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무 진부한 이야기지만 이렇게 털어놓는 것은, 유키 구라모토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사연 하나쯤은 품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구라모토의 최고 명반 중 하나인 ‘Romance’(1998) 한국판 재킷에는 ‘사랑하는 연인이 세상을 떠나기 전 함께 간 여행에서 이 음악을 들었다’는 한 음악평론가의 절절한 사연이 담겨 있다. 사실 구라모토의 음악은 화려하거나 웅장하지 않다. 주로 안개, 호수, 꽃, 동산 등 목가적인 풍경을 그리는 곡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선율이 귀에 익고 멜로디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화려하지 않은 단음표들이 가슴속 사연만 묻어놓는 방을 노크하는 듯하다.
구라모토가 10월 2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피아노 포엠(Piano poem)’이란 이름으로 콘서트를 연다. ‘당신의 마음에도 시가 있습니다’라는 부제가 붙은 이 콘서트에서 그는 5월 발매한 앨범 ‘피아노 포엠’의 곡들과 ‘Lake Louise’ ‘Second Romance’ 등 대표곡을 연주한다. 30인조 디토 체임버 오케스트라도 함께할 예정이다.
앨범 ‘피아노 포엠’은 일본 전통시 ‘하이쿠’를 닮았다. 열일곱으로 제한된 글자에 계절, 감정, 여운을 남기는 하이쿠처럼 단조로운 선율에 제한된 연주로도 긴 여운을 남긴다. 각 곡은 독립적이지만 앨범 하나를 1번 트랙부터 들으면 꼭 한 사람의 감정 변화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연결된다. 그중 8번 트랙 ‘Promenade’의 투명한 멜로디 진행은 구라모토의 장점을 잘 살렸다. ‘Romance’나 ‘Sailing in silence’(2000)와 같이 ‘구라모토의 대표곡 목록’에 수록될 것이란 예감이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10월 초, 다정한 사람과 구라모토의 공연을 본 뒤 걷는 가을밤의 정취는 어떤 모습일까.
주간동아 755호 (p167~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