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 암호화폐, 누명 벗겨줄 友軍과 조우

페이스북 암호화폐 도전에 시장 활력

국내선 ‘사기’ 주홍글씨 지워낼 물꼬 트여

  • meditor@donga.com

    입력2019-07-08 10: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뉴스1]

    [뉴스1]

    지난해 1월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암호화폐 투자에 대한 규제안을 내놓겠다고 발표하자 암호화폐 가격이 폭락했다. 개당 2500만 원 선을 넘보던 비트코인은 박 장관의 발언 직후 1900만 원대로 떨어졌고, 올해 3월에는 개당 300만~400만 원 선까지 하락했다. 가격 폭락으로 시장에 대한 신뢰도 주저앉았다. 2016년 암호화폐 커뮤니티에서 유행한 ‘존버(오래 버티면)는 승리한다’는 표현은 조롱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최근 암호화폐시장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6월 대장주인 비트코인은 개당 1200만~1600만 원대를 회복했다. 전성기에 비하면 미흡하지만, 3개월 전과 비교하면 가격이 크게 올랐다. 당연히 다른 암호화폐들의 가격도 빠르게 상승하고 있는 상황. 일각에서는 그간 암호화폐에 대한 오해가 풀려 원 가격을 찾아가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여기에다 페이스북이 블록체인 프로젝트 ‘리브라’를 발표하자 투자자의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믿지 못할 화폐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투자 자산으로 인식의 반전도 일어날 조짐이다. 암호화폐가 자신에게 새겨진 주홍글씨를 지워내고 국내에서 안전자산 지위에 오를지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서로 싸우다 스스로 갉아먹은 신뢰

    블록체인업계는 국내 투자자들이 암호화폐에 신뢰를 보이지 않는 원인을 가격에서 찾는다. 업계 관계자는 “보통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기술로 만든 화폐라고 하면 기술에 따라 가격이 움직이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일부 대형 블록체인 프로젝트에서 새로운 기술 도입과는 무관하게 내부 권력 다툼이나 세력의 개입으로 가격이 요동치니, 기술과 시장에 대한 불신이 생기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력 다툼의 대표적인 예가 암호화폐시장 규모 4위였던 비트코인 캐시(BCH) 프로젝트의 갈등이다. 그 발단은 ‘Atomic Swap’라는 프로그램이었다. 이는 암호화폐거래소를 거치지 않고도 종류가 다른 암호화폐를 교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 도입 여부를 두고 시장에서 세력이 둘로 갈라져 패권 경쟁을 벌였다. 비트코인 캐시 소유자들은 업그레이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ABC 진영과 비트코인의 초기 모델로 돌아가자는 SV 진영으로 나뉘어 지난해 11월까지 다툼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각 진영 대표 개발자들의 말 한마디에 가격이 요동치는 일이 잦았다. 

    이들 대결의 룰은 ‘해시 경쟁’이었다. 쉽게 말해 빠르게 비트코인 캐시를 채굴해 블록체인에서 더 많은 영향력을 획득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11월 16일에는 ABC 진영의 수장인 우지한 비트메인(Bitmain) 대표의 중대 발표가 있었다. 해당 진영의 승리를 위해 자사 암호화폐 채굴 능력을 비트코인 캐시에 전부 투입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비트코인, 해외선 이미 안전자산

    6월 24일 서울 강남구의 암호화폐거래소 업비트의 전광판. [뉴스1]

    6월 24일 서울 강남구의 암호화폐거래소 업비트의 전광판. [뉴스1]

    우 대표는 이를 계기로 비트코인 가격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비트코인 가격은 크게 떨어졌다. 지난해 10월 초 비트코인 가격은 개당 600만 원 대에서 횡보했지만, 비트코인 캐시의 해시 경쟁 이후 300만 원대까지 폭락했다. 기술 발전이 아니라 세력 간 패권 싸움 탓에 생긴 가격 변동이라 암호화폐시장에 대한 신뢰도 크게 하락했다. 비트코인 캐시도 이 싸움으로 시장 규모 4위 자리에서 밀려났다. 

    가짜 코인도 암호화폐시장에 악영향을 미쳤다. 초기에는 블록체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가짜 코인을 판매하는 집단이 생겼다. 지난해 4월 금괴를 실은 채 침몰한 보물선 돈스코이호를 인양하겠다던 신일그룹이 대표적 예. 이들은 신일골드코인(SGC)을 보유하면 수익금을 나눠 받을 수 있다고 홍보해 89억 원을 모았다. 하지만 이들의 코인은 블록체인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외에도 유명 블록체인 프로젝트와 유사한 이름을 걸고 가짜 코인을 만들어 투자자를 모집하거나, 계획서만 내놓고 블록체인 출시는 차일피일 미루는 사례도 많았다. 올해 초 슈퍼이오스(SEOS) 사태가 대표적인 예. 이오스(EOS)라는 유명 블록체인 프로젝트와 연관 있다며 투자자를 모았으나, 이오스 측이 4월 29일 슈퍼이오스와 이오스는 전혀 관련 없는 프로젝트라고 밝혔다. 트론(TRON)이나 에이다(ADA) 등 다른 유명 블록체인 프로젝트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암호화폐거래소 업비트 관계자는 “투자자 모집 단계에서는 투자에 나서기 전 반드시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사기’라는 오명만 뒤집어쓰던 암호화폐는 대장주인 비트코인을 시작으로 5월부터 회복세에 돌입했다. 금융업계에서는 비트코인의 가격 상승 원인을 미·중 무역전쟁, 대형 IT(정보기술) 기업의 블록체인 투자 등 크게 두 가지로 본다. 


    암호화폐거래소 빗썸의 최근 6개월간 비트코인 가격 변동 그래프(위)와 우리은행의 최근 6개월간 금값 변동 그래프. 미·중 무역갈등이 심화되면 금과 비트코인의 가격이 동시에 오른다.

    암호화폐거래소 빗썸의 최근 6개월간 비트코인 가격 변동 그래프(위)와 우리은행의 최근 6개월간 금값 변동 그래프. 미·중 무역갈등이 심화되면 금과 비트코인의 가격이 동시에 오른다.

    미·중 무역전쟁은 지난해 7월 보복성 관세에서 시작됐다. 미국은 2500달러 이상의 대중국 수입품에, 중국은 10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수출품에 각각 25% 관세를 부과했다. 양국은 올해 4월까지는 합의안을 만들겠다고 밝혔지만, 아직까지도 윤곽을 그리지 못하고 있다. 무역전쟁으로 수출입 규모가 줄자 양국 기업의 주가와 환율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요동치는 금융시장에서 투자자들은 금 같은 안전자산으로 눈을 돌렸다. 

    암호화폐 가격 변동은 금과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전으로 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4월 중순, 비트코인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개당 400만 원 선에서 600만 원 선으로 올랐다. 이후 보복성 관세가 부과된 5월 1000만 원 선을 돌파했고 미·중 관계가 더욱더 악화 조짐을 보이자 1600만 원 선까지 꾸준히 올랐다. 현재는 6월 29일 미·중 정상이 만나 무역전쟁 휴전에 합의하자 가격이 소폭 떨어져 1200만 원대를 맴돌고 있다. 가격 변동폭은 다르지만 금 가격도 비트코인과 오르내리는 시점이 거의 일치했다. 

    대형투자자들의 움직임만으로도 가격이 요동치는 암호화폐가 안전자산으로 둔갑한 이유는 위험 분산 때문이었다. 암호화폐시장이 주가와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 것. 글로벌 투자사 관계자는 “암호화폐 가격에 변동을 줄 만한 시장 내부 변수가 없었던 차에 기존 암호화폐 투자자들이 주식이나 위안화에 투자하던 금액을 암호화폐로 돌리면서 가격이 오른 것으로 보인다. 늘어난 수요에 따라 가격이 오르자 암호화폐에 관심이 적던 투자자들까지 다시 시장을 들여다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페이스북의 리브라, 시장 기대 높여

    페이스북이 내놓은 블록체인 프로젝트 리브라. [뉴스1]

    페이스북이 내놓은 블록체인 프로젝트 리브라. [뉴스1]

    페이스북의 블록체인업 도전도 암호화폐시장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6월 18일 페이스북은 자사 블록체인 프로젝트 리브라의 출시를 발표하고 백서를 공개했다. 대형 IT 기업의 블록체인 투자는 과거에도 있어왔다. 그런데 페이스북이 6월 30일 리브라를 공개하며 직접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개발에 뛰어들었고, 암호화폐 가격 상승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리브라의 목표는 당장 실제 화폐처럼 사용할 수 있는 암호화폐를 만드는 것. 기존 암호화폐와는 지향점이 다르다. 거칠게 비유하면 카카오페이나 알리페이에 가까운 서비스다. 일단 리브라는 ‘스테이블 코인’이다. 암호화폐가 결제수단으로 쓰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매분 급변하는 가격 때문. 하지만 스테이블 코인은 예비금 등 다양한 수단을 사용해 가격 변동 폭을 크게 줄인다. 리브라는 ‘리브라 리저브(reserve)’라는 예비금을 비축할 계획이다. 

    리브라의 초기 공략 목표는 금융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다. 빈곤, 금융시스템 부족 등 다양한 이유로 계좌가 없는 약 17억 명의 금융 소외계층이 있다. 페이스북의 리브라 백서에 따르면 이 중 10억 명은 휴대전화가 있고, 5억 명은 휴대전화 단말기를 이용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 즉 리브라가 기존 통화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면 5억 명의 새로운 금융 소비자가 생기는 셈이다. 블록체인업계 관계자는 “페이스북은 이미 엄청난 사용자가 있는 서비스다. 리브라의 금융시스템만 제대로 작동한다면 제3세계 화폐를 대체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페이스북의 리브라 백서만 보면 리브라가 금방 비트코인의 자리를 꿰찰 것 같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일단 페이스북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도가 크지 않다. 미국 투자회사 제프리스가 미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용자 6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0%는 ‘리브라를 구매할 가능성이 없거나 매우 적다’고 답했다. 전체 응답자의 45%는 ‘페이스북이 소비자의 리브라 사용 데이터에 대한 접근권이 없다고 발표했지만 이를 믿을 수 없다’며 페이스북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기도 했다. 

    비트코인의 강세가 계속되리라는 분석도 나왔다. 미국 월스트리트의 유명 투자 분석가인 맥스 카이저(Max Kaiser)는 올해 초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금융소비자들이 비트코인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비트코인이 가치 저장 수단으로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자신의 자금을 가장 안전한 블록체인인 비트코인에 이체하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비트코인의 암호화폐시장 지배력이 더 커질 것이라고 봤다. “현재 비트코인의 시장점유율은 전체 암호화폐시장의 60% 정도지만 앞으로는 80~90%까지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에선 非課稅가 매력 포인트

    국내에서는 투자자들을 자극한 변수가 또 있다. 바로 세금이다. 암호화폐 투자로 생긴 차익에는 세금이 붙지 않는다. 

    3월 더불어민주당 자본시장활성화특별위원회는 증권거래세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세금 부과 체계를 소득 기준으로 전환하는 내용의 과세 체계 개편안을 발표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증권거래세가 소득 기준으로 바뀌면 수익을 내던 투자자들의 수익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통 투자처의 매력이 떨어지자 일부 투자자는 암호화폐시장에서 새 돌파구를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암호화폐거래소 관계자는 “신규 투자 문의가 늘었고, 오랜 기간 투자하지 않던 계좌가 다시 열리는 현상도 보인다. 시장을 알아본다는 차원에서 투자가 늘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물론 암호화폐 투자 수익에도 세금을 매겨야 한다는 주장이 줄곧 이어져왔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는 5월 ‘암호화폐 규제 권고안’을 내놓았다. 암호화폐를 자산으로 취급하고 그에 따라 과세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미국 국세청(IRS)도 5월 암호화폐를 자산으로 규정하고 앞으로 암호화폐 과세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나섰다. 일본은 2017년 이미 암호화폐를 자산으로 인정했다. 이 때문에 암호화폐 투자로 낸 수익을 기타소득으로 분류하고, 수익의 15~55%를 세금으로 부과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 암호화폐업계는 물론, 금융업계도 암호화폐 수익 과세를 먼 장래 일로 보고 있다. 과세하려면 암호화폐를 자산으로 인정해야 하는데 이마저도 어려운 실정이기 때문. 관리·감독 주체를 정하는 것도 어려운 사안인 데다, 암호화폐시장에 대한 인식 역시 나쁘다 보니 자산 인정에만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는 게 지금까지의 전망이었다. 

    그렇다고 정부가 아예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부터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관계 부처 태스크포스를 운영하며 암호화폐 수익 과세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현준 국세청장도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답변 자료에서 ‘암호화폐 거래에 대한 과세 시스템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