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손해볼 일은 없으니 믿고 투자하세요.”
은퇴한 고령자는 쉽게 금융사기 타깃이 되곤 한다. 한국투자자보호재단이 2010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금융사기를 당했거나 당할 뻔했다’고 응답한 사람 가운데 60대가 27.9%로 다른 연령대보다 많았다. 아무래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모아둔 현금이나 퇴직금 같은 금융자산은 많은 반면, 금융시장 변화에는 둔감한 탓이 클 것이다. 여기에 월급을 대신할 새로운 소득을 창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다급함까지 더해지면 금융사기 표적이 되기 십상이다.
요즘은 금융사기라는 말 대신 ‘금융학대(Financial Abuse)’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는 남의 재산이나 돈을 불법적으로 착취 또는 횡령하는 행위뿐 아니라, 금융회사나 판매인의 부당행위와 불완전 판매까지 포함하는 폭넓은 개념이다. 금융학대 피해자는 대부분 은퇴한 고령자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금융학대에 관한 현황 자료가 없지만, 미국 투자자보호기구(Investor Protection Trust)가 2010년 조사한 내용을 보면 ‘본인이나 배우자가 부적절한 투자, 비합리적으로 높은 금융서비스 수수료, 노골적 사기로 금전적 피해를 본 적 있느냐’는 질문에 65세 이상 응답자 가운데 20%가 ‘그렇다’고 답했다. 65세 이상 부모를 둔 자녀 10명 중 4명은 그들 ‘부모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개인 금융자산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감소하고 있거나 감소할 것’에 대해 ‘매우’또는 ‘다소’ 걱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금보장에 고금리 확정?
은퇴자를 대상으로 한 금융학대 수법 중 가장 흔한 게 “원금은 절대 손해보지 않고 확정적으로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처럼 높은 수익 뒤에는 거기에 상응하는 위험이 도사리게 마련이다. 얼마 전 영업정지된 저축은행의 후순위채권에 투자했다가 피해를 입은 이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본래 후순위채권이란 발행한 기업이 부도가 났을 때 다른 채권자에 비해 변제 우선순위가 뒤로 밀리는 채권이다. 그만큼 원금을 떼일 위험이 높기 때문에 선순위채권에 비해 금리가 높다. 높은 금리에 현혹된 나머지 위험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고령 투자자들이 낭패를 당한 것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시대에 별다른 소득 없이 이자로만 생활하는 고령 은퇴자로서는 고금리 유혹을 뿌리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투자에 따른 책임은 투자자에게 귀속된다’는 원칙을 들이대면 후순위채권의 높은 수익에 혹해 위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투자자 책임이 크다고 하겠다. 하지만 이를 전적으로 투자자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지난해 영국 금융감독청(FSA)은 고령자에게 적합하지 않은 금융상품을 판매했다는 이유로 세계적인 금융회사 HSBC에 우리나라 돈으로 700억 원이 넘는 벌금을 부과했다. HSBC 자회사인 NHFA가 2005∼2010년 고객 248명에게 총 2억8500만 파운드 상당의 장기금융상품을 판매했는데, FSA는 그중 87%를 부적절한 판매로 봤다. 해당 금융상품은 5년간 투자하면 요양비와 의료비를 수령할 수 있도록 설계됐는데, 가입고객 평균연령이 83세로 나이가 너무 많은 데다 이미 장기요양을 받는 고령자가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기대수명이 투자기간보다 짧은 고객에게 이 상품을 판매하고 투자 초기 치료비나 요양비로 많은 자금이 인출되도록 설계해 투자원금이 급감하게 만든 것이다.
학연, 지연 통한 투자 권유가 더 위험
그렇다면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금융학대 문제를 해결할 좋은 방법은 없을까. 고령자로 하여금 위험한 금융상품에 투자하지 못하게 하면 이 같은 문제는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이다. 수명이 늘어나면서 노후 생활기간도 계속 늘어나는 마당에 노후자금을 ‘안전하게’ 저금리 금융상품에만 맡겨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욱이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 약 712만 명)의 대량 퇴직으로 고령 투자자가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을 감안한다면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 말고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최근 금융감독원이 주가연계증권(ELS)에 투자하는 고령자를 보호하려고 내놓은 대책을 참고할 만하다. ELS란 주가 흐름과 연계해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높은 금리를 보장하는 금융상품이다. 하지만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최근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ELS 판매량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데, 지난 1년간(2011년 7월~2012년 6월) 판매된 ELS 관련 상품은 24조4000억 원에 이르고, 그중 65세 이상 고령자에게 판매된 것이 4조2000억 원 상당이다. 상대적으로 금융지식이 낮은 고령자가 ELS의 잠재적 위험을 간과한 채 단순히 고수익채권 정도로만 알고 투자했다면 저축은행의 후순위채권처럼 큰 사회문제로 비화할 우려가 있다.
이에 금융감독원이 ELS 고령 투자자 보호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내년 1분기부터 각 금융회사가 시행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 개선안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투자숙려기간’ 도입이다. 고령 투자자의 경우 상담 당일 상품에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 이상 생각할 기회를 갖고 다음 날 가입하도록 권하는 방법이다. 특히 초고령자(80세 이상)의 경우 단독으로 투자했다가 피해를 입는 것을 막기 위해 ELS 가입 시 가족 또는 후견인이 동석하거나 전화통화를 하는 ‘초고령자 가족 조력제도’를 도입했다. 그뿐 아니라 투자 경험이 없는 고령 투자자를 대상으로 상품을 판매할 때는 영업점장에게 확인을 받도록 했다. 이 같은 제도를 잘만 활용하면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금융학대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도가 아무리 좋아도 스스로 금융지식을 함양하고 투자위험에 대비하는 것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먼저 잘 모르는 사람에게서 갑작스러운 투자 권유를 받았다면 일단 “관심 없다”거나 “다른 사람과 상의한 후 다시 연락하겠다”며 대화를 끝내는 것이 좋다. 학연이나 지연을 통해 투자 권유를 받으면 더 조심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금융사기 피해자의 70%가 친구, 친척, 동료 또는 이웃이 추천한 상품에 투자했다가 손해를 봤다.
모든 계약 내용은 반드시 문서로 남겨야 한다. 합법적인 투자라도 ‘수익보장’이라는 구두약속만으로는 법 보호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서면으로 확인받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투자대상과 위험에 대해 명확히 알지 못하는 금융상품에는 가입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은퇴한 고령자는 쉽게 금융사기 타깃이 되곤 한다. 한국투자자보호재단이 2010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금융사기를 당했거나 당할 뻔했다’고 응답한 사람 가운데 60대가 27.9%로 다른 연령대보다 많았다. 아무래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모아둔 현금이나 퇴직금 같은 금융자산은 많은 반면, 금융시장 변화에는 둔감한 탓이 클 것이다. 여기에 월급을 대신할 새로운 소득을 창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다급함까지 더해지면 금융사기 표적이 되기 십상이다.
요즘은 금융사기라는 말 대신 ‘금융학대(Financial Abuse)’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는 남의 재산이나 돈을 불법적으로 착취 또는 횡령하는 행위뿐 아니라, 금융회사나 판매인의 부당행위와 불완전 판매까지 포함하는 폭넓은 개념이다. 금융학대 피해자는 대부분 은퇴한 고령자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금융학대에 관한 현황 자료가 없지만, 미국 투자자보호기구(Investor Protection Trust)가 2010년 조사한 내용을 보면 ‘본인이나 배우자가 부적절한 투자, 비합리적으로 높은 금융서비스 수수료, 노골적 사기로 금전적 피해를 본 적 있느냐’는 질문에 65세 이상 응답자 가운데 20%가 ‘그렇다’고 답했다. 65세 이상 부모를 둔 자녀 10명 중 4명은 그들 ‘부모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개인 금융자산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감소하고 있거나 감소할 것’에 대해 ‘매우’또는 ‘다소’ 걱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금보장에 고금리 확정?
은퇴자를 대상으로 한 금융학대 수법 중 가장 흔한 게 “원금은 절대 손해보지 않고 확정적으로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처럼 높은 수익 뒤에는 거기에 상응하는 위험이 도사리게 마련이다. 얼마 전 영업정지된 저축은행의 후순위채권에 투자했다가 피해를 입은 이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본래 후순위채권이란 발행한 기업이 부도가 났을 때 다른 채권자에 비해 변제 우선순위가 뒤로 밀리는 채권이다. 그만큼 원금을 떼일 위험이 높기 때문에 선순위채권에 비해 금리가 높다. 높은 금리에 현혹된 나머지 위험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고령 투자자들이 낭패를 당한 것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시대에 별다른 소득 없이 이자로만 생활하는 고령 은퇴자로서는 고금리 유혹을 뿌리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투자에 따른 책임은 투자자에게 귀속된다’는 원칙을 들이대면 후순위채권의 높은 수익에 혹해 위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투자자 책임이 크다고 하겠다. 하지만 이를 전적으로 투자자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지난해 영국 금융감독청(FSA)은 고령자에게 적합하지 않은 금융상품을 판매했다는 이유로 세계적인 금융회사 HSBC에 우리나라 돈으로 700억 원이 넘는 벌금을 부과했다. HSBC 자회사인 NHFA가 2005∼2010년 고객 248명에게 총 2억8500만 파운드 상당의 장기금융상품을 판매했는데, FSA는 그중 87%를 부적절한 판매로 봤다. 해당 금융상품은 5년간 투자하면 요양비와 의료비를 수령할 수 있도록 설계됐는데, 가입고객 평균연령이 83세로 나이가 너무 많은 데다 이미 장기요양을 받는 고령자가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기대수명이 투자기간보다 짧은 고객에게 이 상품을 판매하고 투자 초기 치료비나 요양비로 많은 자금이 인출되도록 설계해 투자원금이 급감하게 만든 것이다.
학연, 지연 통한 투자 권유가 더 위험
잠재적 위험을 간과하고 ELS에 ‘묻지마’ 식으로 투자했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금융감독원이 주가연계증권(ELS)에 투자하는 고령자를 보호하려고 내놓은 대책을 참고할 만하다. ELS란 주가 흐름과 연계해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높은 금리를 보장하는 금융상품이다. 하지만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최근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ELS 판매량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데, 지난 1년간(2011년 7월~2012년 6월) 판매된 ELS 관련 상품은 24조4000억 원에 이르고, 그중 65세 이상 고령자에게 판매된 것이 4조2000억 원 상당이다. 상대적으로 금융지식이 낮은 고령자가 ELS의 잠재적 위험을 간과한 채 단순히 고수익채권 정도로만 알고 투자했다면 저축은행의 후순위채권처럼 큰 사회문제로 비화할 우려가 있다.
이에 금융감독원이 ELS 고령 투자자 보호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내년 1분기부터 각 금융회사가 시행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 개선안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투자숙려기간’ 도입이다. 고령 투자자의 경우 상담 당일 상품에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 이상 생각할 기회를 갖고 다음 날 가입하도록 권하는 방법이다. 특히 초고령자(80세 이상)의 경우 단독으로 투자했다가 피해를 입는 것을 막기 위해 ELS 가입 시 가족 또는 후견인이 동석하거나 전화통화를 하는 ‘초고령자 가족 조력제도’를 도입했다. 그뿐 아니라 투자 경험이 없는 고령 투자자를 대상으로 상품을 판매할 때는 영업점장에게 확인을 받도록 했다. 이 같은 제도를 잘만 활용하면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금융학대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도가 아무리 좋아도 스스로 금융지식을 함양하고 투자위험에 대비하는 것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먼저 잘 모르는 사람에게서 갑작스러운 투자 권유를 받았다면 일단 “관심 없다”거나 “다른 사람과 상의한 후 다시 연락하겠다”며 대화를 끝내는 것이 좋다. 학연이나 지연을 통해 투자 권유를 받으면 더 조심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금융사기 피해자의 70%가 친구, 친척, 동료 또는 이웃이 추천한 상품에 투자했다가 손해를 봤다.
모든 계약 내용은 반드시 문서로 남겨야 한다. 합법적인 투자라도 ‘수익보장’이라는 구두약속만으로는 법 보호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서면으로 확인받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투자대상과 위험에 대해 명확히 알지 못하는 금융상품에는 가입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