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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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왕국 변신 중인 용인, 日帝 수도 후보지였다

[안영배의 웰빙 풍수] 이병철 회장이 주목한 땅… 용인 땅 기운이 수원 삼성전자에 지속 공급

  • 안영배 미국 캐롤라인대 철학과 교수(풍수학 박사)

    입력2024-10-16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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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용인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이색적인 스토리를 가진 지방자치단체 중 하나다. 용인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권세가의 묏자리 명당 정도로 주목받았던 지역이다.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 살아서는 진천, 죽어서는 용인에 거함)이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망자의 주거지로 취급받던 용인은 일제 말기에 이르러 산 사람의 ‘귀한 땅’으로 대접받게 된다.

    사연은 이러하다. 일제는 1940년대에 들어서자 대동아공영권 건설을 외치면서 미국 등을 상대로 태평양전쟁(대동아전쟁)을 벌였다. 이와 더불어 일본 정치권에서는 비밀리에 수도 이전 계획을 세웠다. 일제는 일본 열도와 한반도, 만주 일대 만주국을 포함하는 대동아권 수도 이전 후보지로 경성부(서울) 남쪽 교외, 일본 열도 내 오카야마와 후쿠오카 등 3곳을 꼽았다. 이들이 1943년에 작성한 비밀 국토계획인 ‘중앙계획소안(中央計劃素案)’은 일본인 200만 명과 주요 행정 관청을 한반도로 이주시킨다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워두고 있었다.

    수도 적격지로 꼽힌 명당

    일제강점기 일본이 수도 후보로 주목한 경기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관청마을 일대는 현재 한국외국어대 글로벌캠퍼스가 자리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 제공]

    일제강점기 일본이 수도 후보로 주목한 경기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관청마을 일대는 현재 한국외국어대 글로벌캠퍼스가 자리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 제공]

    일본에서 이 비밀 문건을 찾아낸 김의원 전 국토연구원장(2023년 작고)에 의하면 일제가 지목했던 경성부 남쪽 교외는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관청마을(현 한국외국어대 글로벌캠퍼스) 일대라고 한다.

    일제는 왜 한반도 용인을 수도 후보지로 꼽았던 것일까. 일제가 수도 적격지로 설정한 기준은 △전 국토의 중심적 위치 △지진과 풍수해 등 천재지변이 적은 곳 △사계절이 뚜렷하며 겨울에는 추위가 심하지 않고 여름에도 크게 덥지 않은 지역 △평탄한 지형에 땅이 높고 경치가 아름다운 지역 △용수, 전력, 식량 등 물자가 풍부한 지역 △교통이 편리하고 지역 문화 수준이 높으며 기성 도시와 적당한 거리에 있는 곳 등이었다. 조선 수도이자 조선총독부가 위치한 서울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으면서 위와 같은 조건을 갖춘 도시로 용인이 선택된 것이다.

    이들이 설정한 기준은 조선 후기 지리학자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제시한 △지리(地理: 살기 좋은 지형적 조건) △생리(生利: 살기 편한 경제적 조건) △인심(人心: 공동체 생활에 좋은 문화적 조건) △산수(山水: 경치를 즐기는 정서적 조건) 등 4가지 명당 조건과도 매우 흡사하다.

    여기서 용인이 전 국토의 중심적 위치에 해당한다는 점이 의아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 대륙을 점령했던 일제 시각에서 보면 그럴싸하다.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중국 지린성, 랴오닝성, 헤이룽장성 등 동북3성 일대)과 한반도, 일본 열도 전체를 놓고 볼 때는 용인이 그 중앙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물론 용인으로 수도 이전 계획은 일제의 패망과 더불어 백지화됐지만, 이를 풍수적으로 재조명해볼 필요가 있다. 일제가 주목했던 용인시 모현읍의 한국외대 글로벌캠퍼스 터는 동쪽 노고봉이 뒤를 받쳐주고, 앞면에 해당하는 서쪽으로 경안천이 굽이굽이 흐르며. 그 사이로 경작지가 발달한 곳이다. 일제는 이곳에 일본 왕이 사는 고쿄(皇居)와 주요 관청을 설치하려 했던 것이다.

    이를 풍수적 시각에서 보면 어머니 배 속의 아이 모습인 태아형(胎兒形) 형국이다. 즉 노고봉 자락 아래 대학교 터는 태아의 심장에 해당하는 명당이다. 일제가 수도 이전 후보지로 풍수 측면까지 고려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으나, 일본이 이곳에 둥지를 마련함으로써 마치 신생아처럼 새롭게 태어나는 대동아권 제국(帝國)의 이미지를 부여할 수는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삼성이 에버랜드를 지은 진짜 이유

    경기 수원에 자리한 삼성전자의 발전을 위한 풍수 비보(裨補) 역할을 하고 있는 용인 에버랜드. [에버랜드 제공]

    경기 수원에 자리한 삼성전자의 발전을 위한 풍수 비보(裨補) 역할을 하고 있는 용인 에버랜드. [에버랜드 제공]

    1945년 해방 이후 그다지 관심을 받지 못했던 용인은 1970년대에 이르러 주목받게 된다.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에 의해서다. 이 회장은 1969년 1월 용인과 맞닿은 경기 수원시 영통구 일대에 삼성전자공업㈜을 창립했다. 오늘날 거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전자의 전신이다. 라디오와 TV 생산 라인을 갖추고 인력 36명으로 시작한 삼성전자는 이후 고속 성장을 거듭해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거듭났다.

    그런데 당시 이 회장은 수원에 사업장을 창립한 후 곧이어 용인 땅을 주목했다. 현재 에버랜드가 들어선 용인시 처인구 자리다. 표면적 이유는 유럽 티볼리가든이나 미국 디즈니랜드 같은 테마파크를 세운다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해서는 당시 국무총리였던 김종필 증언록(‘소이부답’)에서도 일부 언급되고 있다.

    김종필의 증언에 의하면 1971년 어느 날 이 회장이 찾아와 용인에 테마파크를 세우려 하는데 산림청 소유의 땅이라서 곤란을 겪고 있다며 산림청 땅을 매입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김종필은 땅을 절대로 팔 수 없다는 산림청장을 설득해 용인 땅의 2배에 해당하는 부지를 대토(代土)로 내놓는 조건으로 이 회장이 용인 땅을 구입할 수 있게 해줬다는 것이다. 에버랜드(당시 용인 자연농원)가 들어서게 된 배경이다.

    이와 관련해 용인 에버랜드가 수원에 자리한 삼성전자의 발전을 위한 풍수 비보(裨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회장이 풍수에 매우 관심이 많았고 터 기운을 중요시했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수원 삼성전자 부지를 고를 때도 풍수가에게 조언을 구했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용인 에버랜드도 마찬가지다. 수원 삼성전자가 나라의 국부(國富)를 창출하는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용인의 땅 기운도 필요했던 것이다.

    필자는 2021년 충남 계룡대에 있는 제석사를 답사하는 과정에서 제석사 신도회장을 만나 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취재했다. 제석사에서 한평생을 보낸 해봉스님과 이병철 회장,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재계 총수의 알려지지 않은 비화 등이었다. 제석사 신도회장이 해봉스님으로부터 직접 들은 용인 땅과 관련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15년 99세를 일기로 입적한 해봉스님은 계룡산에 입산한 후 70여 년, 제석사에서 40여 년간 오로지 수행만 해온 도인이었다. 신도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한평생 국수로만 끼니를 해결한 해봉스님은 민간인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지역에서 국태민안과 민족의 염원인 평화통일을 기도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해봉스님에 대한 소문은 당시 정재계에 파다해 이병철 회장, 정주영 회장 등 수많은 인사가 만나기를 원했다고 한다.

    이 회장이 명운을 걸고 수원에 전자산업 회사를 창립한 것을 지켜본 해봉스님은 이 회장에게 회사가 성장하는 데 용인 지기(地氣)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해봉스님은 산림청 및 군부대 시설 등으로 민간인이 소유하기 힘들었던 에버랜드 땅을 이 회장이 매입할 수 있도록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 설득했다고도 한다. 국력과 국부(國富)를 창출해낼 힘이 이 회장의 삼성전자에 있으니,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는 논리였다. 해봉스님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민간인이던 시절부터 친교를 나눈 사이였다고 한다.

    이를 보면 해봉스님의 풍수 실력은 탁월했던 듯하다. 에버랜드 주산에 해당하는 향수산(457m)은 서남향으로 법화산을 거쳐 수원 청명산으로 지기가 뻗어간다. 바로 이 청명산 지맥이 이어지는 곳에 삼성전자가 위치해 있다. 따라서 삼성전자는 용인 지기를 청명산을 통해 지속적으로 공급받고 있는 셈이다.

    반도체 중심지로 확장하는 용인

    1987년 작고한 이 회장은 용인 에버랜드에 영면해 있다. 이곳이 에버랜드 부지 내에서 명당 터로 꼽히지만 이 회장의 그릇만큼 빼어난 곳인지는 논란이 없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필자는 에버랜드에 있는 이 회장의 유택에서 사후세계에서도 삼성전자와 그룹을 지키는 수호자 역할을 하겠다는 그의 의지가 읽힌다고 본다.

    삼성전자 반도체를 통해 수원과 용인이 하나로 연결된 것일까. 요즘 용인은 세계적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전자에 기운을 불어넣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예 K-반도체의 심장으로 우뚝 서고 있는 양상이다. 용인시는 반도체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로 지정된 이후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용인이 지방 근무를 기피하는 고급 인력 사이에서 수도권의 마지노선으로 인식되는 점도 이 사업의 성공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실제로 현재 SK하이닉스가 122조 원을 투자해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일대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있고, 반도체 앵커기업인 삼성전자는 기흥 반도체 사업장에 이어 처인구 이동읍·남사읍 일대 728만㎡ 부지에 20년간 360조 원을 투자해 세계 최대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할 계획이다. 일제가 꿈꾼 제국의 수도 꿈이 용인의 ‘반도체 제국’ 건설로 구체화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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