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잭 니콜슨)을 바라보는 것은 즐겁다. 이제는 늙어 얼굴도 주름살 투성이고 머리카락도 반쯤 빠져 듬성듬성하지만 당신의 웃음은 여전히 보는 이를 편하게 한다. 연기력 또한 시들지 않아 비디오방에서 당신의 이름만 보고 영화를 골라도 후회하는 일이 드물 정도다.
당신에게 아카데미상을 안겨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1997년)를 떠올리면 지금도 슬며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 그 영화에서 당신은 길을 걸을 때 선을 밟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피해 걷거나 식당에 가서도 언제나 자신이 갖고 간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는 등 강박증 환자이자 작가인 멜빈 유달 역을 맡아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당신을 최고 배우의 반열에 올려놓은 ‘샤이닝’과 ‘배트맨’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팀 버튼의 화성침공’ 등에서도 당신은 복잡미묘한 캐릭터의 여러 얼굴을 훌륭하게 그려냈다.
그래서 당신은 지금도 할리우드에서 ‘유일무이(The One and Only)’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다. 물론 처음부터 당신이 이런 연기를 보여준 것은 아니다. 1958년 ‘울보 살해범’으로 데뷔한 당신은 10년 넘게 B급 영화 연기자로 지내다가 1970년대가 돼서야 진가를 인정받았다.
‘어바웃 슈미트’(감독 알렉산더 페인)에서도 당신은 탁월한 연기를 보여줘 우리를 사로잡는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당신의 ‘원맨쇼’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당신의 연기 외에 우리를 사로잡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영화는 코믹드라마를 표방하며 미국 중산층의 허위의식을 풍자적으로 그리고 있지만 풍자의 칼은 무디고, 드라마의 힘도 약하다. 극중 늙은 당신의 역처럼 늘어져 극적 긴장감도, 배꼽 잡게 하는 유머도 없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는 미덕이 있다. 세월이 흐른 뒤 늙고 추해진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미리 발견하고 그것에 대해 한번쯤 고민해볼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영화는 줄곧 코믹하게 흘러가지만 묘하게도 마지막에 가서 당신과 함께 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어바웃 슈미트’에서 60대의 당신은 능력 있는 후배들에게 떠밀려 이제 막 퇴직했다. 집에서 당신을 기다리는 건 잔소리만 해대는 늙은 할멈과 무료한 시간뿐이다. 느긋하게 늦잠을 즐겨도 좋으련만 당신은 30년 넘게 밴 습관 탓에 아침 7시면 어김없이 눈을 뜬다. 그렇게 일찍 일어나도 할 일은 없다.
멍하니 앉아 TV 채널을 돌리던 당신은 우연히 아동기금단체의 프로그램에서 탄자니아의 굶주리는 여섯 살 소년 엔두구를 발견한다. 당신은 엔두구에게 한 달에 20달러쯤 기부하고 대신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당신의 하소연을 세세하게 편지에 적어 보낸다. ‘쭈그렁이 할망구’와 멀리 떨어져 사는 외동딸 지니(더모트 멀로니), 괜히 얄미운 사윗감 렌달(호프 데이비스), 당신을 내몬 후배에 대한 불만들을 과장해서 털어놓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할멈이 저 세상으로 가버렸다. 유품을 정리하면서 당신은 할멈이 다른 남자에게서 받은 연애편지 묶음을 발견하고 배신감으로 격노한다. 당신은 외로움에 지쳐 시도 때도 없이 울음을 터뜨리고 분노와 두려움, 외로움이 교차하는 나날을 보낸다. 당신은 딸에게로 달려가지만 딸은 당신과 함께 지내는 걸 원하지 않는다. 별수없이 혼자 여행을 해야 하는 당신.
그러나 당신은 좌충우돌하면서도 아직 자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 나이에도 질투심에 사로잡혀 아내의 애인이었던 당신의 친구를 두들겨 패고, 사랑스러운 외동딸을 채가려는 변변치 못한 사윗감에게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며, 남의 집 아낙네에게 눈독을 들인다. 그런 욕심을 감당하기엔 당신의 여생이 너무 짧다는 걸 당신은 모르고 있다.
당신은 아내를 잃었고, 이제 딸도 떠나보내야 한다. 무엇이 당신에게 위로가 될 것인가. 뜻밖에 엔두구가 서툰 그림을 보내왔다. 그림 속에는 태양과 하늘, 야자수가 있고 그 아래 한 아저씨와 소년이 손잡고 서 있다. 두 사람은 바로 외로운 당신과 가난한 엔두구다. 당신은 그 그림을 보고 북받치는 눈물을 감추지 못한다. 당신은 혼자가 아닌 것이다. ‘주책바가지’인 당신도 한 소년에게 희망을 안겨줬다. 당신은 “내가 죽으면 세상도 죽는 거야”라고 중얼거리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소년이 살아 당신의 세상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12세 관람가.
당신에게 아카데미상을 안겨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1997년)를 떠올리면 지금도 슬며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 그 영화에서 당신은 길을 걸을 때 선을 밟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피해 걷거나 식당에 가서도 언제나 자신이 갖고 간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는 등 강박증 환자이자 작가인 멜빈 유달 역을 맡아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당신을 최고 배우의 반열에 올려놓은 ‘샤이닝’과 ‘배트맨’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팀 버튼의 화성침공’ 등에서도 당신은 복잡미묘한 캐릭터의 여러 얼굴을 훌륭하게 그려냈다.
그래서 당신은 지금도 할리우드에서 ‘유일무이(The One and Only)’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다. 물론 처음부터 당신이 이런 연기를 보여준 것은 아니다. 1958년 ‘울보 살해범’으로 데뷔한 당신은 10년 넘게 B급 영화 연기자로 지내다가 1970년대가 돼서야 진가를 인정받았다.
‘어바웃 슈미트’(감독 알렉산더 페인)에서도 당신은 탁월한 연기를 보여줘 우리를 사로잡는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당신의 ‘원맨쇼’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당신의 연기 외에 우리를 사로잡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영화는 코믹드라마를 표방하며 미국 중산층의 허위의식을 풍자적으로 그리고 있지만 풍자의 칼은 무디고, 드라마의 힘도 약하다. 극중 늙은 당신의 역처럼 늘어져 극적 긴장감도, 배꼽 잡게 하는 유머도 없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는 미덕이 있다. 세월이 흐른 뒤 늙고 추해진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미리 발견하고 그것에 대해 한번쯤 고민해볼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영화는 줄곧 코믹하게 흘러가지만 묘하게도 마지막에 가서 당신과 함께 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어바웃 슈미트’에서 60대의 당신은 능력 있는 후배들에게 떠밀려 이제 막 퇴직했다. 집에서 당신을 기다리는 건 잔소리만 해대는 늙은 할멈과 무료한 시간뿐이다. 느긋하게 늦잠을 즐겨도 좋으련만 당신은 30년 넘게 밴 습관 탓에 아침 7시면 어김없이 눈을 뜬다. 그렇게 일찍 일어나도 할 일은 없다.
멍하니 앉아 TV 채널을 돌리던 당신은 우연히 아동기금단체의 프로그램에서 탄자니아의 굶주리는 여섯 살 소년 엔두구를 발견한다. 당신은 엔두구에게 한 달에 20달러쯤 기부하고 대신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당신의 하소연을 세세하게 편지에 적어 보낸다. ‘쭈그렁이 할망구’와 멀리 떨어져 사는 외동딸 지니(더모트 멀로니), 괜히 얄미운 사윗감 렌달(호프 데이비스), 당신을 내몬 후배에 대한 불만들을 과장해서 털어놓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할멈이 저 세상으로 가버렸다. 유품을 정리하면서 당신은 할멈이 다른 남자에게서 받은 연애편지 묶음을 발견하고 배신감으로 격노한다. 당신은 외로움에 지쳐 시도 때도 없이 울음을 터뜨리고 분노와 두려움, 외로움이 교차하는 나날을 보낸다. 당신은 딸에게로 달려가지만 딸은 당신과 함께 지내는 걸 원하지 않는다. 별수없이 혼자 여행을 해야 하는 당신.
그러나 당신은 좌충우돌하면서도 아직 자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 나이에도 질투심에 사로잡혀 아내의 애인이었던 당신의 친구를 두들겨 패고, 사랑스러운 외동딸을 채가려는 변변치 못한 사윗감에게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며, 남의 집 아낙네에게 눈독을 들인다. 그런 욕심을 감당하기엔 당신의 여생이 너무 짧다는 걸 당신은 모르고 있다.
당신은 아내를 잃었고, 이제 딸도 떠나보내야 한다. 무엇이 당신에게 위로가 될 것인가. 뜻밖에 엔두구가 서툰 그림을 보내왔다. 그림 속에는 태양과 하늘, 야자수가 있고 그 아래 한 아저씨와 소년이 손잡고 서 있다. 두 사람은 바로 외로운 당신과 가난한 엔두구다. 당신은 그 그림을 보고 북받치는 눈물을 감추지 못한다. 당신은 혼자가 아닌 것이다. ‘주책바가지’인 당신도 한 소년에게 희망을 안겨줬다. 당신은 “내가 죽으면 세상도 죽는 거야”라고 중얼거리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소년이 살아 당신의 세상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12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