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9

2011.05.30

누가 그녀를 죽였나

  •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입력2011-05-27 17: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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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죽어줄게. 이제 만족해?”

    김유라 씨 소설 ‘배심원’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여고 2학년 ‘보드소녀’는 학교 일진의 괴롭힘, 부모와 갈등이 힘들어 자살을 결심합니다. 마음 털어놓을 곳이 없던 소녀는 인터넷에 “6월 19일 학교 옥상에서 나는 이 세상과 작별을 고한다”는 글을 올립니다. 이를 본 누리꾼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마라”며 응원 댓글을 달고 기프티콘까지 선물합니다.

    자살을 암시하는 글을 올린 뒤 소녀의 상황은 이상하리만치 잘 풀립니다. 친구들이 더는 소녀를 괴롭히지 않고 부모와도 화해합니다. 하지만 자살을 예고한 날 소녀가 죽지 않자 자살을 기대했던 누리꾼들은 냉정한 배심원으로 돌변합니다.

    한 누리꾼이 “이 학생이 진정으로 올바른 어른이 되기 위해서라도 우리 누리꾼이 바로잡아줘야 한다”며 나섭니다. 인터넷은 ‘왜 죽지 않느냐’ ‘당장 죽으라’는 글로 도배됩니다. 소녀의 신상이 간단히 털리자 일부 누리꾼은 집까지 찾아와 ‘보드소녀 처단’이라는 명목으로 소녀를 괴롭힙니다. 자신의 홈페이지 조회 수를 높이기 위함입니다. 젊은 남성들은 죽기 전에 성관계라도 맺자며 소녀를 추행합니다. 소녀가 사이트에 올린 글도 지우고 경찰에 신고도 해보지만 이미 삶은 망가져버린 뒤입니다.

    소녀는 베란다 난간을 붙잡고 아래를 내려다봅니다.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고통받기보다 혼자만의 세상에 있는 편이 낫다고 결심합니다. 그나마 마음이 덜 아픈 대목은 소녀가 끝까지 자신을 탓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누가 그녀를 죽였나
    “사이버상의 심판자들. 인정도 도리도 모르는, 그저 재미만을 위해 피해 보지 않는 선에서 즐기려는 무지한 배심원들 때문이다. 이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5월 23일 송지선 아나운서가 이불을 뒤집어쓴 채 오피스텔 19층에서 뛰어내렸습니다. 자신의 트위터에 자살을 암시한 지 16일 만이었습니다. 고인은 16일 동안 보드소녀처럼 누리꾼 배심원들에게 시달려야 했습니다. 과연 그를 죽인 것은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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