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 집에는 어떤 차(tea)가 준비돼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편차가 좀 클 수 있겠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보자. 당신 회사 탕비실에는 어떤 차가 준비돼 있는가. 십중팔구는 설록 현미녹차 티백(Tea Bag)이다. 한국인이 가장 애용하는 차다. 현미와 녹차를 섞어 구수하지만, 고급스러운 맛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맛보다 저렴한 가격이 쉽게 손이 가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티백에 담긴 녹차의 이미지는 견고하다. 녹차 하면 전남 보성 녹차밭보다 설록 현미녹차 티백이 먼저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이 차를 나도 어지간히 많이 마셨다. 그런데 이제는 안 마신다. 적어도 마시는 차만큼은 좀 더 여유롭게 누리고 싶기 때문이다.
이젠 조금 비싸더라도 품질 좋은 차를 구매해보자. 비용이 부담스럽다면 손님에게는 평소처럼 설록 현미녹차를 권하더라도 혼자 마실 때, 아니면 가족끼리, 직원끼리 마실 때만이라도 향과 맛을 음미할 수 있는 차를 마시자. 남은 그만 위하고 자신에게 더 투자하라는 말이다. 하루에 한 잔이나 일주일에 한두 잔 정도 고급스러운 차를 마시는 건 큰 부담을 주지는 않는다. 사실 비싸다고 해봤자 티백 하나당 1000원대 정도다. 탕비실을 점령한 100원대의 차에 비하면 10배나 비싼 것이 되지만, 우리가 여유를 즐기는 데 투자하는 비용이 겨우 1000원에 불과하다면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티백에 돈 좀 써도 괜찮아
세상엔 억 소리 나는 진짜 비싼 차도 많다. 중국 보이차 중에는 수억 원대에 이르는 것도 있다. 이런 건 누가 줘도 겁이 나서 못 마실 것 같다. 일본에는 와인병에 넣은 최고급 녹차 로열블루티가 있다. 도쿄 긴자에 있는 미쓰코시 백화점의 로열블루티 바에서 파는데, 가격이 상상을 초월한다. 한정판으로 나온 제품의 최고가는 32만 엔(약 300만 원)을 호가하고, 대중적인 것이 4000~5000엔대다. 이 정도면 엄청 큰 사치다. 맛이 궁금하긴 하지만, 이런 차를 무리해서 마셔보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개인적으론 티백에 든 로네펠트(Ronnefeldt)나 TWG Tea, 티 포르테(Tea Forte), 트와이닝(Twinings) 같은 브랜드를 좋아한다. 아모레퍼시픽의 오설록에서 만드는 고급 차들도 좋다. 나 자신을 위해 이런 차를 고르는 게 일상의 작은 사치다.
중국에는 ‘아침에 차를 마시면 하루 종일 위풍당당하고, 정오에 차를 마시면 일하는 것이 즐겁고, 저녁에 차를 마시면 정신이 들고 피로가 가신다’는 속담이 있다. 영국이나 중국,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고급 차 문화가 있다.
다도는 차 마시는 것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그만큼 어떤 도구에, 어떤 차를, 어떻게 마시느냐는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제대로 된 다기 세트로 하나의 예술 행위를 하듯 천천히, 그리고 정성스럽게 차를 만들어 마셨다. 좀 더 싱그러운 기분을 맛보려면 투명한 유리 티포트에 찻잎을 넣고 우린다. 오랫동안 차 문화는 작은 사치가 아닌 꽤나 큰 사치였다. 우리가 차를 싸고 간편하게 마시게 된 건 티백 덕분이다. 종이 티백도 있지만, 아주 고운 흰 망사 티백도 있다. 개인적으론 실크 소재에 피라미드처럼 생긴 티 포르테의 티백을 좋아한다. 이 경우 티백이란 말 대신 인퓨저(Infuser)라고 하는데, 여과지로 된 티백과는 우아함에서 큰 차이가 난다.
유리 찻주전자에 담근 티백 속 차가 천천히 우러나는 과정을 보면 우리는 눈으로도 차를 마시는 셈이다. 물론 코로도 마신다. 은은하게 배어나는 향기로도 차를 음미한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 향기를 통해 유년 시절 기억을 회상하는데, 향기는 아주 중요한 기억의 각인 요소다. 불현듯 느껴지는 향기만으로도 언제, 어디선가 맡았던 그 향기와 연관된 상황이나 공간, 사람에 대한 기억을 되살릴 수도 있다. 가장 평온하던 일상의 기억이 누군가에겐 홍차나 녹차 같은 차의 향기일 수도 있는 것이다.
차에는 잘 어울리는 짝이 있다. 디저트다. 홍차의 친구 마들렌처럼 스콘도 좋고, 달달한 케이크도 좋고, 쌉쌀한 초콜릿도 좋다. 전통차를 마실 때도 한과나 약식 같은 주전부리가 따라온다.
우리 전통차 문화도 꽤나 호사스럽고 여유 있는 문화다. 과거에는 여유 있는 이들이 아니고선 차를 격식 있고 우아하게 잘 차려 마시는 게 쉽진 않았던 점을 생각하면 분명 우리에게도 차는 고급 문화 중 하나다.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차를 음미하면서 생각도 하고, 사교도 나누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가 차를 대하는 기본 태도인가 보다.
서울 청담동에 TWG Tea 살롱&부티크라는 곳이 있다. 싱가포르 차 브랜드인 TWG Tea가 운영하는 곳인데, 차 한 잔을 마시는 데 드는 비용이 좀 비싸다. 여느 카페를 생각하고 갔다면 비싼 가격에 흠칫 놀랄 수도 있다. 하지만 꽤나 만족스러운 티와 티푸드, 그리고 공간이 주는 매력이 있다. 차를 고를 수 있는 선택의 폭도 아주 넓다. 800가지 정도의 티가 있다는데, 리스트만 봐도 뭐가 뭔지 끝도 없을 정도다. 익숙한 차도 있지만 생소한 것도 많다. 그래서 새로움을 누리기에 좋다. 차가 그냥 차지 별거 있느냐 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가보기를 권한다. 그런데 남자끼리만 온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여자끼리, 연인끼리 수다 떨며 일상의 호사를 누리기에 제격인 곳이다. 한국에는 지난해 처음 매장을 열었다. 물론 TWG Tea에서 차를 산 뒤 집에 가서 마셔도 좋다.
애프터눈 티로 누리는 호사
내 기억 속에 각인된 차 중 하나는 홍콩 페닌술라호텔의 애프터눈 티다. 영국 런던에서도 애프터눈 티를 마셔봤지만, 왠지 홍콩에서의 기억이 더 강렬했다.
애프터눈 티는 홍차를 좋아하는 영국 상류사회의 문화로 19세기부터 있었는데, 차를 마실 때 음악가의 연주까지 곁들였다고 한다. 먹고사는 데 부족함이 없는 부자들의 여유가 만든 문화다. 그러다 보니 바쁜 현대에 와선 그 문화가 퇴색됐다. 원래 애프터눈 티는 점심과 저녁 사이 스콘이나 케이크 같은 티푸드와 홍차를 마시며 수다 떠는 사교의 시간이자 생활의 여유로움을 즐기는 시간이다. 살짝 출출해진 배도 달랠 겸 달달한 걸 먹으면서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풍요로운 오후라는 게 어쩌면 우리가 누릴 일상의 진짜 사치이기도 하다. 바쁜 직장인이라면 그 시간에 그런 여유를 누릴 틈이 평소엔 없기 때문이다.
하여간 애프터눈 티는 여유 있는 사람들의 일상이다. 그래서 우리가 매일 누릴 수는 없어도, 주말이나 휴가 때, 아니면 여행지에서 낯선 여행자의 신분이 됐을 때 마음껏 누려볼 일이기도 하다. 늦잠 자고 브런치를 먹으며 수다 떨다가 애프터눈 티까지 이어간다면 그건 진정한 호사다. 돈을 많이 쓰는 호사가 아니라 여유로움을 만끽하는 호사인 것이다.
즐겁게 수다 떨며 함께 호사를 누릴 친구가 주변에 많은 사람만큼 부러운 인생도 없을 것이다. 좋은 친구라는 건 같은 시기에 나고 자란 사람이라기보다 같은 공감대와 관심사를 가진 사람에 가깝다. 우리가 유독 나이에 대한 벽에 갇혀 있어 그렇지, 사실 좋은 친구는 나이를 초월해 서로 잘 통하고 잘 맞는 사람이면 된다. 그런 점에서 애프터눈 티든, 브런치든, 낮술이든 같이 하며 즐겁게 수다 떨 친구가 있는 건 행복이다. 당신은 지금 어떤 차를 마시고 있는가. 아니, 누구와 마시고 있는가.
티백에 담긴 녹차의 이미지는 견고하다. 녹차 하면 전남 보성 녹차밭보다 설록 현미녹차 티백이 먼저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이 차를 나도 어지간히 많이 마셨다. 그런데 이제는 안 마신다. 적어도 마시는 차만큼은 좀 더 여유롭게 누리고 싶기 때문이다.
이젠 조금 비싸더라도 품질 좋은 차를 구매해보자. 비용이 부담스럽다면 손님에게는 평소처럼 설록 현미녹차를 권하더라도 혼자 마실 때, 아니면 가족끼리, 직원끼리 마실 때만이라도 향과 맛을 음미할 수 있는 차를 마시자. 남은 그만 위하고 자신에게 더 투자하라는 말이다. 하루에 한 잔이나 일주일에 한두 잔 정도 고급스러운 차를 마시는 건 큰 부담을 주지는 않는다. 사실 비싸다고 해봤자 티백 하나당 1000원대 정도다. 탕비실을 점령한 100원대의 차에 비하면 10배나 비싼 것이 되지만, 우리가 여유를 즐기는 데 투자하는 비용이 겨우 1000원에 불과하다면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티백에 돈 좀 써도 괜찮아
세상엔 억 소리 나는 진짜 비싼 차도 많다. 중국 보이차 중에는 수억 원대에 이르는 것도 있다. 이런 건 누가 줘도 겁이 나서 못 마실 것 같다. 일본에는 와인병에 넣은 최고급 녹차 로열블루티가 있다. 도쿄 긴자에 있는 미쓰코시 백화점의 로열블루티 바에서 파는데, 가격이 상상을 초월한다. 한정판으로 나온 제품의 최고가는 32만 엔(약 300만 원)을 호가하고, 대중적인 것이 4000~5000엔대다. 이 정도면 엄청 큰 사치다. 맛이 궁금하긴 하지만, 이런 차를 무리해서 마셔보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개인적으론 티백에 든 로네펠트(Ronnefeldt)나 TWG Tea, 티 포르테(Tea Forte), 트와이닝(Twinings) 같은 브랜드를 좋아한다. 아모레퍼시픽의 오설록에서 만드는 고급 차들도 좋다. 나 자신을 위해 이런 차를 고르는 게 일상의 작은 사치다.
중국에는 ‘아침에 차를 마시면 하루 종일 위풍당당하고, 정오에 차를 마시면 일하는 것이 즐겁고, 저녁에 차를 마시면 정신이 들고 피로가 가신다’는 속담이 있다. 영국이나 중국,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고급 차 문화가 있다.
다도는 차 마시는 것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그만큼 어떤 도구에, 어떤 차를, 어떻게 마시느냐는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제대로 된 다기 세트로 하나의 예술 행위를 하듯 천천히, 그리고 정성스럽게 차를 만들어 마셨다. 좀 더 싱그러운 기분을 맛보려면 투명한 유리 티포트에 찻잎을 넣고 우린다. 오랫동안 차 문화는 작은 사치가 아닌 꽤나 큰 사치였다. 우리가 차를 싸고 간편하게 마시게 된 건 티백 덕분이다. 종이 티백도 있지만, 아주 고운 흰 망사 티백도 있다. 개인적으론 실크 소재에 피라미드처럼 생긴 티 포르테의 티백을 좋아한다. 이 경우 티백이란 말 대신 인퓨저(Infuser)라고 하는데, 여과지로 된 티백과는 우아함에서 큰 차이가 난다.
유리 찻주전자에 담근 티백 속 차가 천천히 우러나는 과정을 보면 우리는 눈으로도 차를 마시는 셈이다. 물론 코로도 마신다. 은은하게 배어나는 향기로도 차를 음미한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 향기를 통해 유년 시절 기억을 회상하는데, 향기는 아주 중요한 기억의 각인 요소다. 불현듯 느껴지는 향기만으로도 언제, 어디선가 맡았던 그 향기와 연관된 상황이나 공간, 사람에 대한 기억을 되살릴 수도 있다. 가장 평온하던 일상의 기억이 누군가에겐 홍차나 녹차 같은 차의 향기일 수도 있는 것이다.
차에는 잘 어울리는 짝이 있다. 디저트다. 홍차의 친구 마들렌처럼 스콘도 좋고, 달달한 케이크도 좋고, 쌉쌀한 초콜릿도 좋다. 전통차를 마실 때도 한과나 약식 같은 주전부리가 따라온다.
우리 전통차 문화도 꽤나 호사스럽고 여유 있는 문화다. 과거에는 여유 있는 이들이 아니고선 차를 격식 있고 우아하게 잘 차려 마시는 게 쉽진 않았던 점을 생각하면 분명 우리에게도 차는 고급 문화 중 하나다.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차를 음미하면서 생각도 하고, 사교도 나누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가 차를 대하는 기본 태도인가 보다.
서울 청담동에 TWG Tea 살롱&부티크라는 곳이 있다. 싱가포르 차 브랜드인 TWG Tea가 운영하는 곳인데, 차 한 잔을 마시는 데 드는 비용이 좀 비싸다. 여느 카페를 생각하고 갔다면 비싼 가격에 흠칫 놀랄 수도 있다. 하지만 꽤나 만족스러운 티와 티푸드, 그리고 공간이 주는 매력이 있다. 차를 고를 수 있는 선택의 폭도 아주 넓다. 800가지 정도의 티가 있다는데, 리스트만 봐도 뭐가 뭔지 끝도 없을 정도다. 익숙한 차도 있지만 생소한 것도 많다. 그래서 새로움을 누리기에 좋다. 차가 그냥 차지 별거 있느냐 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가보기를 권한다. 그런데 남자끼리만 온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여자끼리, 연인끼리 수다 떨며 일상의 호사를 누리기에 제격인 곳이다. 한국에는 지난해 처음 매장을 열었다. 물론 TWG Tea에서 차를 산 뒤 집에 가서 마셔도 좋다.
애프터눈 티로 누리는 호사
내 기억 속에 각인된 차 중 하나는 홍콩 페닌술라호텔의 애프터눈 티다. 영국 런던에서도 애프터눈 티를 마셔봤지만, 왠지 홍콩에서의 기억이 더 강렬했다.
애프터눈 티는 홍차를 좋아하는 영국 상류사회의 문화로 19세기부터 있었는데, 차를 마실 때 음악가의 연주까지 곁들였다고 한다. 먹고사는 데 부족함이 없는 부자들의 여유가 만든 문화다. 그러다 보니 바쁜 현대에 와선 그 문화가 퇴색됐다. 원래 애프터눈 티는 점심과 저녁 사이 스콘이나 케이크 같은 티푸드와 홍차를 마시며 수다 떠는 사교의 시간이자 생활의 여유로움을 즐기는 시간이다. 살짝 출출해진 배도 달랠 겸 달달한 걸 먹으면서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풍요로운 오후라는 게 어쩌면 우리가 누릴 일상의 진짜 사치이기도 하다. 바쁜 직장인이라면 그 시간에 그런 여유를 누릴 틈이 평소엔 없기 때문이다.
하여간 애프터눈 티는 여유 있는 사람들의 일상이다. 그래서 우리가 매일 누릴 수는 없어도, 주말이나 휴가 때, 아니면 여행지에서 낯선 여행자의 신분이 됐을 때 마음껏 누려볼 일이기도 하다. 늦잠 자고 브런치를 먹으며 수다 떨다가 애프터눈 티까지 이어간다면 그건 진정한 호사다. 돈을 많이 쓰는 호사가 아니라 여유로움을 만끽하는 호사인 것이다.
즐겁게 수다 떨며 함께 호사를 누릴 친구가 주변에 많은 사람만큼 부러운 인생도 없을 것이다. 좋은 친구라는 건 같은 시기에 나고 자란 사람이라기보다 같은 공감대와 관심사를 가진 사람에 가깝다. 우리가 유독 나이에 대한 벽에 갇혀 있어 그렇지, 사실 좋은 친구는 나이를 초월해 서로 잘 통하고 잘 맞는 사람이면 된다. 그런 점에서 애프터눈 티든, 브런치든, 낮술이든 같이 하며 즐겁게 수다 떨 친구가 있는 건 행복이다. 당신은 지금 어떤 차를 마시고 있는가. 아니, 누구와 마시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