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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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 일 스크린 자존심 대결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7-03-09 14: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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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가을 영화가의 모든 눈은 11월13일 개봉하는 ‘텔미 썸딩’과 11월20일 개봉하는 ‘러브 레터’에 몰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텔미 썸딩’은 ‘접속’의 장윤현감독이 한석규 심은하라는 틀림없는 스타 시스템을 구축해 만든 영화이며 이와이 슈운지감독의 ‘러브 레터’는 우리 관객이 가장 보고 싶어하는 일본 영화로 꼽히는 영화다. 그런 의미에서 ‘텔미 썸딩’은 한국 영화의 ‘힘’을 보여주는 영화가 될 것이고 ‘러브 레터’는 이후 수입될 일본 영화의 ‘운명’을 결정하는 영화가 될 것이다.

    제작사와 수입사에서 각각 100만 관객 동원을 바라보고 있는 ‘텔미 썸딩’과 ‘러브 레터’는 외견상 완전히 다르지만 상당히 비슷한 컨셉트를 가진 영화다.

    우선 선지피를 의미하는 ‘하드 고어’라는 카피를 달고 있는 ‘텔미 썸딩’에는 정말 피가 많이 나온다. 양동이로, 할인매장 엘리베이터 바닥으로, 피가 ‘시원하게’ 쏟아진다. 사지를 정교하게 자르는 장면들이 모자이크 처리 없이 스크린 가득히 클로즈업되기도 한다. 이 피와 잘라진 몸뚱아리들은 채수연(심은하)이라는 여자의 전 남자친구들이다. 사건을 수사하는 조형사(한석규)는 수연의 기억에 의지해 범인을 찾아내려 하지만 수연에 대해 알게 될수록 몽타주는 어긋나기만 한다.

    일본 만화 ‘소년탐정 김전일’에서 토막 시체사건 에피소드를 기억하는 사람은 이 살인 사건에 대한 커다란 단서를 하나 얻을 수 있지만 스쳐 지나가듯 주어지는 힌트는 마지막 반전까지 관객들의 호기심을 키워놓기만 할 뿐이다. 혹시 영화가 끝난 뒤 범인이 누군지 모른다 해도 자신을 탓할 필요가 없다. ‘영화의 마지막 순간에도 그가 범인인지 아닌지 알 수 없도록 한다’는 것이 감독의 의도이기 때문이다.



    한편, 영화의 마지막 순간에도 그가 누구를 사랑했는지 알 수 없는 것이 ‘러브 레터’다. 2년전 산에서 애인 이츠키를 잃은 와타나베 히로코는 그를 잊지 못하고 그의 중학교 앨범에 나온 주소로 편지를 보낸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로부터 ‘감기에 걸려 고생하고 있다’는 답장이 날아온다. 그가 살아 있는 것은 아닐까. 곧 히로코는 자신의 애인이었던 이츠키와 동명이인의 여학생이 중학교 동창이었던 것을 알게 된다. 살아 있는 이츠키와 히로코는 편지를 통해 죽은 이츠키에 대한 추억을 되살린다. 그리고 이츠키는 자신이 전혀 알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사랑을 발견하게 된다.

    ‘텔미 썸딩’과 ‘러브 레터’는 결국 관객이 줄거리를 따라가면서 자신의 상상력 안에서 새롭게 이야기를 구성하게 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꽤 닮아 있다. ‘텔미 썸딩’이 스릴러 장르이면서도 조형사와 수연 사이의 소통과 단절이라는 멜로 드라마가 주요한 얼개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러브 레터’와 상통하는 면이 있다. ‘러브 레터’에서 와타나베는 이츠키를 죽은 뒤까지 사랑하지만 정작 이츠키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기말 한국과 일본의 두 젊은 감독은 이렇게 사람들 사이의 ‘관계’들─가족, 친구, 연인, 형사와 용의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 영화가 흥행에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텔미 썸딩’은 스릴러물 앞에서 망설이기로 유명한 한국 관객들을 극장 앞까지 끌어들여야 한다. ‘러브 레터’의 아킬레스건은 이 영화가 그동안 한국 영화팬들에게 ‘불법적으로’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데 있다. 일본 영화에 대한 한국 관객들의 짝사랑을 불러일으킨 것이 바로 ‘러브 레터’였던 만큼 웬만한 영화팬들은 각종 상영회와 복사 비디오를 통해 이미 이 영화를 본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두 영화 모두가 이러한 망설임을 보상해줄 만큼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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