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싱어송라이터 3인방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화제를 모았던 케이블채널 tvN ‘꽃보다 청춘’.
첫 번째는 아이돌의 부진.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야기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아이돌시장은 가까스로 현상 유지를 하는 모양새다. 물론 음원 차트에서도, TV에서도 아이돌의 맹활약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2013년 제 나름의 신드롬을 몰고 온 크레용팝처럼 눈에 띄는 신인이 있었던가. 그렇지 않다. 이단옆차기, 신사동 호랭이 등 몇몇 작곡가가 차트를 장악했고 그들의 노래를 누가 부르냐의 차이만 있었을 뿐이다.
요컨대 음악적으로나, 이미지로나 새로울 게 전혀 없었다는 얘기다. 정기고와 소유의 ‘썸’, 악동뮤지션의 ‘200%’처럼 화제가 된 아이돌 히트곡을 하나라도 기억할 수 있는가. 올해 아이돌 음악은 팬덤 외 영역으로 확산된 적이 없다. 화제가 된 경우도 음악성이나 새로운 이미지보다 선정성에 기댔다. AOA건 EXID건 마찬가지다. 내수시장뿐인가. 한국 대중음악 산업의 미래처럼 여겨지던 케이팝(K-pop) 시장에서도 올해는 별다른 이슈를 끌어내지 못했다. 규모가 가장 큰 일본 시장은 물론이거니와 중화권, 남미 등의 각 시장에서 고작해야 현상 유지 정도였다.
거시성과 다양성보다 미시성과 협소성에 기대는 산업이라는 아이돌시장의 태생적 한계와 그로 인한 증상이 강력히 드러난 한 해였다. 레이디스 코드의 비극은 임계점에 달한 이 시장의 현실을 보여준 무시할 수 없는 징후였다.
또 하나의 키워드는 ‘90년대의 귀환’이다. 김동률, 서태지, 유희열의 잇따른 성공적인 컴백은 여러 이야깃거리를 낳았다. 먼저 그들의 지난 작품이 음반시장 강세에 비해 음원시장에서는 상대적으로 힘을 쓰지 못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반면 이번 앨범 수록곡들은 하나같이 차트에서 ‘줄 세우기’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의 주요 팬층이자 음반 전성시대를 견인했던 지금의 30, 40대마저 이제는 음원시장의 소비자로 정착했음을 입증하는 사례일 것이다.
케이블채널 tvN ‘꽃보다 청춘’, 이적과 이승환이 이례적으로 출연했던 종합편성채널 JTBC ‘히든싱어’, MBC ‘무한도전’의 ‘토토가’ 등이 모두 1990년대 가수들을 내세워 화제를 모았다. 아이돌이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예능프로그램은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두터운 70년 전후 세대, 즉 2차 베이비붐 세대의 욕망을 소환한 것이다.
물론 어느 때나 과거는 회고 대상이자 효과적인 상품이다. 그러나 1990년대가 회고되는 방식은 이전 시대와 다르다. 7080이 다시 진열됐을 때는 ‘완벽한 기성세대의 것이자 지금보다 촌스럽지만 정겨운 그 무엇’이었다. 반면 90년대는 현재도 대중문화계의 만만찮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지금은 없는 다양성과 주체성을 가진 시대로 그려 졌다고 여겨진다. 앞서 말한 대로 2014년 컴백한 90년대 가수들의 앨범이 시장에서 거둔 성과가 그 증거일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좋은 음악은 여전히 많이 나온다. 어찌 보면 자기 음악을 레코딩해 내놓기 더 좋은 환경이기도 하다. 1990년대 싱어송라이터와 현재 그들이 시장 및 매체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서로 비교할 바가 못 된다. 단순한 재능의 차이일까. 그보다는 2000년대 이후 급격히 변화한 음악시장의 구조, 새로운 재능에 귀 기울일 젊은 세대의 급격한 감소, 인터넷 시대로 접어든 지 오래이건만 여전히 방송에 절대적으로 기대는 한국 음악 홍보의 고질성 등이 맞물려 발생한 현상이라고 보는 게 타당할 듯하다.
동시대 시장에 다양성이 실종된 탓에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관성으로 시장을 메우는 모순이 지금 음악계를 관통하는 한마디다. 1990년대가 모두 소비되고 나면, 우리는 무엇을 회상할 것인가. 2014년 한 해 동안 이어진 90년대 가수들의 재부상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해야 한다는 진지한 화두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