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마리스 얀손스.
역시 이틀간 베토벤 교향곡만 연주했던 재작년 공연에 대해서 필자는 ‘남독일 대표악단의 저력, 현존 최고 거장의 원숙미, 새로운 시대의 베토벤상 등 모든 기대를 충족시켰다’고 평한 바 있다. 그 때문에 이번 공연을 앞두고는 걱정도 없지 않았다. ‘혹시 2년 전 만족도에 못 미친다면?’ ‘행여 얀손스의 건강 문제가 발목을 잡지나 않을까.’
하지만 기우였다. 이번 공연은 단순히 기대에 부응하는 수준을 넘어섰다. 솔직히 모든 면에서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얀손스와 BRSO의 이번 공연은 ‘오케스트라 예술’에서 가능한 가장 아름다운 경지를 바로 우리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 보였고, 나아가 모종의 깨달음까지 안겨주었기에 일개 애호가의 ‘취향’을 초월하는 깊숙한 의미와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왔다.
첫째 날 1부에서 연주한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이 가장 흥미로웠다. 얀손스의 해석은 기존 연주들과 궤를 달리했는데, 특히 1악장과 3악장에서 역동성과 토속미를 강조하는 대신, 성부 간 밸런스를 미묘하고 다채롭게 조절해 직조감과 색채미를 극대화했다. 4악장에서는 처음에 템포를 느리게 잡았다가 전개부로 넘어가는 대목에서부터 가속한 후 즉흥적 루바토(템포의 밀고 당김)와 참신한 극적 기복을 선보여 놀라움을 안겨줬다. 또 BRSO 특유의 세밀하고 유려한 소릿결과 온화한 울림을 충분히 살린 2악장이 지극히 아름다웠음은 물론이다.
같은 날 2부의 무소륵스키가 작곡하고 라벨이 편곡한 ‘전람회의 그림’, 둘째 날 2부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에서도 얀손스와 BRSO 연주는 남달랐다. 그것은 악단의 탁월한 기능미와 훌륭한 음악성을 자연스럽게 드러낸 연주였고, 이 명곡들이 이른바 ‘러시아적 이미지’에서 자유로워질 때 얼마나 순수하고 기품 있는 음률과 깨끗한 감흥을 선사할 수 있는지를 증명해 보인 고결한 해석의 결정체였다.
가장 기대를 모았던 레퍼토리는 둘째 날 1부에서 연주된 두 곡이다. 올해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기념해인 데다 BRSO 근거지가 작곡가 고향인 독일 뮌헨이고, 또 얀손스 특유의 세련된 지휘 스타일이 곡들의 특성에 잘 부합하리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얀손스와 BRSO의 연주가 더욱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그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지휘자와 단원들 사이에 이뤄졌을 지극히 인간적인 교감과 소통, 공감과 화합,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장인정신과 예술혼이 연주에 고스란히 투영돼 있고 또 그것이 우리에게까지 전달됐기 때문이 아닐까. 그랬기에 마지막 앙코르 ‘솔베이그의 노래’가 흐르는 동안 눈가가 촉촉이 젖어들었던 것이리라. ‘과연 이런 공연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