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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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같은 반려묘 ‘합사’ 피하려면

[최인영의 멍냥대백과] 반려묘는 ‘영역 동물’, 일주일 시간 두고 서서히 친해지게 해야

  • 최인영 러브펫동물병원장

    입력2024-06-27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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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반려동물에게도 ‘올바른 양육’이 필요하다. 건강관리부터 문제 행동 교정까지 반려동물을 잘 기르기 위해 알아야 할 지식은 무궁무진하다.

    • 반려동물행동의학 전문가인 최인영 수의사가 ‘멍냥이’ 양육에 관한 모든 것을 알려준다.

    동물병원에서 진료하다 보면 반려묘에게 새 친구 혹은 동생을 만들어주려는 보호자를 많이 만납니다. 대부분 기존 반려묘와 새로 입양한 반려묘가 금방 친해져 즐겁게 뛰놀 거라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하는데요. 사실 반려묘를 같이 사육하는 일(합사)은 그리 간단치 않습니다. 서로 ‘하악’거리면서 전쟁 같은 합사를 치르는 경우가 더 많죠. 영역 의식이 강한 반려묘 특성상 상대를 반기기보다 적개심을 드러내는 게 더 일반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새 반려묘 입양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냥 포기하는 게 맞을까요.

    반려묘는 영역 의식이 강해 새로운 반려묘 친구나 동생을 반기기보다 적개심을 드러낸다. [GettyImages]

    반려묘는 영역 의식이 강해 새로운 반려묘 친구나 동생을 반기기보다 적개심을 드러낸다. [GettyImages]

    1단계는 새 반려묘 은신처 만들기

    그렇지 않습니다. 새로운 반려묘 친구 혹은 동생을 만들어주는 건 기존 반려묘에게 여러 가지 면에서 좋습니다. 우선 보호자가 바쁜 업무나 일상생활로 자리를 비울 때 반려묘에게 의지할 존재가 생깁니다. 통념과 달리 반려묘도 반려견처럼 혼자 보내는 시간을 힘들어 합니다. 하루 종일 혼자인 날이 많아지면 반려견처럼 분리불안이 생기기도 하죠. 이때 반려묘에게 친구나 동생이 있으면 혼자서는 소심하게만 탐색하던 집 안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함께 뛰어다니면서 노는 등 행복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습니다. 물론 보호자도 반려묘들과 시간을 더 보내기 위해 노력해야겠지만요.

    합사를 진행할 땐 반려묘가 ‘영역 동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반려묘는 자신의 공간과 영역을 중시하는데요. 합사는 결국 그것을 침범하고 침범받는 과정이기 때문에 두 반려묘 모두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보호자는 두 반려묘가 한 번에 한 가지 감각씩 익숙해지도록 천천히 서로를 만나게 해줘야 합니다.

    방 하나를 비워 새 반려묘를 위한 은신처를 마련하는 게 그 첫 단추입니다. 기존 반려묘 눈에 띄지 않게 쉴 곳을 만들어주면 새 반려묘가 마음 편히 집에 적응하는 것은 물론, 기존 반려묘도 자기 영역 전체를 침범당했다고 느끼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은신처는 되도록 조용한 게 좋고, 푹신한 쿠션이나 담요가 깔린 상자를 여러 개 배치해 숨을 곳이 많다는 느낌을 주면 더욱 좋습니다.

    새로 입양한 반려묘를 이동장에 넣어 집에 오면 보호자는 아무 일 없다는 듯 태연하게 은신처로 새 반려묘를 데려가야 합니다. 구석진 곳에 이동장을 내려놓은 뒤 바로 앞에 간식과 사료를 놔두고 나가면 반려묘가 그것들을 먹으면서 방 구석구석을 탐색할 겁니다. 이때 주의해야 할 건 은신처 밖에 있는 기존 반려묘인데요. 새 반려묘가 왔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문을 긁는 행동을 할 수 있는데, 보호자가 장난감 등으로 관심을 돌려줘야 합니다. 이렇게 약 일주일간 보호자가 기존 반려묘 몰래 새 반려묘를 돌보고, 각자 다른 공간에서 활동하게 해야 평화로운 합사가 가능합니다.



    이 일주일간 보호자는 새 면장갑 또는 양말에 두 반려묘 체취를 묻힌 뒤 이들이 서로의 냄새를 맡게끔 해줘야 합니다. 면장갑이나 양말을 손에 끼우고 반려묘 머리, 등을 쓰다듬으면 자연스럽게 체취가 묻어나는데요. 이를 기존 반려묘의 공간에, 그리고 새 반려묘의 은신처에 살짝 놔둠으로써 위협을 느끼지 않는 상황에서 서로의 냄새를 알아가게 하는 거죠. 체취를 묻힌 면장갑이나 양말을 매일매일 놔둬서 점점 익숙해지게 하는 게 좋고, 이때 반려묘가 냄새를 맡고도 ‘하악’ 하며 공격성을 보이지 않는다면 보상으로 선호하는 간식을 지급해 긍정적 행동을 강화하도록 합니다.

    반려묘가 부정적 반응을 나타내는 경우 자연스럽게 넘어가면 됩니다. 그러곤 반려묘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을 때까지 체취 교환용 면장갑이나 양말을 계속 놔둡니다. 어느 정도 서로의 냄새에 익숙해졌다 싶으면 기존 반려묘가 없을 때 새 반려묘로 하여금 은신처 밖을 돌아다니게 하고 가구 등에 자기 냄새를 묻히게 합니다. 새 반려묘가 은신처로 돌아가고 기존 반려묘가 밖으로 나와서도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는다면 그때부턴 은신처로 쓰던 방문을 열어두고 서로 천천히 인사하게 하면 되는데요. 이때 간식 등으로 긴장 상황을 완화하는 게 좋습니다. 만약 문을 완전히 열어두는 게 걱정된다면 울타리나 안전문 사이로 1차 인사를 하게 하고, 괜찮으면 2차로 대면하게 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혹시 모를 몸싸움에 대비해 반려묘들을 안전하게 분리할 수 있는 두꺼운 수건 등도 준비하길 권합니다.

    화장실·창문 각자 쓰게 하는 게 바람직

    반려묘들이 서로 친해지고 집 안 여러 장소를 공유하기 시작했다고 해도 반려묘를 위한 은신처는 한동안 유지해야 합니다. 잘 지내다가 갑자기 싸움이 시작돼 대면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밟아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기 때문입니다. 또 두 반려묘 관계가 돈독해져도 자기 공간을 갖고 싶어 하는 반려묘의 특성은 계속 배려해주는 게 좋습니다. 화장실을 서로 다른 곳에 마련해 가장 취약한 상태일 때 한 공간을 함께 쓰지 않아도 되도록 해주는 게 그중 하나입니다. 또 반려묘는 평소 창밖 구경을 즐기는데요. 두 반려묘가 한 창문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도록 가운데에 가림막을 설치하거나 접근성이 편한 다른 창문을 하나 더 만들어주는 걸 추천합니다.

    반려묘 합사는 보호자가 대면 과정을 얼마나 잘 진행하느냐에 성패가 달렸습니다. 이때 두 반려묘의 신뢰 관계가 아주 잘 형성되기도 하고, 반대로 서로에게 엄청난 반감을 가지며 철천지원수가 되기도 하죠. 따라서 보호자가 다짜고짜 낯선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와 거실 한복판에 내려놓고 기존 반려묘에게 인사시켜 전쟁을 자초하는 일만은 없어야겠습니다.

    최인영 수의사는… 
    2003년부터 수의사로 활동한 반려동물 행동학 전문가다. 현재 서울 영등포구 러브펫동물병원 대표원장, 서울시수의사회 이사를 맡고 있으며 대표 저서로 ‘어서 와 반려견은 처음이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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