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은의 새 앨범 ‘양희은 2014’(왼쪽)와 한영애 6집 새 앨범 ‘샤키포’.
2013년 조용필의 19집 ‘Hello’는 본인에게뿐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자극과 고민을 동시에 안겨줬던 듯하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컴백 앨범의 내용과 성공은 ‘과거’에 영광을 누렸던 이가 ‘현재’에 연착륙할 수 있음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여기서 방점은 ‘컴백’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다. 조용필은 기존 스타일을 버리고 지금의 트렌드를 기꺼이 흡수했다. 한국 음악계에서는 전례가 없던 일이다.
그 후 오랫동안 숨죽여 있던 이들이 꽤나 돌아왔다. 하지만 영 만족스럽지 못했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어떻게’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 스스로의 가치에 대한 자부심이 과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양희은과 한영애, 둘은 그런 오류를 반복하지 않는다.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지고, 전설의 영역에 남길 거부한 채 기꺼이 2014년과 동기화한다.
‘양희은 2014’는 수용과 지킴의 조화다.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가 담겨 있던 1991년 작품에서 그는 대중에게 무명이나 다름없던, 오스트리아에서 유학 중이던 이병우를 기용해 중년의 여가수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쓸쓸하고 우아한 영역에 이른 바 있다. 그 뒤로도 마찬가지였다. 유신 시절 ‘쎄씨봉’에서 그의 공연을 봤던 이들이 지금 듣고 있을지도 모를 트로트 따위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성인 가요=트로트’라는 안이한 공식을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단 얘기다.
존중받아 마땅한 그 도도함은 이번 앨범에서도 지켜진다. 준비운동이 있었다. 윤종신과 함께 ‘배낭여행’을, 이적과 함께 ‘꽃병’을 발표했다. ‘뜻밖의 만남’이라는 프로젝트로. 그야말로 몸풀기였다. 본게임이라 할 만한 ‘양희은 2014’는 모두 다른 작곡가에게 받은 12곡이 담겼다. 장미여관의 육종완, 불독맨션의 이한철 등 후배들의 곡부터 한동준, 지근식 등 중견 음악가들의 작품까지 폭넓은 세대의 폭넓은 장르를 양희은은 아우른다.
모던포크와 스윙, 라틴, 국악 스타일의 곡까지 다양하다. 그 안에서 양희은은 섬세한 일상을, 그리고 사려 깊은 위로를 건넨다. 수십 년의 일상을 살아오면서 지리멸렬하다는 생각조차 잊어버렸을 이들에게 ‘존재’를 환기케 한다. 말 그대로 두꺼운 인생의 음악들이다. 자신의 세계와 철학을 지켜온 사람만이 수용하고 부를 수 있는 노래다.
‘샤키포’로 돌아온 한영애의 새 앨범 또한 놀랍다. 자신의 별명이 마녀임을 환기케 하는 첫 곡 ‘회귀’로 시작하는 이 앨범은 일렉트로니카와 포크, 블루스, 록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다. 예전만큼의 휘청거림은 없지만 가만히 멈추지도 않는다. 한영애는 정제된 카리스마로 자신만의 인장이 찍힌 목소리를 들려준다. 방준석, 강산에 등 음악 친구들과 김도현, 여노 같은 작곡가들의 음악을 실었다.
그의 오랜 팬이자 벗인 작가 황경신이 많은 부분 참여한 가사들은 때론 밝고 때론 시적이다. 그 이야기들을 통해 한영애는 좀 더 보편적이되 가볍지 않은 영역에 안착한다. 늘 어디선가 노래하고 있었다는 듯 동시대적 감성을 자연스레 소화한다. 2012년 ‘일밤-나는 가수다 Ⅱ’에서 가끔 보였던 위태로움 같은 건 이 앨범에 묻어 있지 않다. 그 또래 여가수 가운데 (남자까지 포함한다 해도) 이런 음악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이가 누가 있을지 떠올려본다. 좀처럼 생각나지 않는다.
양희은과 한영애의 음악은 분명 다르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자신을 지키되 시대를 수용하는 것 말이다. 무조건 존중받아야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존중받을 만한 자격이 있을 때 비로소 어른이라는 걸 그들은 음악으로 증명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