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기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며 배웠다”고 말한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 제공]](https://dimg.donga.com/ugc/CDB/WEEKLY/Article/67/ae/c9/33/67aec9332133d2738250.jpg)
“소설 쓰기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며 배웠다”고 말한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 제공]
우리는 흔히 창작을 ‘정신적 활동’이라고만 생각한다. 글을 쓰려면 깊이 사고하고 논리를 정리하며 단어를 조합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간과되는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몸의 역할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학문과 정신이 운동과 육체보다 우월하다고 여겨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창작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오히려 몸이 알고 있는 길을 따라가야 한다. “테니스는 나의 애인”이라고 했던 이성복 시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흔히들 학문이나 정신이 한결 높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더 확실하고 근원적인 길은 육체가 알고 있는지도 몰라요. 테니스 치는 데도 주역이나 시에서 배운 이법이 그대로 들어맞지요. 흔히 공을 때린다고 여기기 쉽지만 그보다는 공이 가는 길을 끝까지 따라가 밀어줘야 흐름을 잃지 않게 돼요. 또한 때려 치는 것이 공격적인 것 같지만 이는 예를 갖춰 절하는 자세거든요.”
몸은 언어 이전의 창조적 도구
![미국 현대무용가 마사 그레이엄. 그는 전통의 틀과 대중의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무용언어를 창조했다. [GettyImages]](https://dimg.donga.com/ugc/CDB/WEEKLY/Article/67/ae/c9/39/67aec9390f37d2738250.jpg)
미국 현대무용가 마사 그레이엄. 그는 전통의 틀과 대중의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무용언어를 창조했다. [GettyImages]
글을 쓰는 과정 역시 공을 따라가는 테니스 스윙과 비슷하다. 좋은 문장은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흐름을 잃지 않는 태도에서 탄생한다. 문장의 리듬을 자연스럽게 유지하고, 사고 방향을 유연하게 따라갈 때 비로소 깊이 있는 글이 만들어진다.
미국 현대무용의 거장 마사 그레이엄(1894~1991) 또한 비슷한 통찰을 남겼다.
“내게 있어서 몸은 말이 할 수 없는 것을 말합니다. 나는 춤이 최초 예술이라고 믿습니다. 어떤 철학자는 춤과 건축이 최초 예술이라고 했지만, 나는 춤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춤은 몸짓이고 소통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감각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그의 말처럼 몸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몸은 언어 이전의 원초적 표현 방식이며, 감각과 감정을 직접 전달하는 매개체다. 이는 비단 춤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글쓰기에도 적용된다. 우리는 흔히 글을 머릿속에서만 이뤄지는 작업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좋은 글은 몸에서 나온다.
손으로 종이에 펜을 움직이는 리듬, 타이핑할 때 손끝에서 느껴지는 반발력, 생각을 정리하며 걸을 때 자연스럽게 맞춰지는 보폭, 이 모두가 ‘embodied experiences(몸이 기억하는 경험)’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우리의 사고방식과 표현 방식이 형성된다. 따라서 창작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정신뿐 아니라 몸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인공지능 시대, 몸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21세기 디지털 환경에서는 창작 과정마저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의존하게 된다. 인공지능(AI)이 글을 대신 써주고, 감정 분석을 통해 문장을 추천하는 시대. 하지만 이런 시대일수록 창작자는 더욱 ‘몸’을 신뢰해야 한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철학은 걸어 다니면서 해야 한다”며 “신체 활동이 창조적 사고를 활성화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걸으면서 떠오른 생각이 책상에 앉아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했을 때보다 훨씬 더 신선한 경우가 많다.
이는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신경과학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다. 걸을 때 뇌의 해마(hippocampus)와 전두엽(frontal lobe)이 더욱 활발하게 작동하고, 창의적인 사고를 촉진하는 신경망이 활성화된다. 즉 몸을 움직일수록 더 창의적인 생각이 떠오를 가능성이 커진다는 뜻이다.
예술가의 작업 방식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레이엄이 몸을 통해 감정을 전달한 것처럼, 화가는 붓의 움직임으로 색과 형태를 조율하고, 음악가는 연주하는 손과 호흡을 통해 소리를 만든다.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다. 좋은 문장은 단순히 논리적 구성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몸에서 표출되는 리듬과 흐름 속에서 탄생한다.
위대한 작가들은 창작을 위해 몸을 적극 활용했다. 니체는 “위대한 생각은 늘 걸으면서 떠오른다”고 말했다. 그는 하루에 10㎞ 넘게 걸으며 철학적 사유를 정리했다. 헤밍웨이는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는 것을 피하려고 항상 서서 글을 썼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매일 10㎞를 뛰며 소설의 리듬을 다듬었다.
이들 사례가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창작은 단순히 정신적 활동이 아니며, 몸의 균형과 리듬이 함께 작용할 때 우리의 정신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결과물이 나온다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는 우리를 점점 더 가상공간에 머물게 하지만, 창의성은 오히려 물리적 경험 속에서 꽃핀다. 이제 창작의 패러다임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몸이 기억하는 길이 가장 확실한 길이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더 깊이 생각하고, 더 자유롭게 창조할 수 있다. 무용가와 댄스 교사가 21세기 최후 직업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김재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민대 경상대학장, 국민대 도서관장과 박물관장, 한국예술경영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