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를리오즈의 초상’, 귀스타브 쿠르베, 1850년, 캔버스에 유채, 61×48cm,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스튜디오로 들어서는 베를리오즈를 본 쿠르베는 분명 뛸 듯이 기뻤을 것이다. 낭만주의 음악의 정수로 손꼽히는 ‘환상 교향곡’을 작곡한 베를리오즈는 19세기 중반 프랑스 파리 예술계에 널리 알려진 유명 인사였다. 당대 대중이나 비평가들은 베를리오즈의 음악을 그리 환영하지 않았지만, 파리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는 대부분 음악과 문학을 결합해 ‘표제 교향곡’을 만들어낸 베를리오즈의 작품 세계를 흠모했다. 대선배이자 예술가들에게 우상 격인 베를리오즈의 초상화를 그릴 기회가 왔으니 쿠르베로선 기쁠 수밖에 없었다.
쿠르베는 중년에 접어든 작곡가의 모습을 충실하게 재현한 초상화를 완성했다. 그러나 베를리오즈는 완성된 초상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인수를 거부했다. 어쩌면 베를리오즈의 심기가 이미 뒤틀려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음악적 재능이 있다고 믿었던 쿠르베는 초상화를 그리는 내내 당시 유행가를 흥얼거렸다. 그 노래는 하나같이 음정도 박자도 맞지 않았고, 가락은 베를리오즈의 신경을 몹시 긁어댔다. 여느 작곡가와 마찬가지로 베를리오즈 역시 소리에 매우 민감했다. 급기야 베를리오즈는 친구에게 “쿠르베라는 화가는 정말로 덜떨어진 작자”라고 불평을 늘어놓기까지 했다니, 초상화의 완성도와 별개로 이 작품이 베를리오즈의 마음에 들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베를리오즈의 불평은 좀 지나친 감이 있다. 쿠르베의 초상화는 베를리오즈의 개성을 십분 살린 수작이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 잠긴 얼굴의 오른편 실루엣만 드러낸 이 초상화는 베를리오즈 특유의 우울함과 낭만주의 작곡가다운 꿈꾸는 듯한 표정이 절묘하게 교차하고 있다. 다만 쿠르베는 ‘보이는 것을 충실하게 재현하는’ 사실주의 추종자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