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함대 거부당해 격분한 트럼프, 동맹 중심 안보체제 이탈 가능성

호르무즈해협 다국적 연합함대 승부수, 동맹국 외면으로 사실상 무산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6-03-20 07: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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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월 16일(이하 현지 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들에게 “우리는 한국, 일본, 독일에 각각 4만5000명 병력을 두고 있다”면서 “(그들은) 우리를 도와야 하지만 적극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월 16일(이하 현지 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들에게 “우리는 한국, 일본, 독일에 각각 4만5000명 병력을 두고 있다”면서 “(그들은) 우리를 도와야 하지만 적극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야심차게 추진해온 호르무즈해협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한 다국적 연합함대 구성 방안이 사실상 무산될 것으로 보인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유럽 회원국 가운데 다국적 연합함대에 참여하겠다는 국가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을 비롯한 다른 동맹국도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월 14일(이하 현지 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소셜 계정에 올린 글에서 한국·중국·일본·영국·프랑스 등 5개국을 거론하며 호르무즈해협에 군함을 보낼 것을 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이미 이란의 군사 능력을 100% 파괴했다”고 주장하면서도 “그들이 아무리 심하게 패배했더라도 이 수로의 어딘가에 드론 한두 개를 보내거나, 기뢰를 떨어뜨리거나, 단거리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은 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호르무즈해협을 개방되고, 안전하며, 자유롭게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부담 느낀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은 3월 15일 전용기 안에서 기자들에게 유조선 통과를 호위하고 이란 공격에 대비할 다국적 연합함대 구성을 위해 먼저 언급한 5개국에 2개국을 추가해 7개국에 참여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해협을 통해 석유를 받는 세계 국가들은 그 항로를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며 많은 국가가 참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 매체 액시오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호르무즈해협 다국적 연합함대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국가에 독일, 이탈리아, 호주, 캐나다, 요르단, 걸프 산유국이 포함됐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국적 연합함대 구성 방안을 추진한 이유는 원유 공급 차질과 국제유가 폭등 사태로 이란에 대한 군사작전의 동력을 상실하는 등 최악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에서 휘발유 가격이 오르며 민생 경제를 압박하기 시작했고, 이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 갈수록 정치적 부담이 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다국적 연합함대를 만들어 호르무즈해협에서 유조선 등을 호위하는 작전을 벌이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고 중요하다. 물론 미군은 자체적으로 해군 군함들을 동원한 유조선 호위를 구상했다. 하지만 페르시아만에 대기 중인 유조선 수백 척을 호위하기에는 미 해군 군함이 상당히 부족한 실정이다. 미국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유조선을 호위할 수 있는 미 군함은 항공모함을 포함해 12척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이란을 공격하는 데 동원되고 있다. 서방 군사 전문가들은 충분한 호위가 이뤄지려면 유조선 척당 군함 2척, 혹은 유조선 5~10척으로 구성된 선단에 군함 12척이 필요하다고 추정한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다국적 연합함대라는 승부수를 꺼내 든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 선뜻 응하는 국가는 거의 없었다.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죽음의 통로’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호르무즈해협은 이란의 드론, 대함미사일, 기뢰, 소형 고속정 때문에 ‘킬 박스’(kill box: 죽음의 구역)가 될 수 있다”면서 “현재 해협 양단에 발이 묶인 선박 600여 척을 처리하는 데만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닐 모리세티 전 영국 해군제독은 “현재로선 호르무즈해협에서 유조선과 군함의 안전을 보장하는 데 너무 큰 위험이 따른다”고 밝혔다. 

    실제로 호르무즈해협은 말굽처럼 굽은 항로 구조 탓에 유조선과 호위 함정들이 최대 270도 방향으로 위협에 노출될 수 있다. 브라이언 클라크 미국 허드슨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군함과 함께 중고도 공격 드론인 ‘MQ-9 리퍼’ 최소 12대가 상공을 순찰하면서 해안에 나타나는 이란의 미사일·드론 발사대를 타격해야 한다”며 “수천 명의 병사와 상당한 예산이 필요하고 이 작전을 몇 달간 지속해야 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호르무즈해협은 가장 좁은 폭이 39㎞밖에 되지 않고 말굽처럼 굽은 항로 구조 탓에 유조선과 호위 함정들이 최대 270도 방향으로 위협에 노출될 수 있다. 동아DB

    호르무즈해협은 가장 좁은 폭이 39㎞밖에 되지 않고 말굽처럼 굽은 항로 구조 탓에 유조선과 호위 함정들이 최대 270도 방향으로 위협에 노출될 수 있다. 동아DB

    안보 무임승차 내세우며 압박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수익자 부담’ 원칙을 제시하며 다국적 연합함대 참가를 거부한 국가들의 향후 불이익까지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해협은 그들이 에너지를 얻는 영토나 다름없다”면서 수익자 부담 원칙을 내세워 각국이 스스로 자국 에너지 보급로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원을 받든, 받지 않든 우리는 참여 여부를 기억할 것”이라며 강하게 압박했다. 

    미국 에너지정보국(EIA)에 따르면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는 원유의 목적지는 중국(37.7%), 한국(12.0%), 일본(10.9%), 유럽(3.8%), 미국(2.5%) 순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이 배치된 한국, 일본, 독일 등에 대해 ‘안보 무임승차론’을 거론하며 다국적 연합함대에 군함 파견을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월 16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들에게 “우리는 한국, 일본, 독일에 각각 4만5000명 병력을 두고 있다”며 “(그들은)우리를 도와야 하지만 적극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국, 일본, 독일 등이 미국의 안보 지원을 받으면서도 호르무즈해협에서 유조선 등을 안전하게 통과시키려는 다국적 연합함대에 군함 파견을 꺼리는 것을 비판한 셈이다. 하지만 각국 미군 주둔 규모에 관한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은 사실과 다르다. 주한미군은 2만8500명, 주일미군은 5만 명, 주독미군은 3만5000명 규모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3월 15일 나토를 거론하며 “응답이 없거나 부정적 반응을 보이면 나토 미래에 매우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우크라이나 문제에서 그들을 도울 필요가 없었다”며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도왔고, 이제 그들이 우리를 도울지 지켜보겠다”고 언급해 영국, 프랑스 등 나토 유럽 회원국들을 겨냥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토 유럽 회원국들은 다국적 연합함대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특히 유럽 회원국 가운데 핵심 3개국의 입장이 확고하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3월 17일 “우리는 이 분쟁의 당사자가 아니다”라며 “현 상황에서 호르무즈해협 개방 작전에 절대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3월 16일 “(군함 파견은) 나토의 임무가 되지 않을 것이며, 그렇게 여겨진 적도 없다”고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도 같은 날 “이번 전쟁은 나토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 역시 3월 17일 “폴란드는 이란에 병력을 보내지 않을 것이다. 이 분쟁은 우리 안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폴란드군은 지난해 기준 현역 병력 21만6000명을 보유해 미국, 튀르키예에 이어 나토 회원국 가운데 세 번째로 많다. 

    나토 외 국가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에 선을 그었다. 캐서린 킹 호주 교통장관은 “우리는 그 해협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지만 배(군함)를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도 “어떤 공식 요청을 받은 바가 없다”(안규백 국방부 장관)면서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란의 오랜 우방인 중국은 “각국은 군사 행동을 중단해야 한다”며 거부 의사를 내비쳤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3월 17일 국방·안보회의 모두 발언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호르무즈해협 다국적 연합함대 참여 제안에 대해 “우리는 이 분쟁의 당사자가 아니다”라며 “현 상황에서 호르무즈해협 개방 작전에 절대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뉴시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3월 17일 국방·안보회의 모두 발언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호르무즈해협 다국적 연합함대 참여 제안에 대해 “우리는 이 분쟁의 당사자가 아니다”라며 “현 상황에서 호르무즈해협 개방 작전에 절대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뉴시스

    ‘미국 우선주의’ 강화할 듯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 유럽 회원국과 동맹국이 이처럼 거부 의사를 보이자 거침없이 분노를 표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월 17일 트루스소셜 계정에 올린 글에서 “나토 동맹국은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막아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면서도 정작 미국이 중동에서 벌이는 군사작전에는 관여하려 하지 않는다”면서 “매우 어리석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우리는 더는 나토 회원국의 지원이 필요하지 않고 바라지도 않는다”며 “한국, 일본, 호주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3월 19일에는 이번 전쟁이 끝난 뒤 호르무즈해협을 통해 원유를 수입하거나 수출하는 나라 중심으로 호르무즈해협 안보를 맡기는 방안을 거론했다. 다국적 연합함대 구성을 거부한 동맹국들을 재차 압박한 것이다.

    수차례 이어진 동맹국 압박에 실패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의 지원 없이 미국의 압도적인 해공군력을 동원해 호르무즈해협 통제권을 확보하고자 총력전에 나설 것이 분명하다. 또 호르무즈해협 문제를 계기로 기존 동맹 중심 안보체제보다 미국 단독 행동을 중시하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노선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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