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45

..

동물 구조·보호에 특별히 노력 기울이는 청주동물원

[이학범의 펫폴리] 멸종위기종·천연기념물 동물 보호하는 ‘한국판 생크추어리’

  • 이학범 수의사·데일리벳 대표

    입력2024-06-22 09: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 반려동물 인구 1500만 시대. 반려동물과 행복한 동행을 위해 관련법 및 제도가 점점 진화하고 있다. ‘멍냥 집사’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반려동물(pet)+정책(policy)’을 이학범 수의사가 알기 쉽게 정리해준다.
    얼마 전 다큐멘터리 영화 ‘생츄어리‘(6월 12일 개봉)를 봤습니다. ‘생츄어리’를 만든 왕민철 감독은 앞서 동물원의 생생한 모습을 다룬 영화 ‘동물, 원’으로 한 차례 화제를 모았는데요. 이번엔 그 후속작 격인 ‘생츄어리’를 통해 “한국에도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시설 설립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생츄어리’ 포스터. [GETTYIMAGES]

    다큐멘터리 영화 ‘생츄어리’ 포스터. [GETTYIMAGES]

    2021년 사육곰 산업 종식 합의

    ‘생츄어리’(Sanctuary·생크추어리)는 ‘성역’, ‘피난처’라는 뜻의 영단어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동물 보호시설을 가리킵니다. 우리에겐 생소한 개념이지만 해외에는 곰 생츄어리, 돌고래 생츄어리 등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는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생츄어리가 여럿 존재하죠. 한국에서도 생츄어리 설립을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으나 아직은 한 곳도 없습니다.

    왕 감독은 전작 ‘동물, 원’에서 2015~2018년 청주동물원 야생동물과 그들을 돌보는 수의사, 사육사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이번 영화에선 영역을 넓혀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와 야생동물 구조 현장, 전국 사육곰 농장을 누볐는데요. 사육곰 농장까지 방문한 이유는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라는 한 단체가 곰 생츄어리를 한국에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육곰 산업은 1981년 정부가 웅담 채취를 목적으로 곰 수입을 장려하며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1993년 한국이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가입하면서 곰 수입이 금지됐고 웅담 수요도 점차 줄어들면서 사양길에 접어들었죠. 특히 2014년부터 3년여 동안 전국 사육곰을 대상으로 중성화수술을 시행해 더는 번식 및 개체수 증가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여전히 300여 마리 사육곰이 전국에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정부는 2021년 농가, 시민단체, 전문가가 참여하는 민관협의체를 구성한 끝에 사육곰 산업 종식에 합의했습니다. 사육곰 모두 중성화돼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한국에서 사육곰은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다만 농가가 사육을 그만두면 사육곰 300여 마리는 당장 갈 곳이 없어집니다. 환경부가 전남 구례와 충남 서천에 보호시설을 만들고 있지만 구례 50마리, 서천 70~80마리 규모라 전부 수용하기엔 역부족입니다.



    이에 공영동물원인 청주동물원이 곰 생츄어리를 만들고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청주동물원은 멸종위기 동물을 위한 ‘서식지외 보존기관’으로 지정돼 있는데요. 국내 한 실내 동물원에 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앙상하게 방치됐던 일명 갈비 사자 ‘바람이’를 구조해 보호하고 있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곰 생츄어리 설립을 위한 청주동물원의 노력은 영화 ‘생츄어리’에도 잘 담겨 있습니다.

    “생물다양성 위한 노아의 방주”

    다만 청주동물원은 ‘동물원’이라는 이유로 여러 오해를 받고 있습니다. 흔히 동물원 하면 동물을 가둬놓고 구경하는 오락시설로 생각하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청주동물원은 오락 기능보다 ‘교육’ ‘종(種) 보전’ ‘연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청주동물원 소속 김정호 수의사는 “청주동물원은 동물 수를 점점 줄여나가고 있으며, 단순 전시를 목적으로 외부에서 동물을 돈 주고 사오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바람이처럼 다른 동물원에서 제대로 관리받지 못했거나 자연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동물만 데려와 종 보전이라는 현대 동물원의 역할을 수행하고, 관람객에게 해당 동물의 스토리를 소개하면서 “왜 야생동물을 보호해야 하는지” 메시지를 전달하는 교육 기능만 하는 겁니다.

    일각에선 동물원에 대해 “왜 불쌍한 동물을 가둬두고 키우느냐” “동물을 모두 자연으로 돌려보내라”라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어떤 취지에서 그런 얘기를 하는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동물원이 없다면 안락사됐거나, 자연에서 생존하지 못해 죽었거나, 멸종했을 동물도 적잖습니다. 실제로 청주동물원에는 CITES종, 국내멸종위기종, 천연기념물 동물이 상당히 많습니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생물다양성재단 대표)는 “생물다양성 차원에서 동물원처럼 중요한 곳은 없다”며 “동물원은 멸종위기종, 생물다양성을 위한 노아의 방주”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청주동물원은 최근 환경부로부터 국내 제1호 거점동물원으로 지정됐습니다. 거점동물원은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동물원수족관법)이 개정되면서 새롭게 도입된 제도로, 정부 예산 지원을 받아 △교육·홍보 △동물 질병 및 안전관리 지원 △종 보전 등 역할을 수행합니다. 거점동물원 지정으로 청주동물원은 기존에 해오던 역할을 강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이제 동물원 하면 오락시설이 아닌 동물 관련 교육, 종 보전, 연구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부족한 곳도 많고 없어져야 할 곳도 분명히 있지만, 여러 동물원이 현대 동물원의 기능을 잘 수행하기 위해 조금씩 노력하고 있습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