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가 10월 21일 도쿄 총리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강한 일본’ 슬로건 내건 여자 아베
다이게이급 잠수함은 세계 최고 성능의 재래식 잠수함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리튬이온 배터리로 운용되는 재래식 잠수함 가운데 가장 크다. 제원은 길이 84.5m, 너비 9.1m, 흘수 10.4m로 소류급보다 조금 크다. 기준 배수량은 3000t으로 소류급(2950t)보다 무겁고, 수중 배수량은 4200t이다. 수중 속력은 최대 20노트다. 이 잠수함에는 승조원 70명이 타는데, 최대 6명의 여성 승조원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또 수중 작전 중 리튬이온 배터리로 동력을 전환하면 사실상 소리가 나지 않아 적 잠수함이 탐지하기 어렵고, 공기불요추진체계(AIP)를 갖춰 상당 시간 잠항도 가능하다. AIP는 수면 위 공기를 사용하는 스노클의 기동 없이 물속에서 자체적으로 추진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장치다.일본 해상자위대는 2029년이면 리튬이온 배터리로 운용되는 잠수함을 10척이나 보유하게 된다. 일본 방위성은 다이게이급에 최신형 12식 대함미사일을 배치해 장거리 해상 억지력을 대폭 강화할 계획이다. 기존 잠수함은 사거리 130㎞인 하푼 대함미사일을 운용하지만 최신형 12식 대함미사일의 사거리는 최대 900㎞나 된다.
여기에 더해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일본 총리는 핵추진 잠수함 보유를 계획하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10월 20일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와 연립정권 구성에 합의하며 정치·경제·국방 등 12개 분야의 주요 정책을 공개했다. 특히 다카이치 총리는 국방 부문에서 “차세대 추진력을 갖춘 VLS(수직발사장치) 탑재 잠수함 보유 정책을 추진한다”며 ‘장거리미사일 탑재’와 ‘장기 잠항’이 가능한 신형 잠수함 보유 목표를 명시했다. 일본 정부가 ‘차세대 추진력’을 갖춘 신형 잠수함 도입을 국방 정책에 공식적으로 포함한 건 사상 처음이다. 차세대 추진력을 갖춘 신형 잠수함은 핵 잠수함을 의미한다. VLS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발사하는 장치다.
다카이치 총리는 10월 24일 첫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한 검토를 개시할 계획”이라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방위비 2% 달성 시점을 추가경정예산을 합쳐 2025회계연도(2025년 4월~2026년 3월)까지 앞당길 것”이라고 밝혔다. 3대 안보 문서(국가안전보장전략·국가방위전략·방위력정비계획)는 일본의 국방정책 방향에 대한 핵심 지침을 담은 문서다.
아베 신조 전 총리 재임 시절인 2013년 처음 마련된 국가안전보장전략은 외교·안보 정책의 근본 방향을 담은 지침서로, 적 미사일 기지 등에 대한 공격 능력을 의미하는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미사일 전력을 향상하는 내용과 방위비 증액 목표 등이 포함돼 있다. 국가방위전략은 방위력 목표와 실현 방안을 담은 문서로, 국가안전보장전략과 함께 10년 단위로 개정된다. 방위력정비계획은 장비·예산·인력 등 구체적인 방위력 구축 계획을 5년 단위로 명시한 문서다. 일본 정부는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 재임 시절이던 2022년 12월 3대 안보 문서를 개정해 2027회계연도(2027년 4월∼2028년 3월)에 방위비를 GDP 대비 2% 수준으로 늘리기로 한 바 있다. 3대 안보 문서가 개정되고 방위비 증액이 앞당겨지면 핵 잠수함을 건조할 예산을 마련하기가 쉬워진다. 고이즈미 신지로 신임 방위상도 취임 기자회견에서 ‘차세대 추진력’을 갖춘 신형 잠수함 보유 정책에 대해 “모든 선택지를 배제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일본 해상자위대의 최신형 다이게이급 4번함 라이게이호가 출항하고 있다. 일본 해상자위대 제공
의원 시절부터 對中 강경 일변도
140년 만에 첫 여성 총리로 선출된 다카이치 총리는 그동안 ‘유리 천장’을 깨며 강경 우파 성향 정치인으로 입지를 다져왔다. 중의원 10선으로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을 역임한 그는 일본 정계에선 ‘여자 아베’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자민당에서 지금은 해체된 아베파의 일원이었고, 아베 전 총리 정책을 계승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해왔기 때문이다.특히 다카이치 총리는 ‘강한 일본’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만들겠다는 신념을 보여왔다. 실제로 헌법 제9조, 이른바 평화헌법을 개정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헌법 제9조는 전쟁과 무력행사 영구 포기, 육해공군 전력 보유 금지, 국가 교전권 부인 등 내용을 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개헌을 통해 자위대를 헌법상 근거가 있는 군대로 명시하고, 미국 보호에만 의존하는 나라가 아니라 미국과 진정한 ‘상호방위조약’을 맺을 수 있는 국가로 만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하지만 개헌은 쉽지 않다. 헌법개정안 발의에만 의원 3분의 2 찬성이 필요한데, 중의원(하원)에서 평화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의 의석수가 3분의 1을 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카이치 총리는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통해 핵 잠수함을 보유하려는 야심을 보이고 있다. 명분은 ‘전략적 억제력’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그동안 중국에 매우 강경한 입장을 보여왔다. 특히 의원 시절에는 “중국의 부상이 일본에 위협이 된다”며 “대만에서 일어나는 일은 일본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만큼 대중(對中) 억제력을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이 핵 잠수함을 보유할 경우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좀 더 주도적인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일본 해상자위대는 영유권 분쟁 지역인 동중국해·남중국해는 물론, 서태평양 등 주요 전략 해역에서 우위를 점할 것이다. 특히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중국 미사일 기지와 항공모함을 타격하거나 해상 봉쇄 작전도 수행할 수 있다. 일본 방위성 전문가 그룹도 9월 보고서를 통해 중국에 적극 대응하려면 차세대 추진 시스템으로 잠수함 함대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트럼프 화답하면 상황 달라져
하지만 다카이치 총리의 핵 잠수함 보유 야심은 일본에서 야당과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일본에 대한 무력 공격이 발생했을 때 최소한의 자위력으로 방어한다는 헌법의 전수방위 원칙에 어긋난다. 핵 잠수함은 그 자체로 공격 무기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핵 잠수함 보유는 일본에서 원자력 기술 활용을 규정한 원자력기본법에도 위배된다. 이 법은 모든 원자로는 반드시 ‘평화적 목적’으로만 사용돼야 한다고 규정했다. 또한 비핵(非核) 3원칙에도 어긋난다.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는 1967년 12월 “핵을 갖지도, 만들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비핵 3원칙’을 밝힌 바 있고, 이후 역대 일본 정부는 이 원칙을 준수해왔다.하지만 미국이 일본의 핵 잠수함 보유를 지지하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 미국은 중국 해군력을 견제하려면 핵 잠수함 등 해군력을 강화해야 하지만 현재로선 핵 잠수함은 물론, 구축함도 제대로 건조할 능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에 미국 입장에선 일본이 핵 잠수함을 보유하는 등 해군력을 강화한다면 전략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 마이클 길데이 전 미국 해군 참모총장이 일본의 핵 잠수함 보유를 지지한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일본이 중국 견제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기대하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가 10월 28일 트럼프 대통령과 가진 미·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은 미국의 중국과 인도·태평양 지역 전략에서 매우 중요한 국가”라고 강조한 점도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