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청사. [뉴시스]
국제사회의 합의로 새로운 국제조세제도가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다. 기업의 납세협력의무가 한층 높아지고 전반적인 세(稅) 부담도 커질 전망이다. 상당수 국내 기업은 글로벌 조세제도 개편에 충분히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IF 제14차 총회에서는 필라1 신고 및 납부 절차와 조세 확실성 이슈를 담은 2차 진행 보고서가 공개됐다. 국제사회의 조세 질서 재편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필라1은 당사국의 다자간 조약을 두고 막바지 협상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필라2의 경우 OECD가 제시한 모델 룰을 참고한 정부의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계획대로라면 필라1·2 모두 2024년부터 국내 조세제도에 적용될 예정이다.
근대 조세제도 유명무실
필라1·2 도입으로 글로벌 조세제도는 유례없이 큰 격변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근대 조세제도는 경제활동 주체가 단일 국가 및 경제권에서 활동하는 것을 전제로 마련됐다. 기업은 대부분 내수시장에 집중했고, 국가 간 교역도 상대국에 구축한 유통망을 근거로 이뤄졌다. 경제 주체가 소속된 국가(거주지국)와 이윤을 실현시키고 자산이 소재한 국가(원천지국, 시장소재국)가 대개 일치해 과세·납세가 간단한 편이었다. 그러나 세계경제가 글로벌화되고 다국적기업이 출현하면서 거주지국과 원천지국이 점차 분리되는 추세가 가속화하고 있다. 게다가 20세기 말 본격화된 경제 디지털화로 생산자와 소비자 간 직거래가 활성화된 점도 변수다. 원천지국에서 유통 기능이 불필요하거나 미미해진 것이다. 원천지국, 즉 시장소재국에 물리적 사업 장소가 있는 경우에만 시장소재국의 과세권을 인정하는 기존 국제조세제도의 과세권 배분 원칙이 유명무실해졌다. 이에 따라 필라1은 연결 매출 200억 유로(약 27조7000억 원) 이상이고 세전 이익률 10% 이상인 거대 다국적기업의 초과 이익 일부를 시장소재국에 과세 소득으로 배분하는 게 핵심이다. 예를 들어 빅테크 글로벌 기업이 한국에서 일정 규모 이상 매출을 내 큰 이익을 봤다면 국내에 사무실이나 공장이 없어도 한국 정부에 세금을 내야 한다는 취지다.그간 기업 투자를 유치하고자 세계 각국이 벌인 감세 경쟁 부작용도 문제가 됐다. 기업 활동의 자율성은 높아졌지만 각국 정부로선 지나치게 낮은 세율이 부담이 된 것이다. 국제사회는 필라2를 통해 연결 매출 7억5000만 유로(약 1조 원) 이상인 다국적기업의 최저한세율을 15%로 정했다. 다국적그룹 소속 기업의 실효세율이 특정 국가에서 이보다 낮을 경우 그 차이만큼 그룹 모기업 또는 다른 소속 기업이 소재한 국가에 추가 과세권을 부여하자는 의미다.
국내 대기업 250곳 적용 전망
새로운 국제조세 질서 도입으로 한국 세수(稅收)와 국내 기업 활동에 타격은 없을까. 주무 부처인 기획재정부(기재부)와 재계에 따르면 필라1 적용 대상인 국내 기업은 1~2곳, 필라2는 약 250곳으로 예상된다. 국내 기업 한두 곳의 글로벌 이익 일부가 다른 나라에 배분되겠지만, 해외 거대 플랫폼 기업에 대한 과세권을 확보할 수 있어 당장 세수는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정부 측 관측이다. 경제계 관심은 새로운 국제조세제도 도입으로 납세 부담과 리스크가 커지지 않을지 여부에 쏠린다. 각 기업은 필라1·2에 맞춰 납세 컴플라이언스를 점검하는 등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조세 분야 전문가들은 “필라1·2로 상징되는 미래 국제조세 질서 흐름을 요약하자면 기업이 상당한 납세협력의무를 요구받고 세금 부담도 전반적으로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라면서 “특히 이런 협력의무 및 세 부담이 어느 수준까지 높아질지 현재로선 아직 불확실하다는 점도 리스크”라고 입을 모았다.개별 기업으로선 국내외 조세제도에 능통한 전문가 자문이 절실한 상황이다.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신(新)국제조세연구소’를 출범해 국제조세 분야 동향을 연구·분석하고 국내 기업의 대응을 지원하고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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