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지에서 친절하고 좋은 현지인을 만나는 이유는 어느 나라든 돈을 쓰러 온 사람에게 친절하기 때문이다. GETTYIMAGES
돈 쓰는 사람과 돈 버는 사람이 보는 세상
지인은 여행자로 그 나라에 갔다. 즉 돈을 쓰려고 그 나라에 갔다. 사람들은, 그리고 사회는 돈을 쓰러 온 사람에게 친절하다. 이 나라만의 얘기가 아니다. 세계 어느 나라든 돈을 쓰러 온 사람에게 친절하다. 여행자들이 항상 여행지를 칭찬하고 현지인을 좋다고 평가하는 건 괜히 그러는 게 아니다. 여행자는 돈을 쓰는 사람이다. 돈을 쓰는 사람에게 사회는 친절하고 좋은 곳이다.만약 지인이 돈을 쓰는 게 아니라 벌려고 갔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그 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친절했을까. 그럴 리 없다. 돈을 쓰러 온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돈을 벌려고 온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다르다. 그래서 돈을 쓰는 사람이 보는 세상과 돈을 버는 사람이 보는 세상은 다르다. 돈을 쓰는 사람에게 세상은 친절하고 좋은 곳이다. 하지만 돈을 버는 사람에게는 결코 만만치가 않다.
1세대 웹툰으로 불리는 ‘마린블루스’에는 젊고 외모가 뛰어난 사람이 보는 세상과 못생기고 가진 것 없는 사람이 보는 세상이 다르다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젊고 외모가 뛰어난 사람이 만나는 이들은 모두 친절하다. 어려움이 있으면 도와주려 한다. 이 사람이 보기에 세상은 살 만한 곳이다. 반면 못생기고 가진 것 없는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이는 물론, 평소 친절하게 대해주는 이도 별로 없다. 두 사람은 같은 사회, 환경에 놓여 있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세계에 산다.
비슷한 맥락에서 돈을 쓰는 사람이 보는 세상과 돈을 버는 사람이 보는 세상도 다르다. 여행자는 돈을 쓰러 온 사람이다. 그러니 여행자가 만나는 현지인은 대부분 친절할 것이다. 여행자가 현지인들이 친절하다고 칭찬하는 건 거짓말이나 오해가 아니다. 현지인은 여행자에게 정말 친절하게 대한다. 하지만 그 친절이 현지인의 본성이라고 생각해선 곤란하다. 만약 여행자가 현지에서 돈을 벌려고 한다면 그때도 친절하고 미소 띤 얼굴을 보여줄까. 그때는 태도가 완전히 돌변할 것이다. 자기 영역에 돈을 벌려고 온 외부인에게 친절할 사람은 없다.
멀리 갈 것 없이 동네 카페만 해도 그렇다. 카페 주인은 참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다. 언제 찾아가든 웃는 낯으로 반겨준다. 그런데 이건 손님으로 카페를 방문할 때뿐이다. 만약 내가 그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는 게 아니라 “아르바이트를 하러 왔다”고 하면 표정, 말투부터 달라질 테다. 적어도 친절하게 웃는 모습만 보여주지는 않을 것이다. 곧장 말을 놓고 말투를 명령조로 달리 할 수도 있다. 달라지는 것은 카페 주인만이 아니다. 손님으로 갔다면 카페 주인의 불친절한 대응에 불만을 드러냈을 테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면 카페 주인에 대해 아무런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다. 돈을 쓰는 사람은 불평해도 돈을 버는 사람은 불평하지 않는다.
돈 버는 청장년보다 노인이 행복한 이유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다. 직장은 돈을 벌려고 다니는 곳이다. 상사, 거래처 기업이 갑질을 한다. 말도 안 되는 부당한 요구를 해도 어느 정도 참고 받아들여야 한다. 돈을 벌려고 다니는 곳이기 때문이다. 회사도 돈을 쓰는 고객에게는 친절하고 고객 만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회사에서 돈을 벌어가는 직원이나 하청업체에는 그렇지 않다.돈을 쓰는 사람은 어디를 가든 친절한 이들을 만나고 대접받을 수 있다. 하지만 돈을 버는 사람은 어디를 가든 이것저것 명령하는(심지어 무례하게) 이들을 만나고 큰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 놓인다.
사람의 행복도와 관련해 참 이상하다고 생각한 연구 결과들이 있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면 행복도가 낮아질 것 같다. 아직 기운이 넘치는 청장년은 행복도가 높고, 기운이 없는 데다 죽을 날이 가까워지는 노인은 행복도가 낮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행복도 조사는 항상 노인이 행복도가 높은 것으로 나온다. 아주 어릴 때는 행복도가 높다. 그러다 성년이 되면서 행복도가 낮아지고 한창 사회생활을 하는 장년 때 행복도가 가장 낮다. 그러다 노인이 되면 다시 높아진다. 전 세계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렇게 노인이 됐을 때 행복도가 다시 높아지는 원인에 대해서는 ‘인생을 좀 알게 돼서’ ‘환경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게 돼서’ 등이 거론된다. 즉 삶이 성숙해 행복도가 높아진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돈을 쓰는 사람과 돈을 버는 사람이라는 관점에서는 다른 설명이 가능하다. 노인이 되면 은퇴하고 더는 돈을 벌지 않는다. 있는 돈을 쓰기만 하는 생활을 한다. 자기가 저축한 돈을 사용하든, 연금을 받아서 생활하든 어쨌든 돈을 벌기 위한 활동은 하지 않고 쓰는 활동만 한다. 돈을 쓰는 사람이 보는 세상은 어렵지 않다. 돈이 부족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쓰기만 하는 생활은 최소한 돈을 벌려고 할 때보다는 스트레스가 적다. 노인층의 행복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유년기·청소년기에도 돈을 쓰기만 한다. 행복도가 높다. 20대 청년의 경우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해 돈을 벌지 않는 상황이더라도 앞으로 돈을 벌 것에 대해 고민한다. 행복도가 한 차례 꺾일 수밖에 없다. 좀 더 나이가 들어 본격적으로 돈을 벌기 시작하면 스트레스가 커지면서 행복도가 한층 낮아진다. 그러다 더 나이가 들어 은퇴하면, 즉 더는 돈을 벌지 않고 돈을 쓰기만 하면 그때부터 다시 행복도가 올라간다. 돈을 쓰는 사람이냐, 돈을 버는 사람이냐를 기준으로 바라보면 연령에 따라 행복도가 달라지는 이유, 특히 노인이 됐을 때 행복도가 높아지는 이유를 비로소 제대로 설명할 수 있다.
돈을 버는 사람이라고 해서 항상 돈을 벌기만 하는 건 아니다. 돈을 버는 만큼 쓰기도 한다. 청장년은 돈 벌기와 돈 쓰기를 동시에 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언제 불평하고 삶의 어려움을 얘기하나. 돈을 버는 일을 할 때다. 그러면 언제 행복과 삶의 소소한 즐거움을 얘기하나.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갈 때, 맛집에서 식사할 때, 훌쩍 여행을 떠날 때, 즉 돈을 쓰는 일을 할 때다. 나를 곤란하고 힘들게 하는 사람은 언제 만나나. 보통 돈을 벌 때다. 친절하고 좋은 사람은 언제 만나나. 주로 돈을 쓸 때다. 세상이 나에게 빗장을 걸고 무시하는 것은 언제인가. 돈을 벌 때다. 세상이 나를 환영하고 격려해주는 것은 언제인가. 돈을 쓸 때다.
하루빨리 돈 모아 주로 ‘쓰는 사람’ 되자
이 사회는 좋은 곳인가, 험한 곳인가. 사람들이 나에게 친절한가, 아니면 나를 무시하나. 이건 절대적으로 정해지는 부분이 아니다. 내가 어떤 상태냐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돈을 벌려고 하면 세상은 험한 곳이다.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고 핍박하고 큰소리친다. 하지만 내가 돈을 쓰려고 하면 세상은 좋은 곳이 된다. 사람들이 항상 나를 높여주고 친절하게 대한다. 모든 곳에서 손님이고 언제든 돈을 낼 준비가 돼 있다면 나를 환영한다.세상과 사회에 대해,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갖는 게 좋다고들 한다. 그래야 인격적으로 더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사회와 다른 이들을 좋게 생각할 수 있을까. 간단하다. 돈을 쓰는 사람이 되면 된다. 돈을 쓰는 사람이 되면 좋은 이들을 많이 만날 수 있고,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하루빨리 돈을 많이 벌어서 주로 돈을 쓰는 사람이 돼야 한다. 돈을 버는 시간을 줄이고 쓰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 긍정적인 사람이 되는 주요한 방법이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