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10월 15일(이하 현지 시간) 존 미클스웨이트 블룸버그통신 편집국장과 대담에서 “사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는 ‘관세’이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라며 “집권하면 관세를 대폭 인상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집권 1기 시절 중국산 철강에 관세를 매기자 그들(중국)이 덤핑을 멈췄다”며 “내가 우리 철강(산업)을 구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집권하면 미국의 자동차 산업을 위해 멕시코산 수입차에 100%, 200%, 2000% 관세를 부과하겠다”면서 “동맹국도 예외는 없다”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1월 19일 텍사스주 보카치카에서 실시된 스페이스X 스타십 로켓의 여섯 번째 시험비행을 참관하고자 대기하고 있다. [뉴시스]
무역적자 관세로 대응
트럼프는 내년 1월 20일 취임 이후 첫 조치로 관세 카드를 꺼내 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는 11월 25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취임 당일인 내년 1월 20일 중국에 기존 관세에 더해 10%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멕시코와 캐나다에는 각각 25% 관세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펜타닐 문제를 거론하며 “이번 관세는 특히 펜타닐 등 마약과 불법 외국인의 미국 침략이 멈출 때까지 유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해 “수천 명의 사람이 멕시코와 캐나다를 통해 쏟아져 들어오면서 범죄·마약이 전례 없는 수준으로 유입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에 대해서도 “펜타닐을 비롯해 상당한 양의 마약이 미국으로 유입되는 것에 대해 중국과 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밝혔다. 중국, 멕시코, 캐나다 3개국에 사실상 ‘관세폭탄’을 투하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이들 3개국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려는 이유는 미국의 막대한 무역적자 때문이다. 멕시코와 중국, 캐나다는 2022년부터 줄곧 대미(對美) 수출액 기준 상위 3위에 들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멕시코는 지난해 미국에 4756억 달러(약 671조3000억 원)를 수출하며 중국을 제치고 1위로 부상했다. 중국은 같은 기간 4272억 달러(약 603조 원)로 2위를 기록했고, 캐나다(4211억 달러·약 594조4000억 원)가 3위였다. 한국은 이 기간 1162억 달러(약 164조 원) 규모를 미국에 수출해 6위를 차지했다.
무엇보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 혹은 동맹국에도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점이 인상 깊다. 미국은 트럼프 재임 시절인 2020년 FTA인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을 체결해 발효시켰다. 이 협정에 따라 3개국은 수출입 상품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고 있다. USMCA는 트럼프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미국의 무역적자를 키운다는 이유로 멕시코, 캐나다와 재협상을 벌여 체결한 협정이다. 즉 트럼프가 향후 멕시코와 캐나다에 관세를 부과하면 자신이 과거 만들었던 협정을 파기하는 셈이다. 중국, 멕시코와 달리 오랜 우방인 캐나다에도 고율 관세 폭탄을 부과하겠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는 이전부터 가치보다 국익 관점에서 동맹국을 대했다. 트럼프 2기 역시 정치적 이해득실과 국익을 위해서라면 동맹국이라도 개의치 않고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가 펜타닐로 대표되는 마약 문제를 고율 관세 부과와 연계한 점도 중요하다. 경제 이외 영역에서도 관세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향후 트럼프가 대외 정책을 추진할 때 관세를 주된 수단으로 활용할 공산이 크다.
‘죽음의 마약’으로 불리는 펜타닐은 고통이 심한 암 환자 등에게 투약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의료용 진통제다. 하지만 헤로인의 50배, 모르핀의 80배 이상 강한 중독성과 환각 효과를 가져 마약으로 악용되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지난 3년간 미국에서 10만여 명이 펜타닐 중독으로 사망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펜타닐 문제를 더는 방치할 수 없는 상태다.
펜타닐의 원재료는 대부분 중국에서 제조된다. 멕시코 마약 카르텔들은 중국으로부터 펜타닐 원재료를 밀반입해 가공한 후 이를 미국시장에 불법 유통해왔다. 미국 정부는 그동안 중국 정부에 펜타닐 원료를 공급하는 중국 기업들을 막아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또한 멕시코 정부에도 마약 카르텔의 펜타닐 제조와 유통을 단속해줄 것을 압박했지만 지금까지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트럼프가 펜타닐 문제를 관세 부과 이유로 제시한 만큼 추후 양국이 관련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 주목된다.
브릭스에 경고한 트럼프
트럼프는 ‘달러화의 패권 유지’ 문제에서도 관세를 활용할 방침이다. 그는 11월 30일 트루스소셜을 통해 “브릭스(BRICS) 국가들이 새로운 브릭스 통화를 만들거나 강력한 미국달러화를 대체할 다른 통화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100% 관세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브릭스는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등 5개국이 주도하는 신흥 경제국 연합체다. 브릭스는 지난해 11월 이란, 이집트, 에티오피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을 신규 회원국으로 가입시켜 소속국이 9개국으로 증가했다.
브릭스는 그동안 다극체제를 구축하고자 미국달러화 중심의 국제 금융과 교역 체제를 다변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을 대체할 자체 개발은행을 설립하고, 국제 교역시장에서 달러화 사용을 줄이는 한편 이를 대체할 자체 화폐를 만드는 계획도 추진해왔다. 하지만 트럼프는 달러화가 아닌 통화로 양자 간 무역을 추진하는 국가들에 벌금을 부과하거나, 수출 통제와 환율 조작 혐의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트럼프는 고율 관세 부과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할 ‘투톱’인 상무장관과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 하워드 러트닉 캔터피츠제럴드 최고경영자(CEO)와 제이미슨 그리어 전 USTR 대표 비서실장을 각각 지명했다.
러트닉은 1983년 투자은행(IB) 캔터피츠제럴드에 입사해 29세 때 회장 겸 CEO에 오르며 ‘샐러리맨 신화’를 쓴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트럼프에게 거액의 선거 자금을 후원했으며 트럼프의 관세와 제조업 기반 강화 공약을 적극 지지해왔다. 특히 러트닉은 미국이 소득세가 없고 관세만 있었던 20세기 초에 가장 번영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향후 중국에 고율 관세를 적용하는 사안과 관련해 주도적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어는 무역과 관세 분야에서 트럼프의 책사였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USTR 대표의 ‘분신’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라이트하이저 전 대표는 트럼프 1기 정부에서 고율 관세 부과를 비롯해 중국과의 무역·관세 전쟁을 이끌었다. 무역과 국제통상법에 정통한 변호사인 그리어는 중국 기업이 미국 관세를 회피하고자 다른 나라로 이전하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또한 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항구적 정상무역관계(PNTR)’ 지위를 철회하고 중국산 제품에 추가 고율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 모든 수입품에 10~20%의 관세를 적용하고,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서는 관세를 60%까지 부과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뉴시스]
고율 관세 소식에 놀란 트뤼도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11월 29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라라고 리조트를 황급히 찾아 트럼프와 만찬을 함께하는 등 3시간이나 회동했다. 트럼프의 강경한 고율 관세 부과 계획에 대한 여파다. 트뤼도는 미국 대선 이후 트럼프가 공식 회동한 첫 주요 7개국(G7) 정상이다. 트럼프는 “우리는 에너지·무역·북극 등 많은 중요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밝혔지만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도 11월 27일 트럼프와 통화해 펜타닐 등 마약 문제는 물론, 국경 강화 방안 등을 논의했다. 셰인바움은 “트럼프와 불법 이민, 펜타닐 밀매 등 현안들을 이야기했다”며 “좋은 관계를 유지할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중국은 트럼프의 고율 관세 부과 계획에 맞설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국제 경제 전문가들은 중국이 ‘공급망 전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중국 전문가인 주드 블랜체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구원은 “중국은 고율 관세 부과에 대한 보복 조치로 미국 기업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희토류 같은 핵심 자원의 조달을 차단하는 등 제재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과 중국이 본격적으로 관세 및 공급망 전쟁을 벌일 경우 세계경제에도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