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15

2023.11.17

‘포스트 하마스’ 가자지구 누가 통치하나

미국은 평화 공존 위한 ‘두 국가 해법’ 제시… PA 수반 압바스에 일단 힘 실어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3-11-19 09: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는 유엔이 공인하는 팔레스타인 입법·사법·행정부로 구성된 통치기구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민족을 대표하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는 1993년 각각 국가를 세우고 평화적 공존을 내용으로 한 오슬로 협정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은 PLO를 합법적인 팔레스타인 정부로 인정했고, PLO는 1996년 PA로 이름을 바꿔 공식 출범했다.

    다사다난한 팔레스타인 정치사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왼쪽)과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11월 5일 요르단강 서안지구 라말라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미국 국무부]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왼쪽)과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11월 5일 요르단강 서안지구 라말라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미국 국무부]

    PA는 이원집정부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자치정부 수반(대통령)이 국가 최고지도자지만 실권은 의회가 갖고 있다. PA 초대 수반은 대선에서 선출된 PLO 의장이자 주축 세력인 파타당의 대표 야세르 아라파트였다. 2004년 아라파트가 사망하고 2005년 대선에서 승리한 마흐무드 압바스가 2대 수반에 올랐다. PA는 2012년 유엔 총회에서 전체 193개 회원국 중 138개국 동의로 옵서버가 됐다.

    2006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총선에서 무장정파 하마스가 파타당을 제치고 다수당이 됐다. 하마스는 당시 총선 승리를 토대로 파타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했지만 압바스 수반이 조기 총선을 주장하자 2007년 파타당과 내전을 벌여 가자지구를 장악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사는 자치지역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 등이며, 임시 행정수도는 요르단강 서안지구 라말라다. PA와 파타당은 요르단강 서안을 통치하고 있다. 이후 팔레스타인에서 하마스와 파타당 간 반목·대립이 심화해 총선과 대선이 실시되지 않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이후 PA와 파타당에 가자지구 통치를 맡기고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의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큰 그림’ 그리기에 나섰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11월 8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외무장관 회의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지향하는 가자지구 비전을 밝혔다. 블링컨 장관은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제거하면 PA가 가자지구 통치권을 갖고 요르단강 서안과 정치적으로 통일한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블링컨 장관은 팔레스타인의 궁극적 미래가 ‘두 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에 따른 독립국가 수립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제3차 중동전쟁(1967) 전에 형성한 국경선을 기준으로 각각 독립국가로 존재하며 평화롭게 공존하도록 한 방안이다. 두 국가 해법은 오슬로 협정에서 확인한 원칙이며,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지지하고 있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보좌관도 11월 12일 미국 CBS 방송과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재점령 불가 △팔레스타인인의 강제 이주(가자지구 주민의 가자지구 외부로 이주 등) 불가 △미래 테러 세력의 근거지로 가자지구 활용 불가 △가자지구 축소 불가 등 4개 원칙을 밝혔다. 설리번 보좌관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가 팔레스타인인의 리더십 아래서 다시 연결되고 통일되는 것을 보길 원한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군, 가자지구 통제할 것”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11월 11일 기자회견에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안보 통제를 주장하고 있다. [이스라엘 총리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11월 11일 기자회견에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안보 통제를 주장하고 있다. [이스라엘 총리실]

    미국 정부의 구상이 실현될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무엇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이스라엘 극우세력이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이 무기한으로 가자지구에 대한 전체적인 안보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말 그대로 가자지구를 재점령하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을 계기로 가자지구를 점령했다가 2005년 가자지구에서 완전히 철수한 바 있다.

    미국 등 국제사회가 이를 강력하게 비판하자 네타냐후 총리는 “재점령 의사가 없다”면서도 “이스라엘군(IDF)이 가자지구를 계속 통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네타냐후 총리는 11월 10일 전쟁 발발 후 처음으로 남부 가자지구 접경의 이스라엘 지방자치단체장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하마스 격퇴 후에도 가자지구는 IDF 통제 하에 있을 것”이라며 “하마스가 제거된 후 이스라엘 국민에게 더는 위협이 없도록 가자지구의 완전한 비무장화를 포함해 전면적인 안보 통제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또한 “PA가 가자지구를 넘겨받으면 아이들에게 이스라엘을 혐오하고 죽이도록 교육시킬 것”이라면서 “어떠한 경우라도 그곳의 안보 통제권을 포기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정치생명이 끊길 위험에 놓인 네타냐후 총리가 미국 정부가 제시한 PA의 가자기구 통치안을 순순히 받아들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

    집권 여당 리쿠드당의 아리엘 칼네르 의원을 비롯해 반(反)아랍 극우 정당 오츠마 예후디트당의 아미하이 엘리야후 문화유산장관 등 이스라엘 극우파 인사는 가자지구 주민들을 이집트 시나이반도로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스라엘 극우세력은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에 반대하면서 가자지구는 물론, 요르단강 서안까지 합병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민심 잃은 PA

    가자지구를 과도기적으로 통치할 국가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 PA의 가자지구 통치 전까지 가자지구 재건을 비롯한 과도통치가 불가피하지만 이를 맡을 국가가 나오지 않고 있다. 윌리엄 번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최근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을 만나 가지지구에 대한 과도통치를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 주요 아랍 국가도 모두 미국 측 제의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가자지구 치안 공백을 메우기 위해 다국적 평화유지군을 구성해 투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미국과 유럽 국가, 아랍 국가 등이 참여하는 방안인데 실현 가능성이 적다는 말이 나온다. 다국적 평화유지군에 참여할 국가가 선뜻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미국 내에서도 미군 투입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PA가 가자지구를 통치할 능력이 없고 주민들로부터 전폭적 지지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PA는 부정부패와 행정력 부재로 요르단강 서안에서조차 민심을 잃었다. PA는 그동안 집권 여당인 파타당이 이끌어왔다. PLO의 중요 정당으로서 1965년 아라파트가 창설한 파타당은 부패, 권력투쟁 등으로 제대로 통치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2006년 1월 25일 총선에서 132석 중 45석을 얻어 하마스에 집권당 자리를 내줬다.

    아랍어로 ‘정복’이라는 뜻의 파타당은 PA를 독단적으로 운영하는 와중에 외국의 엄청난 지원금을 빼돌려 ‘부패의 온상’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PA는 정부 운영을 위한 재정의 상당 부분을 국제사회 지원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테드 싱어 전 미국 CIA 중동 담당관은 “가자지구에서 쫓겨난 PA는 신뢰성이 부족하고 요르단강 서안지구도 겨우 통치하는 형편”이라고 지적했다.

    “무력으로 팔레스타인 독립 불가능”

    10월 8일 가자지구 일대가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받고 있다. [뉴시스]

    10월 8일 가자지구 일대가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받고 있다. [뉴시스]

    압바스 PA 수반은 87세로 고령인 데다, 통치 역량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들어왔고 부정부패, 실정, 이스라엘과 협력 등으로 팔레스타인 주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서안지구에서 PA는 미약한 권력을 보유했을 뿐이며, 특히 압바스는 부패한 지도자로 인기가 없다”고 지적했다.

    압바스는 팔레스타인 역사에서 아라파트와 함께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라파트와 PLO를 창설했고, 오슬로 협정을 만드는 등 2인자로 활동했다. 1935년 영국의 위임통치를 받던 팔레스타인 제파트(사파드)에서 태어난 그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시리아로 이주했다. 시리아 다마스쿠스대에서 법학을 공부한 뒤 옛 소련으로 유학해 모스크바 루뭄바대에서 이스라엘 시오니즘과 독일 나치즘의 관계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등 팔레스타인 정치인 가운데 이스라엘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다.

    압바스는 아라파트와 달리 대화 및 협상이 가능한 실용주의 지도자라는 평을 받았다. 실제로 압바스는 “힘의 균형이 우리에게 유리하지 않기 때문에 무력으로 팔레스타인이 독립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평화가 유일한 선택이며 무장투쟁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는 소신을 피력해왔다.

    압바스는 가자지구 통치와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에 나설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는 11월 10일 아라파트 사망 19주기를 맞아 연설을 통해 “PA가 가자지구를 다시 장악할 용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정부는 일단 압바스 수반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이스라엘, 주요 아랍 국가들과 가자지구 미래를 계속 논의해갈 방침이다. 가자지구 주민을 대표할 수 있는 신뢰받는 정치세력이 부재하는 한 전쟁이 끝나더라도 가자지구 평화는 장담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