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날이면 우리는 파전과 두부김치를 파는 주점을 찾아 들어가 “막걸리 한 병 주세요”라고 했다. 막걸리 브랜드를 따지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최근 10년 사이 막걸리와 전통주를 ‘제대로’ 갖춘 전문점이 제법 많이 등장했다. 이들 전문점은 다양한 막걸리와 함께 산지 직송한 제철 재료로 미식(美食)을 선보인다. 여름철 저녁에 가보기 좋은 서울 시내 주점 3곳을 소개한다.
서울 마포구 | 산울림1992
190종 전통주 취급하는 레트로 주점
‘산울림1992’는 서울 마포구 산울림소극장 맞은편에 자리한다. 주막 느낌의 카운터 바(작은 사진). [사진 제공 · 산울림1992]
그는 1992년부터 이 자리에서 주로 대학생들이 다니는 학사주점을 운영했다. 하지만 늘 ‘같은 술에 같은 음식’을 즐기는 음주문화가 아쉬워 전통주를 들이려 했다. 전국을 뒤져봐도 페트병 막걸리와 명절 선물용 전통주밖에 없었다. 그가 오랜 꿈을 실현한 것은 4년 전부터다. 전국 양조장에서 새로운 전통주를 선보이기 시작했고, 2030세대도 관심을 보였다. 이때부터 취급하는 전통주를 하나 둘 늘려갔고, 현재 막걸리와 전통주를 190종이나 갖추고 있다.
‘산울림1992’의 한우 내장찜과 수비드 된장 맥적, 토마토샐러리 절임, 홍두깨를 쓴 한우 육회(맨 위 사진 왼쪽부터 시계 방향). ‘산울림1992’의 족발 편육과 이 주점에서 취급하는 전통주들(위부터). [사진 제공 · 산울림1992]
된장에 숙성시킨 돼지목살을 65도로 수비드(비닐봉지에 담아 밀폐한 음식물을 미지근한 물속에서 오랫동안 데우는 조리법)한 후 구운 수비드 된장 맥적도 인기다. 시그니처 메뉴로는 한우 곱창과 각종 채소를 푹 끓인 한우 내장찜이 있다. 부드럽게 씹히는 내장과 달큰한 국물 맛이 이곳만의 자랑이다.
막걸리와 전통주를 190종이나 팔다 보니, 그날그날 마실 수 있는 술이 바뀐다. 최근 입고된 제품으로는 부산 무(無)감미료 막걸리 ‘기다림’, 드라이한 맛이 일품인 배혜정도가의 ‘우곡생주’, 청주 스타일로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전북 부안의 ‘해밀약주’, 맛이 드라이한 경기 여주의 ‘순향주’와 ‘백년향’, 강원 홍천의 메밀로 만든 소주 ‘메밀로’ 등이 있다. 모두 비교적 덜 알려졌지만 주류 마니아 사이에선 인기 있는 제품들이다.
홍씨는 우리 막걸리를 더 깊이 알고자 직원들과 함께 전국 양조장을 꾸준히 찾아다니고 있다. 지금까지 다녀온 곳을 꼽아달라고 하니 경북 문경의 오미나라, 문경주조, 오미로제, 제주의 제주술익는집, 충남 당진의 신평 양조장, 충남 예산의 사과와인과 덕산 양조장 등등의 이름이 줄줄 나온다. 그는 “획일적인 학사주점이나 민속주점은 쇠퇴해가고 있다”며 “차별화를 위해서는 우리 술과 그에 어울리는 음식 개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소 서울 마포구 서강로9길 60
•영업시간 오후 5시~새벽 2시(매주 일요일 휴무)
서울 마포구 | 삼씨오화
오래된 한옥에서 즐기는 ‘신예’ 전통주
서울지하철 5호선 마포역 인근 한옥에 자리한 ‘삼씨오화’의 내외부 모습. [사진 제공 · 삼씨오화]
삼씨오화 창업자인 박경삼, 오화진 씨는 전통주 전문가다. 박씨는 서울 서초구 한국가양주연구소의 전통주최고지도자 과정을 수료했고, 오씨는 이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오래 근무했다. 삼씨오화라는 이름도 박경삼의 ‘삼’과 오화진의 ‘오화’에서 따왔다.
두 사람은 2017년 삼씨오화를 차렸다. 한국가양주연구소에서 전통주를 공부한 동문들이 수료 후 양조장을 차려 직접 술을 만들고 있지만 판로 개척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자 주점을 낸 것. 지금은 여기서 판매하는 동문들의 제품 가운데 내로라할 만큼 인기를 끄는 것들도 생겼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술샘의 ‘미르40’, 술아의 무감미료 핸드메이드 막걸리 등이 그 예다.
삼씨오화에서는 60여 종의 막걸리와 전통주를 판다. 술샘의 ‘이화주’와 새빨간색을 자랑하는 ‘술 취한 원숭이’, 샴페인막걸리 ‘이화백주’를 취급한다. 약주 및 청주 계열로는 ‘솔송주’와 술아의 ‘과하주’, 소주류로는 스님이 빚는 국내 유일 술 ‘송화백일주’, 춘향이가 이몽룡에게 이별주로 내놨다는 ‘감홍로’, 조선 3대 명주로 불리는 ‘이강주’ 등을 선보인다.
이곳 요리는 한마디로 힘을 뺀 음식이다. 음식과 술은 맛있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음식에 복잡한 데커레이션을 하지 않는다. 대표 메뉴는 삼씨오화 삼합. 불향 입힌 돼지목살구이와 삭히지 않은 홍어장, 오이지가 세트로 제공된다. 오징어, 조갯살, 새우가 들어간 해물 삼파전, 돼지고기와 부추, 시래기를 넣어 직접 빚은 만두 요리도 인기다. 겨울에는 방어회, 봄에는 봄나물전, 여름에는 줄전갱이(시마아지회)를 선보인다. 두 사람은 식재료를 마련하려고 매일 노량진수산물도매시장으로 장을 보러 간다.
•주소 서울 마포구 마포대로4가길 41
•영업시간 오전 11시 30분~오후 11시(매주 토 · 일요일 휴무)
서울 동작구 | 정작가의 막걸리집
세상에서 가장 작은 막걸리집
‘정작가의 막걸리집’에 빼곡한 막걸리 및 전통주(위)와 돼지수육, 소라, 문어가 함께 나오는 메뉴 ‘수소문’. [사진 제공 · 정작가의 막걸리집]
가게는 정말 작지만 음식은 정말 푸짐하게 나온다. 돼지수육, 소라, 문어가 함께 나오는 수소문, 순대를 크림스튜와 함께 내놓는 순대 크림스튜는 탄산감 좋은 막걸리와 잘 어울린다. 강판에 직접 갈아 튀긴 뜨거운 치즈감자전도 시원한 막걸리와 먹기에 좋다.
판매 주종은 60종가량. 인기가 꾸준한 전통 제품과 신제품을 골고루 취급한다. 벌꿀을 넣어 만든 ‘대대포 막걸리’, 짜릿한 탄산으로 유명한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 건배주 ‘복순도가’, 경기 평택의 현미로 빚은 ‘호랑이배꼽막걸리’, 무감미료 막걸리로 드라이한 맛이 특징인 전남 해남의 ‘해창막걸리’ 등이 주력 제품이다.
워낙 공간이 작다 보니 주인장과 손님의 호흡이 특별하다. 1990~2000년대 초반의 음악이 흐르면 갑자기 모두가 떼창을 한다. 주인장과 손님들의 사이가 ‘물리적으로’ 가까워 모두가 친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 이 집만의 매력인 것이다.
•주소 서울 동작구 동작대로33가길 5 1층
•영업시간 오후 6시~새벽 1시(탄력적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