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윤 기자]
김용균은 한국 사회 산업재해의 이상 징후를 경고하며 ‘탄광 속 카나리아’처럼 죽어간 여러 젊은이 가운데 한 명이다. 2016년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의 안전문(스크린도어)을 수리하다 전동 열차에 치여 숨진 김모(당시 19) 군, 2017년 11월 제주 페트병 제작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다 압착기에 몸이 끼어 숨진 제주 특성화고 3학년생 이민호(당시 18) 군도 빼놓을 수 없다.
그중에서도 김용균 씨가 각인된 이유는 스스로 ‘위험의 외주화’가 초래한 위험성을 뚜렷이 자각하고 있었고, 취임 첫 행보로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약속한 문 대통령에게 직접 호소하려 했음에도 비극을 피해갈 수 없었다는 점 때문이다. 그래서 김용균이라는 이름은 한국 사회 산업재해 문제를 더는 용납해선 안 된다는 임계점의 동의어가 됐다. 그 결과 2018년 12월 27일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28년 만에 전면 개정된 이 법은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해 도금 작업과 수은, 납, 카드뮴의 제련·주입·가공·가열 작업 같은 유해·위험 작업의 사내 도급을 원천 금지시켰다. 또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근로자가 작업을 중단하고 대피할 수 있다는 점(작업중지권)을 명시하고, 이러한 근로자에게 해고 등 불이익을 준 사업주는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그러나 노동계에선 도급을 금지시킨 유해·위험 작업군이 너무 제한돼 있다고 반발한다. 발전소, 지하철·철도, 조선업 등이 금지 대상에서 빠진 데 이어 4월 발표된 시행령에서 규정한 도급 승인에서도 제외됐다.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처벌 규정 하한선이 규정되지 않는 점도 당초 입법 취지에서 후퇴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와중에 8월 19일 ‘김용균 보고서’가 발표됐다. 고인의 사망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22가지 제언이 담긴 국무총리실 산하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특조위)의 보고서다. 고인이 사망한 지 9개월 만이고, 특조위가 출범한 지 4개월 만이다.
‘일터는 깜깜했습니다’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조사결과 종합보고서. [뉴시스]
사고 현장에 갔을 때 김용균 씨가 작업하던 곳이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어둡고 깜깜해 특조위원 16명이 충격을 받았다는 체험 고백이었다. 이윽고 ‘위원회의 심정도 깜깜했습니다’라는 심적 부담감에 대한 진솔한 토로로 이어졌다. 그렇게 짧은 단문으로만 채워진 발간사에는 ‘우리가 왜 이 지경까지 왔는가’라던가 ‘(노동자의 인권을) 누가 지켜야 합니까’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들이 녹아 있었다. 그리고 ‘위원회는 진정 우리 사회의 노동 안전을 향한 위원들 모두의 간절한 소망을 담아 이 보고서를 펴냅니다. 부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기 바랍니다’로 끝을 맺는다.
형식적인 글이 아니었다. ‘다른 이의 안전이 곧 나의 안전’이라는 패러다임 전환에 대한 간곡한 마음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 글을 쓴 사람과 인터뷰하기로 마음먹었다. 특조위 위원장을 맡은 김지형(61)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다.
“원래 저 자신은 물론, 후배 법조인들에게도 법조문을 쓸 때 석 줄을 넘기지 말라고 할 만큼 간명한 글쓰기를 좋아합니다.(웃음) 이번 발간사를 쓸 때는 문장보다 어떻게 하면 이 문제에 대한 특조위원들의 간절함을 담아낼 수 있는지를 고심했습니다. 많은 분이 일터의 안전 관련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에 공감하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여전히 나나 내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위험한 작업장에서 일하는 ‘남의 문제’로 여깁니다. 그래서 어떡하면 그 간극을 좁혀 ‘그들의 문제가 곧 내 문제’라고 받아들이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김용균 씨와 그 동료들이 일한 작업 현장은 석탄가루와 석탄을 태운 재가 엄청나게 날려 대낮에도 너무 깜깜해 무서울 정도였을 뿐 아니라, 탄광에 비견될 정도로 유해물질로 가득했다고 한다. 결정형 유리규산, 벤젠, 고농도 일산화탄소 같은 1급 발암물질이 상존했다. 그중 결정형 유리규산의 경우 노출 안전 기준보다 7배 높은 수치가 검출된 곳도 있었다. 특조위가 발전노동자의 폐 기능을 비교한 결과, 2018년 운전업체 노동자의 평균 폐기능이 2013년보다 10%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특조위 첫 번째 전체회의를 사고 현장에서 했는데 저는 물론, 그 분야 전문가 분들도 그 실상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발전시설이라고만 생각했지 탄광과 비교해야 할 정도라곤 상상도 못 했으니까요. 거기서 일하는 분들에겐 일상인 모습이 외부인들 눈에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현장과 외부의 괴리가 그만큼 컸던 겁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조사가 끝날 무렵에는 무감각하게 일해오던 현장 노동자 분들이 불안감을 감추지 못할 정도가 됐습니다. 그래서 신속한 보호장구와 안전장비 제공, 설비 개선을 가장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18년간 누적된 정책 오류가 빚은 참사”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고로 숨진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8월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특조위 진상조사 결과 보고를 들으며 메모를 하고 있다. 메모 내용은 ‘다 지켜서 죽었다, 작업환경 문제로 죽었다, 소유권 가진 원청’이다. [뉴스1]
이런 구성을 염두에 두면 보고서의 결론이 좀 더 쉽게 이해된다. 보고서는 고인의 죽음이 개인의 부주의 탓이라는 과실론에 대해 ‘김용균 씨는 작업 지시를 너무 충실히 이행하다 죽음을 맞았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발전5사의 발전 정비 사업 외주화와 민영화에 따른 원·하청의 책임 회피와 하청 노동자에게 위험이 집중된 구조 때문’이라고 못 박았다. 사고 원인을 구조적 문제에서 찾은 것이다.
구체적으로 외환위기 이후 정부의 ‘전력산업 구조개편’ 정책에 따라 한국전력공사(한전)로부터 발전사업이 수직 분리되면서 발전5사 및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6개 자회사로 수평 분할(2001)되고 민영화(2011)된 것을 그 근본 원인으로 지목했다. 18년간 누적된 정책의 문제가 청년의 몸을 짓눌러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설명이다. 전치형 KAIST(한국과학기술원)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는 이를 “김용균의 몸은 기계에 눌리는 동시에 발전산업의 왜곡된 구조에 눌렸다”고 표현했다.
보고서는 민영화와 외주화가 원래 기대했던 경영 개선 효과를 창출하지 못하고 ‘위험의 외주화’와 하청업체의 노무비 착취라는 역효과만 불러왔다며 원래대로 전력사업을 공기업화하고 하나의 사업체로 일원화할 것을 중장기 해법으로 주문했다. 정부에서 의뢰한 보고서에서 외환위기 이후 ‘전가의 보도’처럼 군림하던 민영화를 철회하고 공영화로 전환하라는 주장이 등장한 것은 이례적이다.
“우리의 제언이 정답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경영기법의 하나로서 외주화의 긍정적 효과를 인정합니다. 생산비용 절감, 그로 인한 가격 인하와 투자 유발까지 모든 외주화를 죄악시하자는 게 결코 아닙니다. 다만 ‘위험의 외주화’는 한번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위험의 외주화’를 모두 문제시하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외주화를 통해 위험이 관리되고 회피된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석탄화력발전사업에 국한했을 때 민영화와 외주화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뿐 아니라, 위험을 확대 재생산하고 새로운 위험이 증폭됐다는 점에서 철회되는 것보다 못하다는 겁니다.”
이를 뒷받침하고자 김 위원장이 제시한 증거들은 매우 구체적이다. 석탄화력발전 하청은 원청의 사내 사업장에서 이뤄지는 사내 하청이다. 또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연속 흐름 공정’의 하나로 이뤄진다. 중간에 문제가 생기면 전체 공정이 멈춰야 하기에 어디까지가 원청 책임이고 어디까지가 하청 책임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게다가 사내 하청은 불법 파견이냐, 도급이냐는 법리 논쟁의 불씨를 안고 있다. 그래서 원청 직원의 업무를 직접 지휘, 감독할 수 없어 사내 사업장임에도 불구하고 위험 관리까지 하청에 떠넘기게 된다. 그러다 보니 위험 관리 공정이 매우 복잡해져 외주화 전에는 4단계였던 게 지금은 20개 이상 단계로 크게 늘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위험 관리를 떠맡은 하청은 경쟁 입찰로 따온 사업으로 수익을 발생시켜야 하기에 저임금, 미숙련, 추가 근로가 가능한 청년노동자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이런 외주화의 결과로 구의역 김군이나 김용균 씨 같은 젊은 미숙련 비정규직 노동자가 그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 시스템을 유지하는 한 제2, 제3의 김용균이 또 나올 수밖에 없음을 뒷받침할 계량화된 자료까지 뽑아냈습니다. 특조위는 13개 발전소 1만 명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전수조사에 가까운 설문조사와 면접조사를 실시했습니다. 또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받은 산재 실태 자료를 토대로 통계분석을 실시했습니다. 이를 토대로 석탄화력발전사업의 경우 협력업체 노동자가 1명 늘어나면 재해 발생이 0.75회 증가함을 보여줬습니다.”
더욱 참담한 것은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정당한 임금이 절반가량 착복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하청업체 협력사가 지급 받은 직접노무비 가운데 실제 노동자에게 지급된 비율은 47~61%밖에 되지 않음이 드러났다. 김용균 씨가 받아야 할 월급도 원래 446만 원은 돼야 하는데 212만 원밖에 안 된 것으로 조사됐다.
“직접노무비의 절반이 사라져”
김지형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특조위) 위원장이 8월 19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2001년 발전5사 수평 분할과 2010년 민영화 이후 발전5사의 경영 성과가 호전된 것이 없다는 지적도 뼈아팠다. 당초 산업부(현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이를 추진한 명분은 발전5사 간 경쟁을 통해 자유 경쟁이 발생하고, 만성적 적자구조를 깨는 동시에 비용 절감과 경영개선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효과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재 발전5사의 채산성은 과거와 비슷한데 산업재해 발생률만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발전5사라고 하지만 결국 이익을 나눠 먹는 과점에 불과합니다. 정상적인 자유 경쟁이 일어날 수 있는 구조가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발전사에서 구입하는 석탄 도입 단가가 과거 직영 때보다 떨어져야 하는데 오히려 꾸준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게다가 과거 국영화·직영화 때 들어간 노무비용과 비교할 때 도급금액이 계속 늘어나고 있어 발전회사의 이윤이 민영화 이전과 별 차이가 없는 상태예요.”
민영화 하면 영국이 먼저 떠오른다. ‘대처리즘’을 통해 공기업의 민영화에 앞장선 나라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고서를 보면 영국의 경우 산업재해 발생률은 한국의 20분의 1에 불과하다. 유럽연합(EU) 역시 5분의 1 수준이다. 국가와 기업이 산업재해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고 그에 대한 법적 책임도 무겁게 지우기 때문이다. 이번 보고서에선 이런 법적·제도적 장치에 대한 제언도 담겼다. 대법관 출신인 김지형 위원장이 개인적으로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이라고 했다.
“기업의 사회책임 경영 강화해야”
[박해윤 기자]
김 위원장은 ‘채찍’에 해당하는 이런 법적 개선책보다 ‘당근’에 해당하는 제도적 개선책을 더 강조했다. 바로 사회책임 경영을 강화한 기업에게 그것에 상응하는 보상과 지원을 해주는 제도의 마련이다.
“한국에선 기업의 목적을 이윤 추구라고만 생각하죠.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밀턴 프리드먼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윤의 극대화에 있다’고 선언했으니까요. 영미권에서 주창한 주주 자본주의죠. 하지만 유럽에서 기업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주주 외에도 노동자, 소비자, 협력업체, 지역사회 등과 이익을 공유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죠. 유럽의 여러 정부가 오래전부터 선도해왔습니다. 사회적 요청에 부응하는 기업경영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하고, 공인된 검증기구를 통해 인증받은 기업에게는 공적조달 우선권을 준다든지, 사회적 포인트를 쌓게 해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한 겁니다. 여기엔 안전보건, 환경공헌, 인권활동 같은 세부적 지표가 제시됩니다. 이를 준수하다 보면 일하는 사람들의 안전 문제 해결의 기반이 조성될 수밖에 없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김용균 보고서’가 발표된 8월 19일, 미국에서는 기업의 사회경영 책임을 강조한 ‘기업의 목적에 대한 성명’이 발표됐다. 애플의 팀 쿡,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코카콜라의 제임스 퀸시, 제너럴모터스의 메리 바라,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브라이언 모이니핸,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처럼 미국을 대표하는 181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단지 주주들을 위한 눈앞의 이윤 창출만 추구하지 않고 직원과 고객, 사회 등 모든 이해관계자를 고려하는 것을 기업의 목적으로 새롭게 정의한다”는 선언에 동참한 것이다. 주주 자본주의의 아성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팡파르가 울려 퍼진 것이나 진배없는 사건이었다.
“세계적으로 기업문화에 대전환이 이뤄지기 시작했습니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려면 주주의 이익만 따져선 안 된다고 생각한 기업인들의 자발적 변화입니다. 한국도 이에 뒤처져선 안 됩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미 SK, 포스코 같은 한국 대기업 역시 사회책임 경영의 기치를 들어 올렸습니다. 사회책임 경영을 강조하는 큰 흐름이 이뤄지면 일터에서 안전·보건 문제 역시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김 위원장은 2011년 대법관직에서 퇴임한 후 갈등이 발생한 곳마다 중재자로 호출돼왔다. 신고리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위원장,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장 등이다. 그때마다 갈등을 조정하고 이를 합리적으로 절충해 대안을 모색해왔다. 이번 특조위에서는 인권을 강조하면서 민영화와 외주화 철회라는 강수를 들고 나왔다.
“갈등 조정을 중재할 때 중요한 것은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입니다. 원전 공론화 문제 같은 화두를 다룰 때는 서로 다른 입장과 가치를 대변하는 목소리들이 충돌하고 논쟁하되 상대방 의견을 경청하고 자신도 돌아볼 수 있는 관용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구의역 김군 사망사고나 김용균 씨 사망사고에 대해선 생각이 다릅니다. 다른 나라는 소득이 오를수록 재해율이 감소하는데 한국은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이는 인권 유린 문제로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구의역 사망사고 때도 권고안이 외주화 철회였는데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번 권고안에도 민영화와 외주화 철회가 담겼는데 이를 수용하느냐 마냐는 정부의 의지에 달렸다고 봅니다. 물론 우리의 권고안만이 옳다고 고집하진 않겠습니다. 그저 하나의 계기가 돼 비정규직 청년들이 희생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본격적인 사회적 논의의 출발점이 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