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전문가인 김혜현 이사. [지호영 기자]
오를 수 있는 곳은 다 올랐다
2015년부터 상승 행진을 해온 부동산시장에 올해 들어 제동이 걸렸다. 지난해 말부터 일부 지방을 중심으로 시작된 미분양·미계약이 서울과 수도권으로 확산하더니 집값마저 하락세로 돌아선 것이다. 김혜현 알투코리아부동산투자자문 이사는 “올해 상반기 아파트 가격변동률은 부동산114 기준으로 5대 광역시(-0.7%)를 제외하고 전국(0.24%), 수도권(0.29%), 그 외 지역(0.55%) 모두 외견상 상승세를 보였지만 지역별로 희비가 엇갈렸다”면서 “특히 서울과 경기도 지역 아파트값이 빠르게 조정받고 있다”고 분석했다.건국대 부동산대학원을 졸업한 김 이사는 국내 최초로 각종 부동산 정보 제공 및 시장 분석을 해온 ‘부동산114’ 창립 멤버다. 오랜 시간 부동산 시세와 동향 분석을 해왔으며, 현재는 부동산 개발 타당성 분석 및 컨설팅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올해 들어 부동산시장이 주춤하다. 부동산 가격이 정점에 오른 시기는 지난해 하반기였을까.
“오히려 지난해 상반기라고 생각한다. 부동산 가격이 2020년, 2021년에 워낙 많이 오른 상황에서 올해 들어 금리인상, 각종 규제로 거래량이 줄다 보니 지난해 하반기가 정점인 것처럼 비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시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미 거래량이 둔화하며 침체되고 있었다. 다만 아직은 매도자들이 가격을 떨어뜨려서 팔기를 꺼리다 보니 가격 면에서 하락하지 않았을 뿐이다.”
전국적으로 안 오른 데가 없나.
“대한민국 전역을 가보지는 않았지만 거의 없다고 본다. 예전에는 아파트 시장을 분석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수요로 표현되는 사람들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결혼할 때는 전세로 살다, 아이를 낳고 어느 정도 종잣돈이 모이면 집을 분양받거나 사는 연령대가 보통 30대 후반에서 40대 정도였다. 이런 양상이 2020년, 2021년에 완전히 달라졌다. 2015년부터 오른 집값이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까지 오르니까 종잣돈이 있는 사람뿐 아니라 없는 사람도 대출 등으로 자금을 조달해 집을 매수했다. 이로 인해 그동안 수요가 많지 않아 오르지 않던 지역까지 오르는 기현상이 발생했고, 정말 오를 수 있는 곳은 다 올랐다.”
2020년과 2021년은 부동산 전문가가 갖고 있던 상식마저 파괴된 시기인가.
“나는 그렇게 느낀다. 앞서 말한 것처럼 기존에는 자기 가족의 흐름에 따라 집을 매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집값이 너무 오르니 불안감에 일단 집을 사고 보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또 집이 재산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매수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게다가 때마침 대출도 쉽고 아파트 공급 물량은 없다 보니 집값 폭등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말하자면 10이라고 생각했던 수요가 20이 되고 30이 되니 다들 ‘이렇게 수요가 많았어?’라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과열이라고까지 표현될 만큼 뜨겁던 부동산 열기는 어떻게 한순간에 식게 됐을까.
“집을 살 때는 앞으로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어야 하고, 실제 집을 사는 데 필요한 돈을 조달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대출이 쉽지 않은 데다 집값이 조금 안정되면서 떨어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생기다 보니 수요가 관망세로 전환됐다. 부동산 가격이 본격적으로 하락하는 시점을 하반기로 보는 이유도 집을 사려던 수요가 감소한 가운데 앞서 무리해서 집을 산 사람들, 투자 목적으로 샀던 다주택자들이 ‘굳이 지금 이것을 계속 갖고 있는 게 맞나’ 고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알고 있던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다시 작동하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
하락폭이 크지 않은 이유
이제부터 시작될 부동산시장 하락 양상은 어떻게 되나.“지금 부동산 상승이 멈춘 이유가 더 오르리라는 기대감이 사라진 것과 관련 있다면 일단 최근 2~3년간 굉장히 많이 오른 곳부터 조정이 시작될 것이다. 집값이 오를 때 작동하는 심리 가운데 하나가 희소성인데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과도하게 평가됐다면 하락할 수밖에 없다. 또 집값이 오르면 사람들이 자신이 사고 싶었던 곳에서 집을 못 살 경우 차선, 차차선을 선택하게 마련이다. 하락기에는 같은 권역이라도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단지는 수요가 더 줄어든다. 공급 물량이 많았던 지역들도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08~2013년 부동산 하락기에는 서울 강남권부터 하락해 강북권, 그 외 지역으로 확산됐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까.
“그렇다고 본다. 부동산시장은 외환위기 이후 가격이 폭락했다가 2000년대 초반 정부가 각종 규제를 풀고 저밀도지구 재건축도 진행하면서 강남이 주도해 가격이 굉장히 많이 상승했다. 그렇게 많이 오른 만큼 강남이 큰 폭으로 떨어졌다. 이번에도 역시 많이 오른 곳이 조정될 수밖에 없으니 같은 양상이지 않을까 싶다.”
경기도는 상승폭이 컸던 지역이 과거와 다르다.
“투자 목적으로 집을 사는 사람은 미래 가치를 보는데 그 시점마다 미래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용인시, 과천시, 성남시의 가격 상승폭이 컸지만 이번에는 새로운 지역들도 있다. 수원시라고 해도 광교 신도시가 많이 상승했고 새롭게 안양시, 의왕시가 많이 올랐다. 그런데 호재로 상승한 경우 실제로는 호재가 10인데 과열 양상 때문에 20까지 올랐다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 또 하남시, 성남시, 광명시 등도 많이 올라서 큰 폭으로 조정될 수밖에 없다.”
하락은 어떤 곡선을 그릴까.
“완만하게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아파트 가격이 떨어진다고 사람들이 한꺼번에 아파트를 내놓지는 않는다. 특히 실수요자는 집 문제로 몇 년간 고통을 겪었기에 쉽게 집을 팔지 않는다. 그래서 단기간에 폭락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1~2년에 걸쳐 꾸준히 거래량이 줄면서 하락하리라 생각한다.”
서울 아파트 하락폭은 어느 정도 될까.
“과거 통계를 기준으로 볼 때 많이 떨어져야 10% 정도가 아닐까 예상한다.”
지난 7년간 오른 가격에 비하면 하락폭이 너무 작다.
“기본적으로 집은 여전히 있는 사람보다 없는 사람이 많다. 특히 집을 가진 사람 중에서도 모두가 살기를 원하는 아파트를 가진 사람은 30~40%에 불과하다. 보통 전세 사는 사람은 내 집 마련 꿈이 있고 집값의 60~70%에 달하는 전세금(돈)을 갖고 있다 보니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면 매수에 나서는 경향이 있다. 흔히 부동산의 특징을 부증성(不增性)이라고 하지 않나. 물리적으로 양을 늘릴 수 없어 한정돼 있다는 뜻인데, 물론 아파트는 원하는 만큼 지을 수 있지만 서울의 경우 개발 가용지가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부동산 가격이 무작정 떨어지지는 않는다. 서울 아파트 하락폭을 10%로 보는 이유다. 물론 세월이 지나 인구가 줄면 변할 수도 있겠으나, 현재는 아무리 하락장이라 해도 지금까지 오르는 걸 봐온 만큼 사람들이 집을 막 던지지는 않을 것이다.”
서울 집을 가장 많이 사는 연령은 30대
매수를 희망하는 사람은 언제 집을 사는 것이 좋을까. 전문가들도 내년까지는 지켜보라는 의견과 무작정 기다리지 말고 올해 하반기 15~20%가량 낮은 급매물을 사라는 의견으로 엇갈린다.“사람들은 집값이 가장 쌀 때 사고 싶지만 그 바닥이 언제일지 누가 알겠나. 그래서 항상 부동산은 어깨에서 팔고 무릎에서 사라고 얘기한다. 여유 자금이 있어 10~20% 가격이 조정된 급매물을 살 수 있다면 매수하라고 권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하지만 나는 지금은 살 때가 아닌 것 같고, 내년까지는 지켜봐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후년에는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거기까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요즘 부동산시장을 과거보다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제는 부동산시장이 국내 경제, 나아가 글로벌 경제와도 연결돼 있어서다. 또 부동산시장에 오래 몸담고 있다 보니 변화를 많이 느끼는데 무엇보다 사람들의 성향 자체가 달라졌다. 과거에는 지하철 출퇴근 1시간, 1시간 30분 정도 거리를 보통으로 받아들였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직주근접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또 수요자 니즈에 따라 아파트 형태도 다양해지고 선택 기준도 달라졌다. 이렇게 변화의 흐름을 느끼기에 내년 그 이후를 전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부동산이 트렌디한 상품이 됐다는 생각이 든다.
“맞다. 서울은 지금 2년째 30대가 집을 가장 많이 사고 있는데 실제 젊은 층에 고연봉자가 많다. 또 증여가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청년층의 수요 비중이 높아져 과거처럼 단순하게 수요와 공급을 분석하면 이들의 니즈를 못 쫓아가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젊은 세대는 아파트에서 태어나 줄곧 살아왔기에 다른 곳에서 산다는 것을 상상조차 못 하는 것 같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때 집값이 엄청 올랐던 곳 가운데 최근 수억 원씩 떨어진 지역도 나오고 있다. 그런 지역에 집을 매수하는 것은 어떨까.
“서울을 말할 때 가장 많이 언급하는 단어가 희소성이다. 2000년대 중반 수도권 택지지구가 대규모로 개발되면서 서울 집을 팔고 경기도 분당이나 용인 등지 대형 평수로 이사한 사람이 많았다. 대부분 처음에는 만족도가 높았는데 그 뒤로 굉장히 고전했다. 주거 환경은 좋으나 그런 집을 서울에서도 지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서울도 재개발되고, 그 택지지구보다 서울에 더 가까운 곳들도 개발된다. 서울에서 가까운 지역에 아파트가 들어서면 굳이 먼 곳까지 가야 할 이유가 없다. 지금 1기 신도시 재건축 이야기가 나오는데 ‘정말 그 많은 아파트가 다 재건축이 될 것이냐’는 문제가 남는다. 지금 단순히 가격이 올랐냐, 떨어졌냐보다 중요한 것은 장기적으로 경쟁력이 있느냐다. 오래된 고층 아파트는 부동산 바람이 거세게 불 때는 다 같이 오를 수 있겠지만 부동산시장을 주도할 수 있느냐 측면에서는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서울도 마찬가지다. 2000년대 초반 강남이 재건축될 때 강남구 저밀도지구는 다 됐지만 당시에도 서초구 중층 고밀도지구는 재건축이 안 됐다. 또 지금 서초구는 재건축이 됐는데 목동, 상계동 같은 12개 고밀도지구는 개발이 안 되고 있다. 단순히 5억 원이던 아파트가 4억5000만 원이 됐다고 매수하는 것은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쌓인 매물이 빠지기 시작할 때 집 사야
그렇다면 어느 지역에 집을 사는 것이 좋을까.“집값 상승 기대를 갖고 있고 신축을 선호하는 젊은 세대라면 차라리 새로 짓는 신도시 아파트를 분양받는 게 낫다. 구축 아파트를 사려고 했던 분이라면 서울의 좀 괜찮은 동네를 사도 될 것 같다. 성동구나 마포구처럼 여전히 수요가 많고 교통이 좋은 지역도 괜찮다. 실수요자라면 자금 여력에 맞춰 마련하면 좋을 듯하다. 다만 부동산 상승기에 다른 지역이 오르면 덩달아 오르다 하락기에 먼저 떨어지는 지역은 고민해봐야 한다.”
매수 적기는 언제일까.
“만약 집을 사고 싶은 동네가 있다면 지금부터 꾸준히 매물을 봐야 한다. 지금 매물이 쌓여가는 단계인데, 어느 시점이 되면 거래가 이뤄지면서 좋은 단지부터 매물이 빠지기 시작한다. 그때가 집을 사면 좋은 시점이다. 가격적으로 10%, 15% 낮은 급매물을 사는 것도 좋지만 같은 단지 내에서도 동과 호수에 따라 가격이 1억 이상도 차이 나니 좋은 매물을 고르는 것도 중요하다.”
최악의 선택은 무엇일까.
“지금 하는 일이 부동산 개발 타당성 검토인데, 부동산 가격이 한창 오르던 시기 ‘여기까지 집을 짓는다고?’라는 생각이 드는 곳들이 있었다. 그런 지역은 바람이 강하게 불 때는 오르지만 한순간에 열기가 식는 곳이다. 부동산은 가격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팔고 싶을 때 못 파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이제는 부동산시장이 침체될 때 그 지역에 있는 집을 누가 살까를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이한경 기자
hklee9@donga.com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이한경 기자입니다. 관심 분야인 거시경제, 부동산, 재테크 등에 관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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