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태 지음/ 인물과사상사/ 348쪽/ 1만6000원
“2017년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고 새 대통령을 뽑을 때 국민들이 기대했던 것은 이런 게 아니었다. 우리는 좀 더 투명하고, 정직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원했다. 정치가 정치다운 모습을 보이기를 희망했고, 온 국민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고 일궈나가는 데 든든한 동반자가 되기를 희망했다. 2021년 현재 그런 기대는 온데간데없다.”(4~5쪽)
‘불량 정치: 우리가 정치에 대해 말하지 않은 24가지’의 저자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의 펜 끝이 날카롭다. 저자는 문재인 정부 4년을 ‘불량 정치’의 시대로 규정한다. “‘우리 이니(문재인 대통령의 애칭)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외치는 한 줌의 극성 지지층만 바라보는 정치”와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미명하에 성장 잠재력을 깎아먹으면서도 그 책임자를 문책하는 대신 영전시키는 무책임의 정치”가 난무한다는 것이다.
철학자이자 청년 논객인 저자의 통찰은 광범위하다. 한국 정치의 문제점 24가지를 톺아본다. 제1장 ‘민주주의와 반민주주의’에선 의회·정당 정치를 향한 한국인의 불신에 경고음을 낸다. “청와대와 여당이 민주주의를 앞세워 민주주의를 망가뜨리는 행보를 밟고 있는데도 정권에 대한 콘크리트 지지율이 흔들리지 않는다”(24쪽)며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읽어낸다. 제2장 ‘민주화 세대와 조국’에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으로 표상되는 학생운동권 출신 586세대 정치인의 위선을 꼬집는다. 저자에 따르면 불량 정치의 폐단은 비단 여의도 정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015~2020년 산지에 태양광 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벌목된 나무는 307만여 그루다. 그중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인 2017년부터 베어진 나무가 81.3%”(256쪽 제9장 ‘원자력과 탈원전’)라는 통계를 담담하게 짚으면서 환경을 지키자는 명목으로 추진된 ‘탈원전 신화’의 반(反)환경성도 고발한다.
저자의 비판 의식은 진영 논리와 정파성에 갇히지 않는다. ‘능력주의’와 ‘공정’을 앞세운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를 향해서도 “국민은 젊고 합리적이며 유쾌한 보수 정치를 원한다. (중략)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은 약자, 소외된 자, 애초부터 발언권을 얻지 못한 자들에 대한 연민을 전제로 해야 한다”(89쪽)고 비판한다. 화려한 쇼맨십으로 포장된 ‘이준석표 공정’이 한국 사회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은폐할 수 있다는 뜻이다. 존재감을 상실한 원내외 진보 정당에 대해서도 “현실 감각·핵심 의제·권력 의지 부재로 4·7 재보궐선거에서 허경영 후보보다 낮은 지지율을 기록했다”(303~304쪽)며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이 책은 저자가 ‘신동아’에 연재한 글을 정리한 것이다. 번역가이기도 한 저자가 외신을 적확히 인용해 한국 현실을 짚는 대목이 눈에 띈다. 여야 막론, 어느 정치 세력이 집권해도 재현될 수 있는 불량 정치의 본질을 꿰뚫었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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