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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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 자유 강조, 기행 일삼은 러시아의 저커버그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창업자 프랑스서 체포… 딥페이크, 불법 합성물 등에 악용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24-08-30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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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텔레그램 공동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파벨 두로프. [파벨 두로프 인스타그램]

    텔레그램 공동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파벨 두로프. [파벨 두로프 인스타그램]

    “텔레그램의 사명은 개인정보와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지난해 4월 28일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앱) 텔레그램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파벨 두로프가 텔레그램 공식 채널에 남긴 말이다. 그가 만든 텔레그램은 이 사명을 성실히 수행한다. 우선 텔레그램은 보안 성능으로 이름을 알렸다. ‘비밀 대화’ 가능을 사용하면 제3자가 대화 내용을 가로채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 기능 덕분에 러시아, 홍콩 등지 인권운동가들이 애용했고 전 세계로 퍼졌다.

    과도한 표현의 자유는 문제를 낳기도 했다. 비밀 대화 기능을 범죄에 악용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이다. 불법 음란물, 마약이 텔레그램을 통해 유통되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2019년 2월 텔레그램 단체 채팅방에서 불법 음란물을 거래하고 유포한 사건, 이른바 ‘n번방 사건’이 터졌다. 최근에는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한 불법 합성물이 텔레그램에서 대거 유통되는 피해가 발생해 큰 파장을 낳고 있다.

    각국 수사기관 및 관련 전문가들은 텔레그램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으나 두로프는 불가능하다며 맞섰다. 그는 2016년 미국 CNN과 인터뷰에서 “범죄자를 제외한 사람들에게만 안전한 메신저 기술은 없다”며 “(보안 측면에서) 안전한가, 그렇지 않은가 둘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12조 자산가, 정자 기증으로 자녀 100명 등 기행 일삼아

    8월 28일 두로프는 프랑스 입국 직후 프랑스 수사기관에 체포됐다. 프랑스 검찰은 그가 만든 텔레그램이 마약 유통, 돈세탁, 조직범죄, 아동 포르노 유통 등을 방조했다고 보고 있다. 프랑스 수사기관이 텔레그램 측에 범죄자들의 대화 내역 공개를 요청했지만 두로프가 이를 거부해 체포한 것이다.

    1984년 러시아에서 태어난 그는 2006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프콘탁테’(Vkontakte·VK)를 창업했다. VK는 ‘러시아의 페이스북’으로 불리며 승승장구했다. 페이스북(현 메타)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처럼 두로프도 ‘러시아의 저커버그’로 이름을 알렸다. 사업은 탄탄대로였으나 두로프는 2014년 4월 돌연 VK를 매각하고 독일로 망명했다. 러시아 정부와 사이가 나빠졌기 때문이다. 2013년 11월 우크라이나에서 친러시아 정권에 대항하는 시민운동이 벌어지자 러시아 정부는 VK 측에 시민운동 참가자들의 개인정보를 넘겨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VK CEO였던 두로프는 이를 거부했다. 이후 러시아 정부가 반정부 인사들의 VK 계정 삭제를 요청하자 두로프는 러시아 정부의 요청 사항을 자신의 VK 계정에 전부 폭로한 뒤 망명길에 올랐다.

    두로프는 망명 1년 전인 2013년 텔레그램을 출시했다. 2015년 독일 시민권을 얻었으며, 2017년에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텔레그램 본사를 세웠다. 2021년에는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 프랑스 수사기관이 두로프를 체포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가 프랑스 국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두로프는 현재 출국금지 명령과 함께 보석금 500만 유로(약 74억 원)를 내는 조건으로 석방을 허가받았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두로프의 자산은 91억5000달러(약 12조 원)로 추산된다. 두로프는 기행으로도 유명하다. VK를 운영하던 2012년에는 5000루블(약 7만3000원) 지폐로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려 빈축을 샀다. 올해 7월에는 자신의 텔레그램 계정에 정자 기증을 통해 생물학적 자녀가 100명이 넘는다는 사실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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