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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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깊은 내공으로 부르는 노래

양희은&한영애 새 앨범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4-12-15 10: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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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력+깊은 내공으로 부르는 노래

    양희은의 새 앨범 ‘양희은 2014’(왼쪽)와 한영애 6집 새 앨범 ‘샤키포’.

    거의 동시에 주목할 만한 작품 2장이 나왔다. 양희은, 그리고 한영애의 신작이다. 양희은은 8년, 한영애는 15년 만의 새 앨범이다. 굳이 여기서 둘의 경력을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둘의 데뷔 연도가 각각 1971년, 77년이라는 사실을 환기하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2013년 조용필의 19집 ‘Hello’는 본인에게뿐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자극과 고민을 동시에 안겨줬던 듯하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컴백 앨범의 내용과 성공은 ‘과거’에 영광을 누렸던 이가 ‘현재’에 연착륙할 수 있음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여기서 방점은 ‘컴백’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다. 조용필은 기존 스타일을 버리고 지금의 트렌드를 기꺼이 흡수했다. 한국 음악계에서는 전례가 없던 일이다.

    그 후 오랫동안 숨죽여 있던 이들이 꽤나 돌아왔다. 하지만 영 만족스럽지 못했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어떻게’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 스스로의 가치에 대한 자부심이 과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양희은과 한영애, 둘은 그런 오류를 반복하지 않는다.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지고, 전설의 영역에 남길 거부한 채 기꺼이 2014년과 동기화한다.

    ‘양희은 2014’는 수용과 지킴의 조화다.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가 담겨 있던 1991년 작품에서 그는 대중에게 무명이나 다름없던, 오스트리아에서 유학 중이던 이병우를 기용해 중년의 여가수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쓸쓸하고 우아한 영역에 이른 바 있다. 그 뒤로도 마찬가지였다. 유신 시절 ‘쎄씨봉’에서 그의 공연을 봤던 이들이 지금 듣고 있을지도 모를 트로트 따위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성인 가요=트로트’라는 안이한 공식을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단 얘기다.

    존중받아 마땅한 그 도도함은 이번 앨범에서도 지켜진다. 준비운동이 있었다. 윤종신과 함께 ‘배낭여행’을, 이적과 함께 ‘꽃병’을 발표했다. ‘뜻밖의 만남’이라는 프로젝트로. 그야말로 몸풀기였다. 본게임이라 할 만한 ‘양희은 2014’는 모두 다른 작곡가에게 받은 12곡이 담겼다. 장미여관의 육종완, 불독맨션의 이한철 등 후배들의 곡부터 한동준, 지근식 등 중견 음악가들의 작품까지 폭넓은 세대의 폭넓은 장르를 양희은은 아우른다.



    모던포크와 스윙, 라틴, 국악 스타일의 곡까지 다양하다. 그 안에서 양희은은 섬세한 일상을, 그리고 사려 깊은 위로를 건넨다. 수십 년의 일상을 살아오면서 지리멸렬하다는 생각조차 잊어버렸을 이들에게 ‘존재’를 환기케 한다. 말 그대로 두꺼운 인생의 음악들이다. 자신의 세계와 철학을 지켜온 사람만이 수용하고 부를 수 있는 노래다.

    ‘샤키포’로 돌아온 한영애의 새 앨범 또한 놀랍다. 자신의 별명이 마녀임을 환기케 하는 첫 곡 ‘회귀’로 시작하는 이 앨범은 일렉트로니카와 포크, 블루스, 록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다. 예전만큼의 휘청거림은 없지만 가만히 멈추지도 않는다. 한영애는 정제된 카리스마로 자신만의 인장이 찍힌 목소리를 들려준다. 방준석, 강산에 등 음악 친구들과 김도현, 여노 같은 작곡가들의 음악을 실었다.

    그의 오랜 팬이자 벗인 작가 황경신이 많은 부분 참여한 가사들은 때론 밝고 때론 시적이다. 그 이야기들을 통해 한영애는 좀 더 보편적이되 가볍지 않은 영역에 안착한다. 늘 어디선가 노래하고 있었다는 듯 동시대적 감성을 자연스레 소화한다. 2012년 ‘일밤-나는 가수다 Ⅱ’에서 가끔 보였던 위태로움 같은 건 이 앨범에 묻어 있지 않다. 그 또래 여가수 가운데 (남자까지 포함한다 해도) 이런 음악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이가 누가 있을지 떠올려본다. 좀처럼 생각나지 않는다.

    양희은과 한영애의 음악은 분명 다르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자신을 지키되 시대를 수용하는 것 말이다. 무조건 존중받아야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존중받을 만한 자격이 있을 때 비로소 어른이라는 걸 그들은 음악으로 증명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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