관국경보호국 제공]

    미국 국경 경비대원들이 체포된 중국인 불법 이민자들을 조사하고 있다. [미국세관국경보호국 제공]

    특히 남미에서 대표적인 친중 국가인 에콰도르는 미국으로 가는 중국인들의 중간 경유지가 되고 있다. 에콰도르 이민국 통계를 보면 지난해 에콰도르에 입국한 중국인은 5만 명을 넘어섰다. 에콰도르가 중국인의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기 직전인 2015년 1만8000명과 비교하면 3배 정도 늘어난 수치다. 중남미 언론 ‘인포바에’는 2016년부터 중국인 비자를 면제한 에콰도르가 최근 중국인의 미국 불법 이민 경로에서 핵심 경유지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동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에는 에콰도르를 경유해 미국에 입국하는 경로와 비용 등에 대한 각종 정보가 공유되고 있다. 가장 고생이 덜한 경로, 중간에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나 숙박업소 정보, 심지어 경유지 7개국에서 검문에 걸렸을 때 찔러줘야 하는 뒷돈 금액까지 국가별로 정리돼 있다. 에콰도르 키토에는 공항 픽업부터 숙박, 여행 준비까지 국경으로 가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 100여 개가 있다. 심지어 버스정류장에는 ‘콜롬비아 국경행’이라는 표지판이 중국어로 표시돼 있다. 정글 횡단에 필요한 예방접종을 실시하는 병원에는 중국어로 번역된 접수 양식도 구비돼 있다.

    죽음의 정글 등을 거쳐 고생 끝에 멕시코에 도착한 중국인 불법 이민자 다수는 미국 국경을 넘어 밀입국하는 과정에서 체포된다. 미국 세관국경보호국에 따르면 지난해 멕시코와 접한 서남부 국경을 통해 미국으로 불법 이민을 시도하다 체포된 중국인 수는 3만7439명으로 집계됐다. 최근 10년간 연평균 적발 건수가 1500여 건인 것과 비교하면 20배 급증한 규모다. 특히 2021년(689명)의 54배이며, 2022년(3813명)과 비교해도 10배 많다.

    밀입국을 시도하는 중국인 다수가 체포되고 있음에도 중국인의 미국행이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 정부의 망명 허가 비율이 높은 편인 데다, 불이익을 감안해 중국으로 강제 송환하지 않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중남미 출신 이민자의 망명 승인 비율은 14%에 그치지만 중국인은 50%를 웃돈다. 체포된 중국인은 미국 정부의 관리시설에 수용된 다음 망명 신청을 한다. 이후 간단한 심사를 받은 다음 망명 허가를 받으면 석방된다.

    이들은 주로 캘리포니아나 뉴욕의 중국인 집단 거주 지역인 차이나타운으로 간다. 영어를 잘 못해도 일자리를 구하기 쉽기 때문이다. 서방 이민 전문가들은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중국인의 합법적인 미국 입국이 막히고 있어 불법으로 입국한 후 망명을 신청하는 중국인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목숨까지 걸고 불법 이민을 감행한 중국인은 대부분 중산층이다.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언론은 중국 정부의 ‘제로 코로나’ 정책 때문에 생활 기반이 무너졌거나 부동산 폭락 등으로 어려움을 겪어온 중국 중산층이 중국을 탈출해 미국으로 밀입국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대졸 학력자가 종사할 만한 다양한 직업군의 중국인으로 대부분 30, 40대이고 어린 자녀를 동반한 경우도 많다. 실제로 경기침체로 도산한 기업가나 해고된 직장인, 실리콘밸리 진출을 원하는 엔지니어, 교사, 요리사 등이 미국으로 불법 이민을 하는 추세다. 고액 자산가나 부유층은 투자 등 적법한 방법으로 미국 ·캐나다·호주 등으로 이민을 갈 수 있지만, 중산층은 이 조건을 갖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빅터 쉬 미국 캘리포니아대 21세기중국센터 소장은 “이렇게 많은 사람이 남미와 미국을 향해 위험한 여정에 나선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며 “이는 인구의 상당 부분이 경제적으로 심각한 어려움에 처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망명 신청 중국인 7.6배 증가

    중국 정부는 2020년 코로나19가 처음 발생한 후부터 3년간 제로 코로나로 불리는 엄격한 봉쇄 조치를 단행했고, 특히 중산층이 경제적으로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이후 2022년 12월 ‘위드 코로나’ 정책을 시행하며 방역 조치를 완화했지만 중국 경제는 부동산시장 위기와 지방정부 부채 급증, 정부 규제 강화 등으로 침체에 빠진 채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6월 청년 실업률이 21.3%라고 발표한 이후 아예 청년 실업률 통계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최근 유명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조차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종교적 박해나 자녀 교육 때문에 미국행을 선택한 사람도 많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기 체제가 시작된 이후 중국에서 정치적 자유가 갈수록 없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와 공산당의 사회 통제는 점점 엄격해지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본토에서 망명을 신청한 사람은 11만6868명에 달한다. 시 주석 체제가 출범하기 시작한 2012년 1만5362명과 비교하면 7.6배 늘어난 수치다.

    이언 존슨 미국 외교관계협회 선임연구원은 “정치적 상황이 예전보다 훨씬 위험해졌다고 느끼는 중국 중산층이 미국으로 오고 있다”면서 “무슨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중국에서 빠져나오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NYT는 “폭압적인 시진핑 정권에 좌절감을 느낀 중국인들이 위험천만한 정글지대를 거쳐 미국으로 들어가는 험난한 여정을 선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들어 미국령 괌에 밀입국하는 중국인도 늘어나고 있다. 괌에서는 망명 신청이 가능하다. 괌은 무비자 여행이 불가능한 탓에 중국인은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사이판으로 갔다가 괌으로 몰래 들어가 망명 신청을 하고 있다. 서방 이민 전문가들은 중국인의 불법 이민이 수년간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칼 민즈너 미국 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중국은 사망자보다 출생자가 적어 60년 만에 처음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면서 “미국 등 외국으로 탈출 현상은 장기적 관점에서 중국에 도전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