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그메 도르지 왕추크 국왕을 기리는 추모탑.
부탄 헌법에는 ‘삼림 면적은 영구히 국토의 60%를 밑돌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삼림 규모를 강제한 규정이 있는 것이다. 부탄은 숲의 부가가치를 충분히 활용하는 나라 중 하나다. 숲에서 발원하는 물이 사시사철 풍부해 겨울에도 강물이 고갈되지 않거니와 수력발전의 동력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부탄은 전기가 중요 수출 품목이기도 하다. 인도와 방글라데시로 수출하는 전기가 전체 수출량의 45%나 된다니 부럽기만 하다. 그렇다고 거대한 댐을 건설하지도 않는다. 숲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산악지형에 따라 작은 수력발전소를 많이 건설해 전기를 생산한다. 물론 전통적으로 자연의 생명가치를 사람 목숨 못지않게 소중히 여겨온 관습 덕분에 숲이 유지돼 다양한 동식물의 낙원이 됐다고도 한다.
인도와 방글라데시에 전기 수출
친리 씨가 승합차를 멈추게 한다. 강 건너 민둥산에 사원이 하나 보인다. 15세기 통통겔포 스님이 해발 2250m 산자락에 창건한 일명 ‘철망다리 사원’이다. 돌조각 너와(너새) 지붕에 흙벽인 사원이다. 묵언수행하는 무문관이 있고, 통통겔포 후손들이 대대로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통통겔포 스님이 후대 사람에게 존경받는 이유는 다리를 많이 놓았기 때문이란다. 강과 계곡을 건너는 데 다리야말로 최고 선물인 것이다. 철망다리는 오토바이도 지나갈 수 있을 만큼 튼튼하다고 하지만, 발밑에 수심 2m의 파추가 위협하듯 급하게 흐르고 있어 마음이 편치는 않다. 그래도 강물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철망다리를 건너니 사원으로 올라가는 길가에 핀 하얀 야생화(snowberry)가 일행을 반긴다.
사원 내부는 공찰이 아니어서 그런지 어수선하다. 무서운 철망다리를 장애물처럼 통과해 왔으니 뭔가 대가가 있어야 할 텐데 싱겁다. 일행은 어두컴컴한 법당에 들어가 참배하고 나온 뒤 또다시 철망다리를 건넌다. 뒤돌아보니 황량한 민둥산에 자리 잡은 사원 풍경이 고풍스럽다. 추사의 ‘세한도’를 보는 듯해 나는 유동영 사진작가에게 사진 한 장을 부탁한다.
승합차는 다시 달려 검문소에서 멈춘다. 파로에서 발원한 파추와 팀푸에서 흘러온 팀추(Thimchu)가 만나는 지점이다. 파추와 팀추가 합수해 남쪽 인도로 흘러가면서 왕추(Wangchu)가 되는데, 왕추는 또 강가 강과 합류한다고 한다. 왕추를 따라가는 도로로 건축자재와 굴삭기를 실은 인도 트럭들이 달린다. 팀푸 같은 도시에 건설 붐이 일고 있다는 방증이다. 파로에서 보지 못했던 걱정스러운 모습이다. 건설은 필연적으로 자연 파괴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마침내 팀푸로 들어선다. 팀푸는 인구 12만 명이 사는 부탄 수도다. 도시 입구에 전통가옥 형태의 공무원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건물은 종보다 높은 위치에 지을 수 없도록 법으로 제한하며, 5층 이상은 허가가 안 난다고 한다. 일행은 팀푸에 들어서 가장 먼저 붓다공원으로 향한다. 팀푸가 내려다보이는 산 정상에 붓다공원이 있는데, 높이 51.5m 불상이 조성돼 있다. 불상은 중국인 자본과 인력이 들어와 완성 중이란다. 최고와 최대를 좋아하는 중국인 상술이 은둔의 나라까지 진출해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을까 싶어 걱정스럽다. 법으로 건축물 높이를 제한하듯 불상도 그랬으면 좋겠다.
붓다공원은 자리만큼은 명당이다. 왜 팀푸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위치다. 팀(Thim)은 ‘가라앉은’, 푸(Pu)는 ‘산’이라는 뜻이니, 우리말로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다. 팀푸 시내로 내려와 1952년부터 72년까지 재위한 부탄의 3대 국왕 지그메 도르지 왕추크(Jigme Dorji Wangchuck)의 추모탑을 둘러본다. 74년 3대 국왕이 암으로 죽자 그의 어머니가 추복하려고 조성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추모탑 안으로 들어와 불경이 새겨진 마니차를 돌리거나 기도한다. 부탄 사람들은 하루 중 아무 때나 마음 가는 대로 사원이나 탑을 찾아 마니차를 돌리곤 한다. 삶이 기도고 기도가 삶이 돼버린 것이다. 우리처럼 절에 가는 날이 따로 없고 친구 만나듯 사원과 함께 살아간다.
추모탑에 와보니 왜 부탄 사람들이 국왕을 존경하고 사랑하는지 이해가 된다. 3대 국왕 때만 해도 부탄은 모든 권력이 왕으로부터 시작되는 왕국이었다. 그러나 진보적 사고를 가졌던 3대 국왕은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고자 시도했다. 국민회의(국회)를 만들어 권력을 내줬다.
민둥산에 자리한 철망다리 사원(왼쪽)과 국왕 추모탑에 있는 마니차.
그러나 부탄 사람들은 왕국에 길들여져 국왕의 정책을 이해하지 못했다. 투표하면 반대하는 사람들 때문에 정책 실현이 저조했다. 국왕은 차선책으로 점진개혁을 선택했다. 3대 국왕은 부탄 농노를 해방시켰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땅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왕위를 이어받은 4대 국왕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도 아버지의 노선을 따랐다. 자연보호와 점진적인 성장을 추구한 아버지의 정책을 이어받아 국민총행복도(GNH)를 선언했으며, 자국민을 설득해 2008년 절대군주제를 포기하고 입헌군주제로 전환했다.
정치적 혁명이나 군사적 무력 없이 왕이 스스로 결단해 권좌에서 내려온 것은 세계사에서 사상 초유의 일일 것이다. 4대 국왕 역시 아버지와 같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자신의 땅을 나눠줬다. 이러한 정책은 5대 국왕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가 좀 더 체계적이고 섬세하게 폈다. 4대 국왕이 국민총생산(GNP)를 버리고 GNH를 선언하자 선진국들은 어리석다고 조롱했으나 지금은 ‘GNP가 2000달러밖에 안 되는 최빈국 사람들이 왜 행복한가’를 연구하고 벤치마킹하고 있다니, 역대 부탄 국왕들의 지혜와 안목이 돋보인다. 우리의 정조처럼 현명한 왕들이다.
부탄에서는 교육비와 병원비가 무료다. 의사는 공무원이라서 월급만으로 생활이 되니 쓸데없는 돈벌이에 관심이 없다. 교육비는 외국으로 유학을 가도 국가가 책임진다. 일상적으로 복지가 이뤄지기 때문에 우리처럼 국회의원들끼리 ‘보편적 복지니, 선별적 복지니’ 하며 정쟁하는 일이 없다. 모든 국민에게 주어지는 복지가 자연스러운 것이다.
5대 국왕은 30대고 그 부인은 20대라고 하는데, 국왕 부부의 다정한 모습을 휴대전화에 담고 다니는 부탄 사람들 마음을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국왕은 아무 때나 면담을 신청하면 만날 수 있단다. 궁궐을 국가에 헌납하고 작은 집으로 이사해 살고 있는 국왕은 가끔 학교를 찾아가 어린 학생들과 축구를 즐긴다고 하는데, 그래도 그의 권위는 절대적인 모양이다. 권위 중에도 공포를 주는 무서운 것이 있고, 스스럼없이 존경하고 싶은 친근한 것이 있나 보다.
친리 씨는 자신이 부탄에서 태어나 행복하다고 말한다. 숙소에 드는 내 귓가에 여운으로 남는 한 마디다. 하루를 접는 나의 화두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