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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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클라이버의 고향 슬로베니아

은둔 지휘자의 마지막 흔적을 찾아서

  • 황장원 음악칼럼니스트 tris727@naver.com

    입력2015-08-10 11: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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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내 고속도로를 벗어난 차는 얼마 후 급격히 경사진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대관령 뺨칠 정도로 현란하게 굽이치는 도로가 한동안 이어졌다. 위태위태한 길이 필자를 곡예운전으로 몰아붙였지만 안전속도로까지 움츠러들고 싶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를 만나러 가는 길에는 적당한 스릴이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7월 6일 오후 필자는 슬로베니아의 지방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11년 전 그곳의 깊은 산골에서 영면한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이제까지 음악여행을 하면서 작곡가의 고향이나 별장을 목적지 삼아 달려본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지휘자의 무덤을 일부러 찾아간 건 처음이었다. 사실 타계 10주기였던 지난해에 가보고 싶었지만 사정상 한 해가 지연됐다. 이번에 무리하면서까지 슬로베니아를 여정에 포함한 건 오로지 이 목적 때문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앞선 여정에 독일 뒤셀도르프, 슈투트가르트, 뮌헨, 스위스 취리히 등 그가 거쳐 갔던 주요 도시들을 포함하기도 했다.

    너무 유난을 떤 걸까. 하지만 클라이버가 누구인가. 세간의 평가와 별개로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지휘자라고 틈만 나면 떠들고 다녔던 인물이다. 더구나 그는 청춘의 추억 속에 가장 깊숙이 각인된 지휘자이기도 했다. 학창 시절 용돈을 모아 처음 샀던 LP(엘피반)가 그의 베토벤 음반이었고, 그의 브람스 교향곡 4번은 대학 시절 가장 자주 꺼내 듣던 음반 가운데 하나였다. 그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파묻혀 숱한 밤을 지새웠고, ‘신년음악회’와 ‘장미의 기사’를 통해 영상물 감상의 묘미를 알았다.

    그가 만년을 보낸 슬로베니아 산간벽지에 이르는 여정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류블랴나에서 출발하면서 구글맵으로 확인한 소요시간은 약 50분. 하지만 내비게이션 안내는 어이없게도 도로 위에서 끝나버렸다. 지도에 표시된 목적지는 그 도로 위 깎아지른 절벽 너머를 가리키고 있었다. 근처 민가를 찾아 들어가서 만난 청년이 다소 난감한 표정으로 경유지를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어찌 됐을까.

    그렇게 어렵사리 찾아간 ‘콘시차(Konjs˘ica)’는 두메산골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었다. 그 마을 중심부에 서 있는 작은 교회 앞마당에 클라이버와 그의 부인이 나란히 잠든 무덤이 있었다. 가는 길에 가게에 들러 산 작은 화분을 내려놓고 한동안 이런저런 상념에 잠겼다.



    그 후로도 30분가량 뙤약볕 아래서 주위를 배회하다 인상 좋은 청년을 만났고, 그 덕에 교회 바로 뒤쪽에 있는 작은 기념관에 들어가 볼 수 있었다. 벽에 관련 자료들과 사진들이 걸려 있었고, 한쪽에는 그의 영상을 볼 수 있는 AV(audio visual)시스템과 감상용 의자, 오르간이 놓여 있었다. 2005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방명록은 여전히 수십 쪽에 불과했는데 한글로 남겨진 흔적은 없었다.

    그의 저택은 그곳에서 올려다 보이는 산중턱, 마을과 주변 산세를 굽어보는 지점에 있었다. 올라가 보고픈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그냥 그 아래로 난 길 위에 서서 주위를 둘러봤다. 아직도 많은 이에게 ‘청춘의 음악적 표상’으로 기억되는 그 은둔자는 이 풍경에서 무엇을 봤을까.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고향 슬로베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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