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1일 발매된 ‘제비다방 컴필레이션 2015’ 앨범 포스터.
지금에야 음악인이 이 클럽 저 클럽을 다니며 공연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초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일종의 전속 밴드 개념이었다. 크라잉넛, 노브레인을 보기 위해서는 드럭에 가야 하고 델리스파이스, 코코어를 보려면 스팽글에 가야 했다. 다시 말해 공간마다 음악적 특색이 있었고 음악인과 그들의 팬이 모여 만드는 개성이 그 공간에 스며들었다. 그런 사람들과 그런 분위기가 합쳐져 라이브클럽은 단순한 공연장이나 술집이 아닌 아지트가 됐다.
인디 진영이 성장하면서 아지트 문화는 빠르게 붕괴했다. 라이브클럽 대신 레이블이 생기고, 공연할 수 있는 곳도 늘어났다. 뮤지션이 클럽이 아닌 레이블에 소속되면서 객석 규모와 음향 환경에 따라 공연할 곳을 고르게 됐다. 2000년대 초·중반 사운드홀릭, 쌈지스페이스 등이 생기면서 본격적인 공연장 형태를 띤 공간이 등장했다. KT·G상상마당, 예스24무브홀 등은 대학로 등지에 있던 소극장의 홍대 앞 버전이었다. 즉 홍대 앞에 현존하는 10여 개 공연장 대부분은 공연이 없을 때는 세상과 단절된 공간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지트가 사라지더라도 아지트에 대한 욕망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취향이 뚜렷한 사람들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래서 많은 술집, 카페가 라이브클럽이 갖고 있던 아지트 구실을 해왔다. 마포구 상수역 근처에 있는 제비다방은 그런 아지트 구실을 하는 대표적 공간이다. 2012년 아직 황량했던 상수동에 문을 연 제비다방은 개업 초기부터 화제였다. 이상이 1930년대 경성에서 운영했던 동명의 가게에서 이름을 따왔다. 낮에는 제비다방이란 이름으로 커피를 팔고, 밤이면 ‘취한 제비’란 이름으로 퍼브(Pub) 스타일 분위기가 됐다. 1층에서 지하를 내려다볼 수 있는 독특한 인테리어도 심미안이 있는 이들을 불러 모으기 충분했다. 그중에는 뮤지션이 여럿 있어 자연스럽게 공연도 시작했다.
초기에는 주말에만 열리던 공연이 이제는 평일에도 이어진다. 공간 자체가 작은 덕에 적은 관객으로도 충분히 밀도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제비다방의 가장 큰 특징은 ‘무료입장 유료퇴장’이다. 별도 입장료가 없는 대신, 공연이 끝나고 관객이 자발적으로 돈을 낸다. 물론 이 수입은 100% 공연자에게 돌아간다. 술과 안주 수입만 제비다방 몫이다.
이런 시스템은 공연을 단절이 아닌 일상으로 만들어준다. 공연이 있는 줄 모르고 온 사람들 역시 자연스럽게 공연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 또한 공연이 끝난 후 퇴장할 필요가 없다. 공연자 역시 공연이 끝나면 그들을 몰랐던 이들이 건넨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어울린다. 제비다방은 그렇게 조금씩 명소가 됐다.
최근 3주년을 맞아 기념 공연도 성대하게 열었고 컴필레이션 앨범도 만들었다. 모두 제비다방 단골손님인 음악가들이 참여했다. 대부분 그곳에서 보낸 시간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노래들이다. 초기 인디 음반이 이런 식이었다. 클럽에서 활동하는 밴드들이 모여 클럽 이름을 내걸고 낸 컴필레이션. 제비다방은 라이브클럽을 표방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본질은 아지트 기능을 했던 라이브클럽 시대에 닿아 있다. 자신의 가게를 여는 사람은 종종 아지트 같은 공간을 꿈꾼다. 아지트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제비다방은 좋은 사례 연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